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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메우던 젊은 함성은 어디 갔나
지난 2월 22일 40kg의 가날픈 체구를 가진 한 여성 정치인이 서울에 있는 중국 대사관의 맞은편 길바닥에 조그마한 천막을 쳤습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에 항의하는 단식투쟁에 돌입한 것입니다.
(김태우 통일연구원장) 필자가 위로하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이 여성은 무척 수척한 모습으로 외롭게 앉아있었고, 직후인 3월 2일 결국 심한 굶주림과 탈수증으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어느 사이에 또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하나의 역사는 섬약해 보이는 한 여성에 의해 이렇게 애잔한 모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요즘 중국 대사관 일대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위장소가 되었습니다. 인권단체, 탈북자, 종교인, 대학생 등 각양각색의 항의자들이 “탈북자 북송중지”를 외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대학가에서 열리는 탈북자 북송에 반대하는 노래모임에는 유명 가수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여성 국회의원이 단식투쟁을 벌이는 장소는 모 교회의 정문입니다. 시위자들이 교회의 주차장과 화장실을 점령하고 있지만, 교회는 묵묵히 참으면서 무언의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신문광고를 통해 송환 중지를 요구하는 애국단체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국제사회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월 5일 미국 의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렸고, 탈북자 출신 모녀가 나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유엔인권위원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요구는 한 가지입니다. 중국이 진정 떠오르는 강대국이라면 탈북자들의 인권문제도 지위에 걸맞게 처리해달라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을 죽음의 땅으로 내몰지 말라는 것입니다.
탈북자 송환은 국제법에 위배됩니다. 난민지위협약, 고문방지협약, 여성차별금지협약, 인종차별금지협약 등을 무더기로 위반하는 것입니다. 난민지위협약 제33조는 “난민을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난민’이라 함은 공식절차에 의해 난민의 지위가 부여되기 이전이라도 난민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고문방지협약도 제3조에서 “고문을 받을 위험이 있는 나라로 개인을 추방․송환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이 협약들의 회원국이며,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대사관 앞에는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 불쌍한 탈북자들을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보여야 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
그러나, 보여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들려야 할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벌어지던 2002년 광화문 네거리를 메운 수백만 명의 ‘붉은 악마들’이 외쳤던 함성을 잊지 못합니다. 이들이 발했던 영 파워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밝은 앞날을 점쳤습니다. 우리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어린 두 여중생을 추모하던 수많은 촛불들을 잊지 못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길거리를 메웠던 촛불들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우리의 장병들이 무참히 죽어갔을 때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선박의 불법어로를 단속하던 우리 해양경찰이 중국 선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때에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의 촛불은 보이지 않고 함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정의’를 구현한다면서 그토록 자주 거리로 뛰쳐나왔던 성직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국민의 대표라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라진 촛불들, 다 어디로 갔습니까?
물론, 중국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변방지역의 안정화를 위해 소수민족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특히 최근에는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정부로서도 ‘조용한 외교’로 임할 수밖에 없는 고충들이 있습니다. 한국은 부상하는 이웃 강대국과의 비적대적 우호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애를 써고 있으며,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대사관 앞의 시위가 당장 중국정부를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탈북자 강제송환은 진실로 반인륜적인 일입니다. 북쪽의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인권문제는 우리민족만의 문제도 아니고, 중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보편타당한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탈북자들을 사지(死地)를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는 발해야 합니다. 지금은 문명국가의 국민들이 세계를 향해 인권의 촛불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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