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앵커 (이하 앵커) 근로정신대로 일했던 분들의 피해배상을 위한 협상이 미쓰비시 쪽과 진행돼 왔는데 지난 6일 최종결렬 됐다고 합니다. 무려 16번에 이르는 협상이었는데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요. 우리 쪽 대표로 협상에 참여했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을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이 국장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 (이하 이국언) : 네, 안녕하십니까?
앵커 : 사실은 지난 5월에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온 게 있지 않습니까, 그때 저희들도 보도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 대법원이죠, 한국 대법원에서 일제강점기 때 강제노역을 당한 분들에 대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는데, 우리 대법원이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그때부터 미쓰비시랑 협상을 한 건 아니죠?
이국언 : 네. 그렇습니다. 미쓰비시와 협상은 2010년 11월부터 협상이 진행돼오는 과정이었죠. 앵커 : 그 후에 얘기를 좀 해주세요. 어떻게 미쓰비시가 참여하겠다고 한 거였고, 현재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요?
이국언 : 2008년에 오랜 고생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문제와 관련해서 패소 판결이 내려졌었습니다. 그 이후에 뒤늦게 이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끼쳤던 기업이 미쓰비시이고, 제 1의 전범기업이고, 또 한국에서 아리랑 3호위성이랄지 자동차시장 진출이랄지 여러 활동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특히 2009년에 후생연금탈퇴수당 99엔 사건으로 할머니들에게 약 1300~1400원 밖에 안 되는 돈을 일본 정부가 지급한...
앵커 : 일제 때 써 있던 그 금액 액수 그대로 주겠다고 해서... 이국언 : 네, 액면가 그대로, 이미 해방 당시 65년, 67년 전에 지급해야 할 것을 이제 와서 주면서 커피 한잔 값 정도도 안 되는 금액으로..그로 인해 국내에서 미쓰비시에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었죠. 서명운동도 하고, 그러다보니 급한 불을 꺼야 될 상황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원정투쟁이나 서명운동, 1인 시위랄지 한창 반 미쓰비시 불매운동이 타오를 때였거든요. 2010년도에 도쿄 미쓰비씨 본사 앞에서 시위를 (3분시위 비슷한 발음을 하시는데 못 알아 듣겠고 찾아봐도 없네요. 그래서 그냥 시위라고 썼습니다) 통해서 할머니들 문제에 대해 협상을 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저희들이 다그치니까 7월 달에, 지금으로 보면 딱 2년 전인데, 하겠다고 했던 것이죠.
앵커 : 그러니까 미쓰비시 쪽에서 협상에 응했다는 게 자기반성 이런 차원이 아니고 여러 가지 상황에 밀려서 참여한 거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이국언 : 그렇게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앵커 : 16차례 협상이 진행됐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이국언 : 네, 맞습니다.
앵커 : 우리 쪽 협상 대표로 이국언 국장님이 나가셨고..
이국언 : 이상갑 변호사라고 저희 자문을 해주고 계시는 분이
앵커 : 양쪽 모두 몇 분씩 나온 건가요?
이국언 : 다섯 명씩, 양쪽에 통역이 한 명씩 있고, 통역을 제외하고 다섯 명씩 인데,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서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원 활동을 해 오신 단체들이 있었어요. 일본에서 소송을 도와주신 변호단, 지원회로 사실 한국에서보다 그분들이 더 오랜 세월 동안 해 오셔서 거기서 세 분이 참석하시고 한국에서는 두 명이 참석해서 16번 정도니까 적게 만났다고 볼 수 없고..
앵커 : 굉장히 많이 만난 거죠?
이국언 : 네, 본 협상 사이에, 본 협상을 앞두고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 조율도 하고 했던 이 만남도 12번이었거든요. 그러니까 2년 동안 매달 만나다시피 해왔는데 막상 협상 테이블에 앉고 보니 미쓰비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만나자고 하니까 만나봐 주자고 하는 식 같이 오만불손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렇게도 무성의하게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 협상이지 협상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황들로 계속돼 왔었죠.
앵커 : 미쓰비시를 향한 문제제기가 거세니까, 일단 시간을 벌기위한 것으로 예측되는 행동을 쭉 취해온 거군요.
이국언 : 미쓰비씨는 대화할 때는 반미쓰비시 시위운동을 자제해 달라고 하는 것이 자기들의 요구였고 저희들은 할머니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하고, 미쓰비시가 대화를 하겠다고 했을 때는 충분히 이 문제를 결론 내려고 나오지 않았겠느냐 하고 그 부분을 수용했는데, 그 협상을 미끼로 시간벌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 이번 5월에 우리나라 대법원의 손해배상 해야 한다는 판결 이후에도 접촉이 있지 않았겠어요?
이국언 : 대법원 판결 이전에 사실 거의 결렬 분위기였습니다. 미쓰비시의 전혀 성의 없는 태도 때문에, 그래서 대법원 판결이 우리에게는 큰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 지난 6일 16차 협상이었는데 그 협상이 결렬이 된, 마지막 협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7월 6일 16차 협상 이전에 대법원 판결 이후에 예비 접촉을 두 차례 이상 했습니다. 그게 대법원 판결에 대한 미쓰비시의 반응을 알 수 있는 자리였었는데 예비접촉만 해도 대법원 판결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16차 결렬된 그 자리에서 미쓰비시가 했던 얘기는 참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민망한 얘긴데, 자기들은 이미 최고재판소 판결에서도 이 사건은 끝난 사건이고 더군다나 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양국이 이 문제를 끝낸 것으로 해서 우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앵커 : 최고 재판소라는 것은 일본 쪽 얘기겠죠?
이국언 :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5월 24일 한국 대법원에서 그런 판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판결 이후에 일본 정부 입장도 마찬가지고, 똑같이 한국에서도 일본 정부와 같은 취지로 65년도에 이미 끝난 것으로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 하는 얘기를 미쓰비시가 우리한테 하고 있는 상황이 돼버렸죠. 그런데 사실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는 발언을 해왔었죠. 대법원 판결은 판결이고 우리 정부는 65년도에 이 문제는 끝난 것으로 안다고 하는 말이 미쓰비시한테는 한때 긴장을 했다가 안도감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는 심리적 안정감을 줘 버린...
앵커 : 심지어 우리 정부가 미쓰비시에 대형 국책사업 용역도 주고 그랬죠?
이국언 : 네. 그러니까 미쓰비시로서는 전범기업 옷을 입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 안 하고,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서의 영업활동에는 하등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하다 보니 협상에 매달릴 이유도 없고 다급할 이유도 없어져 버린 거죠.
앵커 : 한국에 있는 미쓰비시 재산에 우리가 강제압류 얘기도 나오고 했는데 전혀 영향이 없다고 느끼는 모양이죠?
이국언 : 전혀 영향이 없다고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 미쓰비시 같은 경우 이런 얘기를 했어요. 대법원 판결이라고 하지만 파기 항소됐기 때문에 다시 항소심으로 내려가서
앵커 : 고법으로 간 거죠?
이국언 : 네, 결론이 난 것이 아니고 다툼 중에 있다는 얘기고, 이 말을 가볍게 들을 수 없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 전원합의체에 의해 난 판결이 아니고 그래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을 경우 이 판결이 다르게 진행될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없다는 거죠. 미쓰비시는 그 마지막 출구까지 찾아보고자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밝혀보겠다는 얘기고 대법관이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게 되면 대법관이 바뀌게 되고 얼마든지 다른 판단이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을 하실 겁니까?
이국언 : 역사의 마땅한 것들도 이행하고 있지 않은 미쓰비시에게 호된 대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야 될 것 같습니다. 정부가 저희에게 큰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만, 오히려 찬물을 끼얹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지혜를 모아서 정부보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 배상의 당사자였던 할머니들은 무슨 말씀이 없으셨나요?
이국언 : 할머니들은 왜 매번 정부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막고 있는지 정부가 하는 짓이 더 밉다, 일본이야 원래 그런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할머니들한테는 이번 협상까지 무너지면 나이가 이미 84세인데 언제 이 길을 만들자는 얘기인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고 낙담하셨습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사무국장과 함께 한 인터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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