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논객 윤창중은 보수의 가치를 따르는 자인가, 권력을 따르는 자인가.
[폴리뷰 편집국장 박한명]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탈무드의 격언이 있다. 이런 말도 있다. ‘지껄이기를 잘하는 어리석은 자는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와 같고, 말없이 가만히 있는 어리석은 자는 고장 나서 움직이지 않는 시계와 같다. 그래도 둘 중 후자가 훨씬 낫다’ 모두 말조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남이 쓰는 글을 비판하기보다 제가 쓰는 글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 또 언부중리 불여불언(言不中理 不如不言)이라고 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과 글은 삼가 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논객이라는 사람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후보 전위대 역할을 자처하는 듯한 친박 논객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도 이런 평범한 진리를 한번쯤 되새겨봐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몇 달 전엔 이상득 전 의원, 정몽준 전 대표와의 불필요한 일화를 끄집어내 ‘뒷담화’ 칼럼으로 스스로의 격을 한껏 낮추더니 이젠 이회창 전 대표를 소재로 삼았다. 그것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진짜 이회창과의 추억을 새긴 글일까? 그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생각나 끄집어낸 것일까? 실제론 추억을 빙자한 압박의 글이었다. 혹시라도 이 전 대표가 안철수를 지지할까 경계하는 박근혜에 대한 충성의 행간으로 채워진 글이었다. 창을 압박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담아두고 있어야 할 사담을 또 끄집어 낸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게 애국과 무슨 상관인가
그가 이회창을 압박하기 위해 쓴 ‘昌의 마지막 愛國’이란 제목의 글의 요지는 한마디로 말해 이회창에게 박근혜 지지선언을 요구하는 글이다. 그게 이회창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애국’이라는 것이다. 웃기는 얘기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이 왜 애국이란 말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과 애국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단적인 예로, 보수우파가 소위 말하는 애국정치인에 박근혜가 해당이라도 되나? 6.15, 10.4선언지지, 김대중·노무현 세력과 소통,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좌파정책과 각종 포퓰리즘 정책 등등 보수우파가 반대하는 족족마다 새누리당의 정책으로 채택해 사실상 민주통합당과의 정책적 노선에 차이가 없게 만든 이가 바로 박근혜다. 그런 박근혜 지지선언이 애국이라니, 윤창중이 그동안 말해왔던 애국이 고작 박정희의 DNA란 혈통에 기댄 것이었단 말인가?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 내내 좌파진영과 사실상 한 팀처럼 움직여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는 광우병 사태 때 문제가 확산되는 이유는 쇠고기 협상 전후에 정부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정부책임론을 주장했다.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것(광우병 파동)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일이지, 理念(이념)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발언도 했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이유도 서둘러 진압에 나선 경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었다. 이외에도 미디어법 등 매번 좌우가 첨예한 이슈마다 애매한 침묵을 지키거나 사실상 좌파진영에 동조할 뿐이었다. 보수우파가 말하는 ‘애국’이 언제부터 이런 ‘기회주의적 애국’을 의미하는 것이었나?
논리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보자.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와 같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것은,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사실상 이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꼴과 같다.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보수우파임을 자처하며 말끝마다 이념을 내세워 함부로 남을 재단하는 자들이 이념을 이유로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은 집어치워야 한다는 소리다. 단지 박근혜가 좋아서, 박정희의 딸이라서, 새누리당 후보라서 지지한다는 말이 훨씬 솔직하고 정직한 얘기다.
보수의 이념을 말하면서 이회창을 깎아내리고 압박하는 아이러니
지난 2007년 이회창은 노무현 정권의 좌편향과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무이념적 태도를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15.1%를 얻었다. 윤창중은 이를 ‘완패’로 폄하했지만, 지역주의와 양당체제란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무소속으로 나와 얻은 대단히 의미 있는 결과였다. 막나갔던 노무현 정권 세력과 탈이념을 선언했던 한나라당 이명박 세력 모두에 동의하지 않고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란 진정한 보수의 가치로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이회창의 뜻을 지지했던 국민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윤창중이 진정 보수의 이념과 가치를 중요시한다면, 보수의 가치를 끝까지 주창하는 이회창을 폄훼하고 동시에 그를 지지했던 국민을 폄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이회창더러 보수의 가치와 전혀 맞지도 않고 심지어 좌우를 넘나드는 포퓰리즘 행보를 보이는 박근혜를 지지해야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 중 넌센스다. 문재인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치가 떨린다는 윤창중이 남북간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며, 6.15선언,10.4선언 계승을 선언한 박근혜를 지지해야 애국이라며 과거의 일화를 꺼내들어 야비하게 이회창을 압박하는 꼴도 한심하고 우습긴 마찬가지다.
사실상 보수의 유일한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정치인인 이회창이 안철수와 박근혜 둘 중 어느 사람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또 앞으로 대권을 놓고 정치판이 어떻게 짜여지고 전개될지도 현재로선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편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 채, 지지층을 제대로 이해·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아니 지지층의 의사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탈보수’ 대권행보하며 전태일재단에 꽃을 놓겠다는 박근혜가 보수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통합을 이루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쉽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안철수를 지지하면 매국이고 박근혜를 지지하면 애국이라니 유치원 꼬마아이가 웃을 노릇 아닌가.
박근혜의 보수무시는 ‘권력추종’ 윤창중류의 보수 분열 행위가 낳은 결과이다.
이상득, 정몽준, 이회창 등 윤창중은 박근혜를 위해 보수우파 진영의 여러 인물들을 공격하고 있다. 거론되는 상대편이 유쾌하지 않은 개인적 일화들까지 추접하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논리적 모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면서 마구잡이로 끄집어내 치졸하게 공격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이회창이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있을 때, 현재의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오만한 권력자로 비판받을 때 그는, 문화일보 내부에서조차 지나치게 이회창에 편향됐다고 지적받을 정도로 이회창을 위한 충성 칼럼을 썼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새누리당을 장악한 박근혜를 위해 이회창더러 박근혜 지지를 요구하며 사실상 보수의 가치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윤창중은 과연 보수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인가, 권력을 따르는 사람인가.
박근혜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보수우파 진영 내 여러 인물들을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인신공격형 글로 박근혜에 충성하는 윤창중의 저열한 글들은 박근혜 대권아젠다 ‘국민대통합’과도 맞지 않는다. 냉정하게 따져 사실상 박근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남북관계를 주장하는 문재인을 종북정치인으로 낙인찍으며 박근혜의 친좌파, 친야당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고, 정몽준, 이재오, 정운찬 등을 비난하며 보수진영 분열에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그의 박근혜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엉터리 글들은 보수를 앞세워 사실상 보수의 가치를 죽이고 있다. 윤창중은 이회창에게 역사를 생각하라고 거만하게 충고할 게 아니라 본인부터 역사를 망치는 데 자신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이회창의 실패 때와 똑같이 박근혜를 실패로 이끄는 윤창중류
이미 끝난 박근혜 충성경쟁에 윤창중이 아직도 매달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은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부질없는 충성경쟁이야말로 그의 논리적 모순과 궤변, 불필요한 인신공격, 이념적 타락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필자의 판단 때문이다. 당장의 현실권력자 입맛에 맞는 글, 그를 추종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윤창중 스스로 꺼낸 이회창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좌파세력에 두 번 연속 정권을 내준 책임을 이회창에게만 물을 순 없다. 그보다 이회창을 오만한 권력자로 만들고 그의 눈과 귀를 가린 윤창중과 같은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로 죄를 물어야 할 대상은 昌이 아니라 권력자에 아부하는 글로 혹세무민한 또 다른 제2의 윤창중과 같은 이들이란 얘기다. 그런 이들이 이회창을 실패로 이끈 똑같은 행태들을 다시 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몰락한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서 이제 보수는 정말로 권력자가 아닌 가치를 말할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좌파정권 10년을 만들고, 보수를 긍정의 대상이 아닌 혐오의 대상, 기피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보수우파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보수 스스로 권력 굴종적 자세를 이제 그만 벗어 던져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란 논리로 되풀이해오던 악습의 결과가 결국 보수 몰락을 자초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어리석은 악습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버릴 때가 됐다. 보수몰락에 책임 있는 이들 중 한 사람인 윤창중이 진짜 논객으로 돌아갈 때, 마지막으로 진짜 애국심을 발휘해 줄 그 때가 바로 보수 재건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창중에게 진심어린 충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과거에 나눈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까지 까발려 상대를 야비하게 공격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누가 그런 이를 가까이하고 믿고 신뢰할 수 있겠나. 사적인 대화도 필요에 따라 훗날 얼마든지 까발리고 이용해먹는 자와 뜻을 함께하고 같이 가고 싶어 할 이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 역시 믿음, 신뢰를 가장 중히 여기는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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