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들로부터 후순위채권을 구입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고객들을 구제하기 위해 별도의 불완전판매 신고센터를 만들어 지난 20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피해신고 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투자자 2998명(1314억 원) 중 첫날 신청자가 33건(8억원)에 그칠 정도로 신고 접수 현황은 매우 미미하다.
이처럼 피해신고 접수가 미미한 까닭은 피해내용을 후순위채 매입자에게 입증토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피해 신고 시 분쟁조정신청서와 신분증, 신고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통장사본, 청약서, 투자설명서 등)를 제출토록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후순위채 매입자가 불완전판매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후순위채 투자설명서는 2009년 하반기부터 도입이 되었는데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후순위채권의 상당수가 그 이전에 판매가 됐다.투자설명서가 있다하더라도 판매 과정에서 이를 자세히 읽고 서명하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 판매현장에서는 판매를 하면서 창구직원이 내용을 읽지 않고 서명할 곳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명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투자설명서는 고객보호서류가 아닌 판매 금융회사의 면피용 서류가 되고 있다.
가입절차 상에 명백한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가입 당시 상황을 녹음한 자료 등이 있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창구 직원의 말을 신뢰하고 가입하는 고객들은 이런 상황을 녹음하거나 하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의 후순위채 매입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의 저축은행 후순위채 신고센터 운영이 면피용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감원에서도 선심성 대책이라는 논란이 일자 저축은행 후순위채 신고센터는 이전에 다른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불완전 판매에 대한 민원접수를 받던 것의 일환으로 새로운 선심성 대책이 아니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이 아닌 것이다.
진정으로 후순위채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있다면 불완전 판매에 대한 입증 책임은 후순위채 매입자가 아닌 판매자에게 있어야 한다. 금융은 의료시장만큼이나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상황이다.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수요자가 공급자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의료과실에 있어서 입증 책임이 의사에게 있는 것처럼 금융사고에 대해서도 입증 책임은 금융회사에게 있어야 한다.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투자자 구제의 핵심(불완전판매)은 후순위채와 관련된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고 이를 투자자가 아는 상태에서 서명을 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후순위채 매입자가 후순위채에 대해서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불법대출과 분식회계로 막대한 재정적 손실이 있었음에도 2009년 후순위채권 발행 당시 순이익이 발생한 것처럼 증권신고서에 허위기재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결국 후순위채 매입자들은 후순위채권의 설명이 제대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허위 기재된 재무제표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 셈이다.
제대로 된 재무제표를 보여줬다면 막대한 부실을 안고 있는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를 매입할 이유가 없다. 원칙적으로 후순위채 판매는 사기에 의한 거래로서 판매 자체가 무효가 되어야 한다.
피해신고를 통해 분쟁조정이 성립되더라도 저축은행이 파산할 경우 신청인이 분쟁조정결정에서 인용한 손해배상금액을 파산재단에 채권신고를 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저축은행이 파산한 경우 어렵게 분쟁조정이 성립되도 추가절차를 밟아야하고 100%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는 저축은행 혼자서 일으킨 사태가 아니다.
저축은행의 회계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과 저축은행들을 관리 감독할 금융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그동안 진행된 수사를 통해서도 이들에게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책임을 저축은행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금융당국에서도 공동의 책임을 지고 피해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2004년 저축은행 후순위채가 처음 선보인 이후 2004년 447억 원에서 시작해 2009년엔 5712억의 후순위채권이 발행됐다. 지난해도 3548억 원 규모가 발행돼 총 42개사가 1조5000조 원가량을 발행했다. 이 중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들의 후순위채 규모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이번의 저축은행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머지 90%의 후순위채를 매입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들의 후순위채 판매 관행으로 볼 때 나머지 90%의 후순위채 판매 사례에서도 불완전 판매 사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머지 저축은행들의 경영공시 자료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 후순위채 피해신고는 기존의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후순위채를 발행한 42개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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