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은 26일 취임식에서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의 아픔 속에 사법 작용은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이후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그 거친 역사의 격랑 속에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며 사법부가 행한 법의 선언에 오류가 없었는지, 외부 영향으로 정의가 왜곡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며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의지를 밝혔다.
사회당은 굳이 이 대법원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사법부의 역사는 오욕과 굴종의 역사였다. 식민지 시절에는 일제에 부역해 민족해방운동가들을 고문-투옥-살해하는 판결을 남발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정권에 부역해 민중을 위해 활동한 수많은 좌익인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앞장섰고, 박정희 정권 이후 군사 독재 시절에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민중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문과 조작과 인권유린에는 침묵하면서 정권이 불러주는 대로 법봉(法棒)을 휘둘렀다.
비단 정치적인 사건만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사법부는 돈있고 권력있는 자들에게는 솜방망이 판결을, 돈없고 빽없는 서민들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판결을 일삼아 왔다. 이렇게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법부 아래서 서민들은 법 앞에서도 정의와 진실이 무참하게 무너지며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했고, 그 결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돈(권력)만 있으면 된다’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사고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사법부는 사법부 개혁과 과거사 재평가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판결번복 불가 운운하며 반성과 새출발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랬던 사법부가 최초로 과거사 청산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법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사 재평가의 시기를 굳이 1972년-1987년 사이로 제한한 것, 외부 위원회 구성을 통한 진상조사와 과거사 재평가의 핵심인 인적청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 등을 볼 때 과연 진실한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법원장의 말대로 사법부의 오욕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의 과거청산은 이 때 일제에 부역한 수많은 친일판사들과 그들이 내린 판결에 대한 재평가와 청산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승만 정권 아래서 발생한 수많은 학살과 전쟁시기의 군사재판에 의한 학살 행위 등도 당연히 구명되어야 할 대상이다.
또한 60년대의 간첩조작 사건들과 반공법,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들, 그리고 1987년 이후에도 계속된 노동자 탄압 판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들도 당연히 조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대법원장은 1972년부터 1987년까지로 그 대상을 못 박았다. 우리는 그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법원장은 또한 과거사 평가의 핵심인 인적청산에 대해서도 8일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이런 의심을 받는 사람은 이미 법원을 떠났다”며 미온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인적청산은 단지 현직에 있는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판사로서 부당한 판결을 해온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그들이 현직에 있든 없든 그들이 행한 행위를 명백히 역사에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관의 양심과 책무를 버리고 일제와 독재세력, 재벌들에게 부역한 자들을 단죄하지 않고 어떻게 정의를 다시 세우고 새출발을 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가 진정한 과거사 재평가와 청산의지가 있다면, 그 대상을 식민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전체로 확대하고, 외부기관에 의한 공정한 진상조사를 보장하고, 분명한 인적청산 의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원칙에 따라 과거사를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규명하고, 오욕을 역사를 낱낱이 기록하며, 과감한 인적청산을 하지 않는다면 결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사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철저한 진상규명, 진정한 사죄와 청산을 촉구하며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8인의 열사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사법부의 범죄적 판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거나 피해를 입은 수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