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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서 발굴, 고인의 인식표가 결정적 단서로 작용
한국디지털뉴스 김형근 기자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9년 10월 1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故 원영철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로 확인했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7번째이다.
이번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는 현장 수습 간 발견된 유해의 가슴부위에서 발견된 인식표였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인식표에 적힌 고인의 이름을 토대로 전사자 명부와 매화장 보고서(전사기록지)에서 기록을 확인 했다.
또한, 신원확인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가족관리/탐문관이 강원 원주시 일대에서 거주 중인 유가족의 남동생(원영화, 77)과 여동생(원영숙, 87) 및 친조카·외조카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여, 국방부 조사본부 유전자과에서 유해와 유가족의 DNA 비교 검사를 한 결과 남동생(원영화, 77)과 여동생(원영숙, 87)씨의 유전자가 일치하여 최종 신원이 확인됐다. 이는 6·25 전사자 확인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족의 품으로 보내 드린 사례다.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발전된 유전자 기법과 더불어 유품, 기록 정황에 의한 사전 확인을 통해 신원확인이 보다 신속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는 국군 제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고, 1951년 8월-9월에 강원도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제 1차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제 1차 노전평 전투간 제8사단은 제16연대와 제10연대를 투입, 전형적인 고지쟁탈전을 반복하면서 445고지 - 1010고지로 이어지는 고지군 일대에서 북한군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방어에 유리한 결정적 지형지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방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제 2차 노전평 전투 (1951년 8월 18일 - 24일)로 이어지게 됐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는 1930년 9월 15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에서 5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일찍 작고하신 형님들을 대신해 책임감을 갖고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해 왔으며, 고등학교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20세의 나이로 전쟁에 참전했다.
고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1953년경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사무소 직원에 의해 전사통지서만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은 가족들은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은 고인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을 지금까지 가슴으로 묻고 살 수밖에 없다.
고인의 동생 원영화씨는 “형님이 살아계셨다면 원주군수감이라고 동네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했었다.”며,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가족들이 형님을 많이 그리워 했었는데, 좋은 소식을 갖고 찾아와 주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친 후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통해 유해를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故 원영철 일등중사의 신원확인 사례처럼 6ㆍ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최신의 다양한 신원확인 기법을 지속 적용하는 한편,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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