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사고 책임 회피 말고 지금 당장 선보상, 복구활동 나서라
삼성중공업이 지난 29일 담당 재판부인 대전지법 서산지원에 이번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의견서에서 삼성측은 "선박 충돌사고는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측의 안일한 대응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인선 선원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고, 항해와 관련된 부분은 예인선 선원들의 독자적인 업무 범위에 속하는 만큼 삼성중공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자신에 대한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31일 삼성중공업이 이와 같이 자신들의 형사상 책임을 부인하는 행위는 수만 명의 생존터전을 하루아침에 앗아가고 수십 년이 흘러도 회복되기 힘든 환경재앙을 불러온 사고의 1차적 책임자로서 지극히 비도덕적이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검찰은 지난 21일 삼성중공업 예인선단 선장 3명을 업무상 과실과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으로 기소하면서 삼성중공업도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으로 함께 기소햇다. 검찰이 삼성중공업을 함께 기소한 것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거대한 크레인을 예인선 두 척이 철사줄 두줄에 의지한 채 끌고 간 것과 같이 무모한 항해를 강행하게 된 책임이 삼성중공업측에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삼성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한지 47일만에야 지극히 형식적인 수사를 동원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였을 뿐 그동안 사고에 대해서 책임있는 어떤 태도도 보여주지 않아 피해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온 국민의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고의 형사적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는 것은, 삼성이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고 밖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고 더 나아가 이번 사고로 생존터전을 잃은 피해 주민들에 대해 또 한번의 폭력을 행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래서야 어찌 “초일류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삼성중공업의 책임은 너무도 명백하다.
첫째, 삼성중공업은 풍랑주의보 예고에도 자신의 무게의 수십배가 넘는 크레인을 철사줄 두 개로 끄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도 출항하였다는 점, 충돌 1-2시간 전에 이미 유조선과의 충돌에 대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회항, 정지, 피항 등의 조치들을 포기하고 항해를 계속한 점 등은 이미 검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진 엄현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중공업은 자신의 과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삼성중공업은 법적 사용자로서의 지위에 관계없이 항해의 일정 및 계획을 정하고 선장 및 선원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였다. 하청관계를 통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많은 기업들의 수법이지만, 검찰은 선장, 선원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삼성중공업을 ‘사용자’로 간주한 것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사용자책임을 피하려는 기업들의 구태를 반복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1999년 에리카호 사고에서는 토탈정유사는 2천억원대의, 1989년 엑슨발데즈호 사고에서는 엑슨 정유사는 2조2천억원대의 자발적인 방제 및 복구작업을 이행하였다.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은 모든 법적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인 사고발생 직후 2-3년안에 투입된 것이다. 이에 비해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중공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형사재판의 결과는 삼성중공업의 책임이 상법의 선주책임제한 규정에 따라 30-40억원에 한정되는지, 일반 민사손해배상처럼 현재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모든 피해의 배상을 포함하는지에 대해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자발적으로 선보상에 나서거나 적극적인 복구작업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민사상 무한책임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기소된 대로 유죄를 선고받는 한 이와 같은 주장으로 민사상 무한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헛된 기대를 버리고 자발적인 선보상과 복구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피해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기업이미지에 도움이 됨을 잊지 말기 바란다.
검찰은 삼성중공업이 태도를 조속히 바꾸도록 형사절차를 엄중히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 검찰은 첫째,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고 하루 임대료가 6천만원을 넘는다는 크레인의 운송과정에 있어 선장이 출항부터 충돌까지 모두 단독결정을 하였는가가 의구심이 풀리지 않으니 즉시 재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으로 항해에 간여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선장 및 선원의 업무환경과 동기부여에 있어 조금이라도 과실이 있다면 삼성중공업의 항해책임자를 ‘업무상 과실’이나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삼성중공업은 양벌규정 상의 처벌을 받는 것이지만 최근 판례와 학설에 따라 삼성중공업 자체의 ‘직원의 선임감독 상의 과실’에 대해 충실히 재판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삼성중공업이 ‘법적 사용자’ 운운하며 선장 및 선원의 위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수사하여야 할 것이다.
왜 검찰의 기소대로 유죄가 선고된다면 삼성중공업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가?”
첫째, 검찰은 삼성중공업 측의 육지 근무자가 항해를 통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추하건대 평소에도 선장이 이와 비슷한 항해에 있어 단독결정을 내려왔다는 것일텐데 그렇다면 그 선장은 항해의 책임자였으므로 선장의 무모한 행위가 선주 자신의 행위가 된다. 그리고, 판례에 따르면 선장이 선주의 법적 사용자였는지 아닌지와 무관하다.
둘째, 외국의 판례들을 보면 선주가 사고가 발생한 항해에 구체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선장이 무모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업무환경을 제공하거나 선장의 잘못된 습성에 대해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것도 선주책임제한을 깨는 근거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엔 과속의 습관이 있고, 새로운 레이더에 익숙하지 않은 선장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은 것도 ‘선주 자신의 행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The Lady Gwendolen(1965) 1Lloyd's Rep. 335. CA). 1989년 엑슨발데즈호 사고에서도 미국법 상의 선주책임제한이 깨져 당시 선주인 엑슨 정유사가 총 3조원대의 민사책임을 지게 되었는데, 이때 음주경력이 있던 선장을 선임하고 그 선장을 보좌할 수 있는 충분한 유능한 선원을 배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선주 자신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선주와 선장이 고용관계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셋째, 검찰은 삼성중공업 법인 자체를 기소함으로써 선주의 지위를 가진 삼성중공업 자신의 행위였음을 확인했다. 혹자는 삼성중공업에 대한 기소가 해양오염방지법의 양벌규정 상의 ‘형식적 기소’였다고 폄하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양벌규정이란 법인의 직원이 법을 위반했을 때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법인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법적 근거에 대하여 無過失責任說, 過失推定說,過失擬制說, 過失責任說 등이 있는데, 과실책임설이 有力說이다. 즉, 법인 자신의 행위에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헌법재판소는 양벌규정에 의한 법인의 처벌도 직원에 대한 선임감독 상의 과실을 근거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시하였다. 헌재 2007.11.29, 2005헌가10 사건. 검찰은 삼성중공업의 관리 감독 상의 과실이 있기 때문에 기소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결정에 의거해 보자면 검찰과 담당법원은 삼성중공업 법인의 기소를 형식적인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검찰이 실제로 선주의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 법인을 기소하였는지 형식적으로 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소는 이미 이루어진 이상 검찰은 헌재결정에 합당하게 삼성중공업의 선장들에 대한 관리감독 상황에 대한 추가조사를 통해 기소유지에 필요한 사실들을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위 판례 둘다 모두 당시 적용되었던 책임제한 해제 기준이 정확히 ‘선주 자신의손해발생의 염려를 인식하면서 한 무모한 행위’는 아니었고 ‘선주 자신의 실질적 과오 및 인식 (actual fault and privity)’라는 기준이었지만 이것은 단순과실보다는 높은 중과실로 해석되어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검찰이 삼성중공업에 대해 형식적인 유죄선고를 받아내지 말고, 선장들이 왜 무모한 결정들을 내리게 되었는지를 심도있게 파헤쳐 법인 자체에 대해 의미있는 재판을 진행하여 삼성중공업의 선장 관리감독 체계 및 업무환경 그리고 항해에 대한 허술한 의사결정구조에 대해 책임을 물어서 유죄선고를 받아내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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