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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양재동 매헌기념관과 예산 충의사에서 의미있게 열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의사 상해의거 76주년 기념식”이 오는 29일 오전 10시에 상해 루신(魯迅)공원 매정(梅亭) 앞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개최한다.
이날 기념식은 기념사업회 회원과 현지 공관 및 교민, 홍커우(虹)구 관계자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학준 기념사업회장·국가보훈처장(상해총영사관 전재원 영사 대독)·상해시 홍구구 정협 부주석의 기념사, 윤봉길의사 노래 등의 순으로 열린다.
또한 상해 의거 의의를 기리기 위해 상해한국학교 주관으로 실시한 “제5회 윤봉길의사 한글 백일장”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상해한국학교 6학년 김도연양 등 3명에게 국가보훈처장상을 시상한다.
국내에서도 같은 날 오전 11시에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서초구 양재동에 소재한 매헌기념관에서 김덕룡 명예회장, 류찬수 서울남부보훈지청장, 3·1여성동지회, 서초구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개최되며,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는 이완구 충청남도지사, 최승우 예산군수, 권율정 대전지방보훈청장, 월진회원,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 의거 제76주년 기념 다례가 진행된다.
이외에도 오는 30일 오후 7시 예산종합운동장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대전 MBC가 주관하는 “윤봉길의사 탄신 100주년, 상해의거 제76주년 기념음악회”가 개최된다.
윤봉길 의사(1908. 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했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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