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시민단체 활빈단 홍정식 대표가 18일 국립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故장경순前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 2주기 추도식에서 민관군 총력안보 강화를 촉구하며 호국시위를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2년전인 2020년,문재인 정부-정권 타도를 궐기하자는 장경순 의장의 구국 촉구문
국민은 깨어나고, 군(軍)은 궐기하라
어찌하다 100년 이라는 영욕의 삶을 살고있는 국가원로회 장경순 명예총재 입니 다. 지금 이땅에서는 음란한 탕녀와 음흉한 간첩수괴가 나라를 송두리채 거덜내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26일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41주년이 되는 날인데 그들의 조종하에 요즘 보수우파만 찾아서 감염시킨다는 고도의 지능을 갖춘 미사일 유도장치 뺨치는 코로나 바이러스균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어떤식으로 공격 해올지 몰라 추도식 준비에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어느 외신기자는 금번 개천절과 한글날 서울의 풍경을 평양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묘사하면서 "우스꽝스럽고(ridiculous), 완전히 미쳤다(insane)" 고 말했습니다. 사악한 간첩수괴와 추악한 탕녀가 두려워 그런 것을 멀건이 쳐다보고만 있어야하는 저의 무력한 모습을 보노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여기저기 놀러가는 것은 괜찮지만 광화문 집회는 코로나 방역의 주범이니 즉각 체포하라며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국민들'과 '저 국민들'이 따로 있다는 말과 진배없을진데 그로인하여 머리끝까지 치솟는 분노가 이 노구의 가슴을 할큅니다.
특히나 국가 존립의 가치는 국민 단 한사람의 생명이라도 지켜내는 데 있는 것이거늘 코로나를 막느라고 북한은 그들의 존립을 위해 우리 국민을 피살하고 불태웠다 했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존립을 지켜야 할 우리 정부는 오히려 통지문을 조작해 국민들을 기망하고, 시진핑은 6.25가 미 제국주의의 침략이라며 그때 '중국이 적(敵)을 때려눕혔다' 고 해도 대통령은 말한마디 못함에 그 울분 또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김종필 동지를 마지막으로 그동안 채명신, 길재호, 오치성, 박태준, 문재준, 박치옥, 김재춘, 박종규 등 자유대한민국 제2건국의 제단에 박정희 장군과 함께 몸을 바치기로 피를 뿌려 맹세했던 혁명동지들이 모두 흙이 되고 마지막 남은 이 몸이 나라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염치없이 살고있다고 생각하니 죽지 않고는 베길수가 없없지만 이제 그 길은 포기하였고 어떡허든 저들이 무너지는 걸 보고 나서야 눈을 감았으면 합니다.
5.16 당시의 상황 보다도 지금은 더욱 난감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의를 부르짖고 궐기해야 할 학생들이 저들 주사파에 꼼짝 못하고 이 만연한 부정부패를 보고도 눈을 가리고 있으니 그들을 보고 용기를 얻어야 할 국민들이 깨어난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인것 같습니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4.19 직후를 돌이켜 보건데 먹고 살기에도 힘든데 국민학생까지 데모에 참가해 선생님을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러 사회는 4.19 이전보다 더욱 혼란해졌습니다. 군대도 부패하여 휘발유까지 팔아먹고 판공비를 마련하려고 부대단위로 나무를 벌목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78달러였고 국가예산 613억 원 가운데 미국 원조가 24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가난'은 임종을 앞둔 불치의 병이되어 우리 사회 곳 곳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습니다.
'민주' 또한 과잉을 넘어 폭주로 치달았고 그 폭주는 정치학생들을 가득태운 기차가 되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달리더니 급기야는 횃불시위에 '김일성 만세'와 '적기(赤旗)의 노래' 까지 전국 곳곳에 울려퍼지게 하였습니다.
그런 판국에 '4.19 민주혁명'을 등에 업은, 현재 여당의 모태인 장면의 민주당은 정작 자유민주를 위협하기 시작한 붉은 무리들 앞에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대로 방치하였다면 이 나라의 자유민주체제는 그때 종말을 고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위험한 불길을 과감하게 꺼버린 것이 박정희를 주축으로한 저희 동지들의 5.16 혁명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나 똑같은 환경으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누가 뭐라든, 무슨 비판을 하든, 이 장경순은 지금도 거침없이 박정희 장군과 함께 조국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혁명의 대열에 참여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들이야 그 무덤에 침을 뱉는 것도 모자라 묘를 파헤치려고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 날,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박정희 장군과 혁명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습니다. 곧이어 저희들은 박정희 장군이 부의장으로 취임하고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장군이 의장으로 추대된 군사혁명위원회를 구성해 반공을 국시로 한 6개항의 '혁명공약' 을 발표하였습니다.
그후 10년, 서독 광부와 간호사, 파월장병 등 헌신적인 전 국민들의 노력으로 경제는 성장발전의 궤도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닉슨 독트린은 또다른 안보의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71년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맞선 김대중 후보의 공약은 안보태세 강화가 아니라 '4대국 안전보장, 예비군 폐지, 남북 협상' 이었습니다. 이것은 4.19 당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거기에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공사판 도로위에 누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방해하는 등 경제성장 궤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하고 그들의 삿된 주장은 교묘한 선전.선동으로 여론의 호응을 받는 추세였습니다.
설상가상 북한의 김일성은 7.4 남북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박정희 대통령의 저돌적인 경제개발 정책의 효과가 북한을 압도하기 시작하자 체제불안의 위협을 느껴 헌법을 수정하고 단일 수령체제로 바꾸었습니다. 대책없이 그대로 놓아 둔다면 걸음마를 시작한, 국민소득 1000불도 안되는 당시의 민주주의 체제로는 저들과의 대결을 이겨낼 수 없는 위기상황의 도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헌법'은 김일성의 '단일 수령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방안이었고 그렇게 해야만이 북괴의 도발을 막고 중단없는 경제개발의 전진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유신헌법 없이 정권이 교체되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가능했을지 우리 모두는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병에 걸려 호시탐탐 정권의 찬탈에만 촉각을 곤두세운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여 정치노조를 결성하고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전태일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케 한 운동권 좌파들의 수중에 정권이 떨어졌다면 88 올림픽하며 2000년 월드컵은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설계한 자유 대한민국의 시공을 맡은 박정희 대통령이 닳아 헤어진 가죽 허리끈 졸라매고 아직 여물지 않은 경제를 성장시킬때 나라를 날로 먹으려한 정치꾼들과 김일성 추종자들, 그것도 모른채로 군사독재 타도하자는 좌파에 세뇌되어 총알받이로 나섰던 얼굴마담들을 제외하고는 주변의 어느 누구도 중앙정보부의 남산 지하실에서 고문당했다고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였다고 저들이 민주의 화신으로 치켜 세운 김재규를, 전두환의 계엄군까지 시류에 합류하여 독재자를 쓰러뜨린 영웅이라고 떠받들었다면 과연 이 나라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80년 5월,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어느 간첩은 서울역 앞에서 버젓히 '김일성 만세' 를 불렀습니다. 그럴만도 했던것이 김대중은 김일성의 지시대로 5.18 폭동을 획책했음이 40년 후인 올 5월 기밀이 해제된 미 CIA 보고서가 밝히었고, 북한 교과서에도 이제는 자기들이 했다고 자랑해 논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한군데도 멀쩡한데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란 자의 트위터에 'ㅛQ qzq' 라는 부호가 2013년 8월18일 나타나 이를 쳐봤더니 암호명 995호에게 북한이 지령하는 난수방송이 나왔습니다. 이를 해명하라는 빗발치는 요구에도 청와대는 침묵했습니다.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추미애의 불륜 행각은 범부라 하더라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일진데 이제는 탕녀의 수준을 넘어 작두칼을 타고 미친듯이 정권보호를 위한 수사 지휘권의 칼을 휘둘러 온 나라를 벌집처럼 쑤셔대고 있으니 이들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피땀흘려 이룩해놓은 기적의 나라가 송두리채 결단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탄핵이 부당했다는 게 명명백백히 밝혀졌음에도 광화문엔 아직도 '아이들아 고맙다'고 팽목항 방명록에 썼던 자의 은인같은 세월호가 그 위용을 떨치고 있고, 울산시장 친구선거를 한참이나 넘어선 4.15 부정선거는 100년 대계를 위한 걸음마의 연습에 불과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펀드게이트와 검찰개혁의 농단은 이리 얼키고 저리 설키어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고 급기야는 검찰총장이 나는 추미애의 부하가 아니다" 고 절규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지만 테스형을 부른 나훈아를 대통령으로 하는 수준에서 그 분노는 보수우파에 한해 잠간 치를 떨 뿐 먹고살기에도 바쁜 세상이라 금방 남의 일이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탈원전의 실체 또한 감사원장의 지혜와 용기로 밝혀졌음에도 3.15의 부정에 분노했던 대학생들의 '정의'는 지금 어디에도 없는바 과거 그들을 호응하였던 국민들의 애국심마져 '태극기부대' 라는 '극우파'의 치기로 매도되어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단, 추미애가 심어 놓았다는 박순철 남부지검장이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 며 승승장구 보장된 탄탄한 동아줄을 끊어버린 것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깨어난 사례입니다.
한글날, 우리가 말하는 것을 글자로 쓰게해준 세종대왕께 감사하려고 광화문에 갔으나 몇 번의 불심검문과 차벽에 막혀 그냥 돌아온 '100세 일기' 의 김형석 교수는, "옛날에는 생활 단위가 가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을 넘어 국가와 민족으로 성장하고 발전했다. 즉 애국심이나 국민적 자각이 필요한 것이다. 큰 일을 하지 못해도 괜찮지만 작은 일이라도 이웃과 겨레를 위해 걱정하는 애국심을 가져야 그 마음이 쌓이고 이어져 민족의 영광으로 남는다." 고 신문에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깨어나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힘입니다. 그 힘만 있으면 실행에 옮기고 유지해야 할 집단이 자연히 생깁니다. 그게 바로 군(軍)입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나서지 않고서는 민노총과 전교조가 뒷배를 봐주고있는 좌파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이 이 노인의 생각입니다.
설령 내년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등 지자체장 선거에서 좌파를 격멸시키고 내 후년 대선에 우파가 연합이라도하여 단일후보를 냄으로써 이겼다고 해본들 경찰도 두들겨패는 막가파식 폭력조직에 다름아닌 민주노총과, 학생들에게 지리산에서까지 빨찌산 체험교육을 시키는 전교조가 조직적으로 벌리게 될 제2의 촛불혁명을 광화문 차벽도 못 넘은 보수우파가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총을 쏘아 죽이고 소각해 버릴줄은 몰라 그저 지켜만 보았다는 '설마'의 군 수뇌부는 추미애의 아들 서일병을 구하는데는 장관까지 나서서 충성을 다하고, 온갖 무기로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힘자랑을 다해놓고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