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한 연예인의 자살을 둘러싸고 유족들은 사채업자들의 도를 넘은 채권추심 행위를 자살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비교적 선한 이미지를 갖춘 연예인의 안타까운 자살로 드러난 것이지만, 사실 사금융 이용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4%인 189만명이나 된다.
그가운데 폭력적 채권추심 행위가 난무하는 불법 사채업자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도 35만명이나 될 정도로 사금융 문제는 경제, 인권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다. 직장에 전화해서 망신 주기, 가족에게 대신 빚 갚을 것을 요구하기, 전화에 욕설 남기기는 예삿일이고, 무등록 사채업자들은 현행법의 이자상한선인 49%를 넘는 100%, 200%의 불법적인 이자를 받아내기 위하여 더 심각한 폭력을 자행하기도 한다.
필자의 법률사무실을 방문한 한 대학생은 사채업자에게 600만원(선이자 120만원을 떼고)을 빌린 후 월 20%(연 240%)의 살인적 이자를 갚지 못해 도주했는데, 사채업자가 보증을 선 친구 학교로 찾아가 협박을 하고 망신을 주어 2300만원을 받아낸 후에도 계속 원금과 이자를 더 갚으라고 협박하여 파산신청을 한 사례도 있다.
금융감독원, 지방자치단체, 경찰 등 감독기관은 서로 업무를 떠넘기기에 바빠 불법적 채권추심 행위를 둘러싼 인권의 사각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법률적 업무이어야 할 채권추심 행위가 ‘법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일탈의 전형적인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하여 노무현 정부 말기에 부랴부랴 금융위원회 주재로 법무부, 행안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망라된 대부업정책협의회가 겨우 만들어졌지만 올해 3~4월 중 불법 채권추심 행위에 대해 한 차례 단속을 한 후 주춤한 상태이다. 17대 국회에서 공정채권추심법이 추진되었으나 폐기된 후 18대 국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아 공금융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사채를 이용하게 된다. 현재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약 700만명. 경제가 어렵고 취업난이 가중되다보니 앞으로 사채 이용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결국 불법 채권추심 행위를 둘러싼 인권침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우려를 낳는다.
고대에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로 전락하여 채무자의 인권은 물론 생살여탈권이 채권자에게 귀속되지만 근대사회에서 천부(天賦)인권이 헌법의 기본권이 된 이래 채권을 추심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채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국가를 부흥시키고자 했던 개혁군주들은 채무노예들을 정상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양인화하는 정책을 경제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추진했다. 고려 광종이 호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비안검법을 추진했고, 조선말 정조대왕도 노론집권층의 반대에도 도주한 노비들이 양인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폈다.
채무노예가 많아지면 국가경제도 그만큼 좀먹어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대는 채무노예화를 막는 공정채권추심법이 항시적으로 가동하는 사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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