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농업붕괴 등을 우려하며 협정 불가를 주장하고 있다. 타당한 주장일까.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와 한·칠레 FTA 협상 결과를 통해 개방반대론의 타당성 여부를 실증적으로 따져봤다.
지난 90년 9월 7일 대전 길거리에 계란 500개와 인분이 담긴 비닐봉지 10개가 던져졌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을 반대하는 농민과 학생들의 시위였다. 최루탄과 인분 냄새가 뒤덮인 현장에서 시위자들은 시장이 개방되면 농업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시위는 광주·대구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22일 또다시 전국 규모의 개방 반대 시위가 열렸다.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하는 집회였다. 광주와 춘천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시청 정문 유리창을 깨며 경찰과 대치했고, 대전에서는 경찰청 담벼락 50여m가 무너졌다. 시위대들은 “정부가 협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외면한 채 타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며 “협정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990년과 2006년, 무려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개방에 대한 저항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지난 1990년대 우리는 우루과이 라운드(UR)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시장의 문을 열었다. 2004년에는 한·칠레 FTA라는 이름으로 그 폭을 넓혔다. 개방 당시 일부 국민들은 “우리 농업이 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방은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업은 굳건히 살아있다. 반대의 주된 이유였던 개방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미 FTA 협상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한창인 지금 UR 협상 결과를 통해 개방반대론의 실증적 근거를 따져보자.
지난 1995년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라는 새로운 경제 체제로 편입됐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불리는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이 타결되면서 농산물까지 포함한 전면 개방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저항은 컸다. 협상이 진행되는 10여년 동안 농민 단체 등은 농업 붕괴론을 주장하며 개방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농민의 파탄’농업 기반의 붕괴’라는 주장이 연일 쏟아져 나왔고, 노동계 등은 개방이 가져올 사회적 위기를 우려했다.
특히 개방 반대에 섰던 학자들은 2001년 농업생산액이 7조7,0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제시, 개방 반대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주요 농민단체들은 각종 성명과 기자회견, 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협상이 타결되면 농산물 값이 국제가격 수준으로 폭락, 가격불안정과 농가소득격감을 가져올 것”이라며 협상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는가. 1995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우리 농업은 ‘붕괴’ 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기 1년 전 우리나라 농업 GDP(국내총생산)은 17조 6,044억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개방 이후 그 수치는 2006년 21조 7,360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가 전체 성장률에는 조금 못미치나, 우려했던 것만큼의 피해는 없었던 셈이다.
정체상태였던 농업부문 성장세도 1995년을 기점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1990~1994년 0%이던 연평균 농업 GDP 성장률은 1995~2002년 2%로 늘어났고, 1994년 9억 5,200만 달러이던 농축산물 수출액은 2004년 2,100만 달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농가 소득도 늘어 2,031만6,000원에서 2,900만1,000원으로 올라섰다. 개방 이후 정부의 정책적 대응과 농가의 자구 노력 등에 힘입은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표설명 개방 이후 농가자산은 1999년 소폭 하락한 것을 제외하면 지속 상승하고 있다. 1994년 1억 4190만 1000원이던 농가자산은 2006년 3억 5696만 3000원으로 증가했다.
축산 농가 다 망한다? ⇒ 돼지고기 자급률 87% 이상
개방 당시 핵심 이슈 중의 하나였던 축산 부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축산 단체 등은 국내 축산산업의 붕괴를 염려했지만 그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시 언론과 농민·사회단체들은 축산시장이 개방될 경우 우리의 돼지·닭고기는 덴마크나 대만, 미국 등의 물량공세를 막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2004년 현재 돼지고기는 86.9%의 자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개방전(1994년 97.1%)과 비슷한 수준이다. 닭고기 역시 자급률이 90%다. 개방전과 같은 자급자족 체계는 아니지만, 크게 우려할만한 수준도 아니다.
이밖에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 국내외 가격차만큼 관세를 부과한 품목 역시 관세할당량 수입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열리는데 대책은 없다?-종합대책 차질없이 시행
지난 1991년 한 일간지는 사설에서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시책이 실상 말만 번드르르할 뿐 그것이 제법 든든한 자구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한겨레, 4.2)고 비판했다. 농가 피해는 뻔히 보이는데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개방은 이뤄졌고, 농업은 망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국회 비준 이후 종합적 농업농촌 대책을 수립, 큰 차질없이 추진하고 있다. 농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농어촌발전대책·농특세, 농어민연금제(1994), 추곡약정수매제(1995)를 도입했다. 또 농가 소득과 경영안정 도모를 위한 농업·농촌 발전계획(1998), 농업·농촌기본법(1999)을 시행했다.
2001년에는 부채경감법, 논농업 직불제, 농작물 재해보험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2004년에는 DDA 협상과 FTA 추진 등 더 큰 시장 개방에 대비, 오는 2013년까지 모두 119조원을 투입하는 농업·농촌종합대책도 수립, 추진중이다. 개방에 앞서 시행되지는 못했으나, 개방과 함께 준비돼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개방 파고 맞설 방책은 자신감
경쟁력이 약한 나라는 산업에 보호막까지 벗기면 그들은 영원히 ‘잃는 나라’로 남아야 한다.”개방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1994년 한 일간지(한겨레, 12.20)의 사설이다. 이 신문은 1990년에는 협상 타결로 각국의 무역장벽이 철거돼 우리나라의 수출이 대폭 신장되리라는 기대는 실상 ‘교과서적인 가설’로 그칠 공산이 크다”(12.6)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일부 국민들이 갖고 있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만들어진 WTO 체제 속에서 우리나라는 개방 체제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4, 삼성경제연구소 2006) ‘잃는 나라’도, 수출 증가의 장밋빛 전망이 ‘교과서적인 가설’도 아니었음을 경험으로 입증한 셈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부 농가의 부채가 늘어나고,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의 비중이 줄어든 점은 개방의 어두운 뒷면으로 남았다. 정부는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개방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1990년대 많은 이들은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개방에 임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준비된 자세로 적극적으로 개방에 대처하는 것만이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FTA라는 새로운 개방을 논하는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충고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