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서울 종로구 체부동
1905년 11월 17일 늑결된 을사늑약이 일제의 강박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고자 한 대한국 고종황제는 1907년 7월 러시아 니콜라이 2세가 소집한 제 2회 만국평화회의에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에게 신임장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내는 친서를 주어 네덜란드에 특사(特使)로 파견했고 이상설은 이준, 이위종과 함께 러시아를 거쳐 헤이그에 도착했다.
일제의가 강제한 을사늑약 체결을 폭로하려 했던 고종황제의 계획은 대한국의 자주적 외교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대한국 대표들이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였다. 영국의 인도 지배와 일본의 대한국 지배를 묵인하는 영일동맹에 따라 영국은 일본을 지지하였고, 러시아는 일본 견제를 위해 대한국의 특사 파견을 도왔다.
대한국 특사들은 만국평화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국제협회에서 네덜란드 언론인 W. 스테드의 주선으로 이위종 특사가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 대한국의 비통한 실정을 호소하는 연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대한국을 위해 호소한다'는 제목의 연설 내용은 세계 각국 언론에 보도되어 주목을 끌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얻지 못했다.
이준 특사는 헤이그 특사 활동 중 머무르던 호텔에서 만국평화회의 불참으로 인한 울분으로 앓다가 사망하였으며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 통감부는 7월 20일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강력한 대한국 침략을 위해 7월 24일 군대 해산,사법권·경찰권의 위임,법령권 제정·관리임명권 간섭을 골자로 하는 정미늑약(丁未勒約)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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