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 이상의 감동
3년전 오늘..
사법연수원에서 1년차를 보내고 있던 시절이다. 어릴 때부터 검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나로서는 1학기가 시작되고 3월초에 지도교수님들과 면담을 할 때에도 나의 오래된 포부를 말씀드리며 당당히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근데 당시 나를 면담했던 검찰교수님께서 체육대회가 끝난 이후 나의 진면목을 확인하시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머릿 속에 뚜렷하다. “신기련 연수생, 검찰가면 2년마다 한일검찰친선축구를 하는데 거기 뛰면 되겠다.”
축구라.. 어릴 때부터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꾸준히 축구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이제 정작 연수원을 수료하고 나면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축구는 없을 줄 알았었다. 근데 검찰에서도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니.. 나에게는 3년 전부터 그렇게 한일검찰축구가 다가왔다.
선수선발과 훈련과정
올해가 5회인 한일검찰축구대회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나는 이전 4회 대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초임검사였고 우리 검사팀이나 수사관팀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한일검찰축구대회에 도전하는 새내기 선수들이 꽤 많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윗기수 선배들의 양보와 새내기로서의 열정과 노력으로 나 역시 검사팀의 선수로 선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검사팀 17명, 수사관팀 17명 이렇게 역사적인 5회 한일검찰축구 대표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훈련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 체력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 있는 상태여서 체력도 빨리 끌어올려야하고, 주력도 예전만 못하여 주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급선무였다. 그런데 시합 날까지 고작 날짜는 3달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훈련 도중 뜻하지 않는 부상 선수도 많이 생겼다. 강찬우 기획관, 강백신 검사, 김가람 검사, 나(신기련 검사), 김태형 수사관 등이 잔부상에 많이 시달렸다. 결국 연수원 때부터 함께 공을 찬 동기인 김가람 검사는 실전 시합에서도 거의 뛰지 못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시합 하루 전
우리 검찰 축구팀은 시합 하루 전날인 3일 오전 9시에 법무연수원에서 소집되었다. 마지막 날인만큼 강도 높은 훈련보다는 몸을 풀고 마지막 작전 연습 위주로 훈련을 하였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약간 찢어진 나는 오른발로 공을 찰 때마다 통증이 심하게 와서 아예 오른발 킥 훈련은 하지 않고, 런닝과 드리블, 왼발 킥 연습만 주로 하였다. 12:00에 법무연수원에서 점심을 먹은 뒤 숙소인 대웅경영개발원으로 향했다. 곧 일본 선수들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오후 2시가 좀 넘어 일본선수들이 대웅경영개발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단체로 마중을 나갔고, 일본 선수들이 드디어 도착했다. 선수단이 차에서 한명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얼굴들을 살펴보니 하나 같이 호리한 체격에 큰 키, 새까만 얼굴. 누가 봐도 영락 없는 축구선수들이었다. 갑자기 마음가짐이 비장해지기 시작했다.
저녁에는 대검에서 공식환영만찬이 있었다. 이미 여러 번의 대회를 통해 친해진 사람들은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나듯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가 있는 반면, 이번 대회가 처음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리가 좀 어색했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하기에는 벅찬 감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우리 측에서는 감독님과 코치님이 일본 측에 가서 술잔을 돌리고 계셨고(이것 역시 시합을 앞둔 작전 중 일부임ㅎ), 일본 측에서는 한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고바야시 검사를 필두로 여검사 2명이 포함된 스태프진이 한국 측 테이블로 넘어와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결국 “경기 전 음주금지”라는 감독님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만찬장에는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만찬이 끝나고 어느덧 밤이 왔다. 나는 오른쪽 허벅지가 계속 신경이 쓰여 10분에 한번 꼴로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결전의 시간이 온 것이다.

시합 당일
오전 9시에 소집되어 오전 훈련을 위해 법무연수원으로 떠났다. 사실 훈련이라기보다는 오전에 훈련을 하는 일본팀 전력 탐색 차 법무연수원에 간 것이다. 멀찌감치 앉아서 일본 선수들의 훈련을 보았는데 역시나 몸이 가벼웠고, 템포가 좋은 것이 전형적인 일본 축구였다. 흐름대로 진행되는 패스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검사팀, 수사관팀 역시 이끌어주는 고참부터 이제 막 시작한 새내기까지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고, 전형적인 한국축구답게 파이팅이 좋고 조직적이었다.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 12시에 경기장인 수원월드컵보조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미 양측의 응원단이 도착하여 운동장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특히나 레인보우팀(검찰 내 여직원들로 이루어진 응원팀)의 화려한 의상과 적극적인 응원은 우리팀 뿐만 아니라 일본팀 선수들의 넋을 빼 놓을 만큼 멋있었다. 식순에 따라 선수들은 단상 맞은편 운동장에 정열하고, 양팀의 각 주장이 선서를 한 다음 양측 선수단이 악수를 하고 나니 정말 이제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시작 전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김영문 주장을 비롯한 대회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 자신감을 갖고 하자고 주문하였다. 2년 동안의 준비가 헛되지 않게 우리 플레이를 하자는 다짐도 하였다.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었다.

전반전에는 한국 검사팀이 여러 차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를 지배해갔다. 허정수 검사의 쇄도에 이은 슛이 아깝게 골대를 맞추고, 김현선 검사의 정확한 킥에 의한 중거리 슛은 일본 골키퍼가 가까스로 쳐냈다. 그렇지만 골이 터지지 않아 0-0인 상태에서 후반전을 맞이했다. 여전히 나는 왼쪽 윙 자리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쉽게 일본 측 골문이 열리지 않았다.
후반 10분쯤 지났을까 미드필더 지역에서 일본 진영을 향하여 스루패스가 들어왔고, 이를 본 내가 한 발짝 빨리 뛰어나가 오른발 논스톱 슛을 그대로 때려 골을 넣었다. 그토록 연습 내내 애를 먹이던 오른발로 결국 골을 넣게 되었다. 비록 준비한 세레모니(?)는 하지 못했지만 데뷔전에서 골을 넣어 오랜만에 학창시절 즐겨하던 ‘나에게 오라’ 세레모니까지 했다ㅎㅎ 그러나 이후 일본의 반격도 만만찮아 결국 고바야시 검사에게 한골을 내주어 검사팀은 1-1로 경기를 마쳤다.
이어서 수사관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한국의 수사관팀은 정말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가 많고 조직적이며 수비 역시 안정되어 있어서 어떤 조기축구회 팀과도 자신 있게 붙을 정도로 실력이 우수하다. 정말이지 응원하는 팀이 없어도 축구경기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나보니 일본 측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수비를 맡고 있는 일본 선수들은 기존의 일본스타일과는 달리 아주 타이트하고 투박하게 수비를 하며 우리 공격수들을 1대1로 대인마크를 하여 초반 약간 고전을 하였다. 그래도 다시 경기는 활기를 뛰어 홍도근, 김태형 선수를 중심으로 좌우의 심재열, 심영우, 중앙에 박영삼 선수을 통하여 계속하여 일본 측 골문을 두드렸으나 일본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골문을 여는 데는 실패를 하였다. 오히려
일본 측의 역습과 공격에 의해 2골을 내주어 수사관팀은 2-0으로 지고 말았다. 정말 아쉬운 경기였다. 경기장에서 일본 선수단이 마음껏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헹가래를 치고 있을 때 우리는 패배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다. 그렇지만 또 나름 드는 생각이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이 우리가 준비한 경기장에서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흐믓한 생각도 들었다. 또한 그동안 얼마나 승리에 목이 몰랐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도 있었다. 그것도 적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만찬장에서의 일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팀과 일본팀은 숙소인 대웅경영개발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격적인 2차전이 시작된 것이다. 오후 7시부터 검찰국장님께서 주최하신 바비큐파티가 시작되었다. 이때만큼은 정말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누구 하나 시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일본 선수들과 어울렸다. 포지션에서 겹치는 선수들은 얼굴만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오른쪽 수비를 보았던 아사누마 검사, 오른쪽 미드필더를 보았던 오기노 검사는 다음에는 더 열심히 훈련해 와서 나를 꼭 잡고야 말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한국팀 이춘 검사가 우리나라에 법무협력관 등으로 와 있는 구마다 검사와 고바야시 검사(우리와 여러차례 함께 훈련을 한 적이 있음)의 행적을 장난스럽게 의심하자 자신은 스파이가 아니라며 절규하듯 외치면서 원샷을 한 고바야시 검사도 생각난다. 어느덧 검찰국장님께서 제조하시는 폭탄주도 양국간의 선수들이 어울려져 함께 마신 후 노래방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몇몇 일본 검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10분 정도 늦게 들어갔는데 식당 안이 온통 살색이었다ㅎㅎ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축구, 그 이상의 감동
나는 스포츠를 너무 좋아한다. 팀웍을 다지면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구성원들은 정말 빠른 시간 내에 하나가 될 수 있다. 또한, 멀게만 느껴졌던 이웃나라 일본 선수들과 함께 경쟁하고 함께 어울림을 통하여 정말 소중한 친구들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위 두 가지를 모두 얻어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높은 선배가 형이 되고, 일방적 관계가 아닌 하나의 팀원으로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력하고,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배려의 차원에서 ‘건배’가 아닌 ‘간빠이’를 자연스럽게 먼저 외칠 수 있는 관계도 되었다. 스포츠를 통하여 앞으로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검찰 아니 검찰을 넘어 양국간의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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