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일본에서는 DNA감정을 다시 실시한 결과 18년째 복역 중이던 무기수가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석방되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떠올랐다.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진 DNA 감정에 오류가 있었던 걸까?
우선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기로 한다. 1990년 5월, 당시 4살이던 여자 아이가 실종 된 후 다음 날 강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여아의 옷에서는 남자의 체액흔이 발견되었으나 일치하는 용의자를 찾지 못해 수사는 1년 이상 공전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신만고 끝에 스가야 도시카즈’라는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DNA 감정을 실시한 결과 체액흔의 주인으로 밝혀져 경찰은 그를 체포하고 91년 11월 살인죄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하던 ‘스가야’는 공판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였고 이에 불구하고 재판부는 93년 7월 유죄를 인정하여 1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스가야는 판결에 불복하여 무려 6년여에 걸쳐 항소, 상고하였으나 최고재판소는 2000년 무기징역을 확정하였다. 피고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형이 확정된 것은 DNA 감정결과에 대한 증명력을 확고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스가야’의 무죄를 확신하던 변호인은 2002년 독자적으로 당시의 감정물에 대하여 DNA 감정을 실시, 체액흔과 스가야’의 DNA型이 다른 사실을 알아내고 재심을 청구하였고 무려 6년이난 흐른 2008년 12월 재심의 항고심인 東京고등재판소는 DNA 재감정 실시를 결정한다. 2009년 5월에 이르러 피해자 속옷의 체액gms과 스가야’의 DNA型이 다른다는 감정결과를 얻어 전격적으로 ‘스가야’는 형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되기에 이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1991년과 2008년의 DNA감정결과가 다르다면, 어느 하나의 DNA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이 당연히 생기게 된다. 결론을 말하면 어느 쪽의 감정도 허위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는 시대에 따른 DNA감정의 기술적 변화를 이해해야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은 ‘MCT118’이라는 한 가지 분석기법을 사용하여 DNA감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 분석기법에 의하면, 일본인 내에서는 ‘1000명 당 1.2명’의 확률로 동일한 MCT118 DNA型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다고 한다. 당시 체액흔과 ‘스가야’에 대한 감정결과는 MCT118 분석에 의한 것으로 둘은 정확히 일치하였다. 결국 속옷의 체액흔은 1000분의 1 확률에 해당하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는 말이다.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우연의 일치가 생긴 것이다. 과연 그럴까. 1년 이상 용의자를 지목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일본 경찰은 ‘스가야’ 검거 이전에도 많은 용의자를 상대로 DNA 감정을 실시했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500명 쯤 DNA 감정을 실시하였다면 어떨까? 진범은 아니지만 우연히 체액흔과 DNA型이 같은 사람이 나올 확률은 1000분의 1이 아니라 2분의 1 정도로 커지게 된다. 좀처럼 나오기 힘든 우연이 아니라 충분 개연성이 있는 우연의 일치인 것이다.
변호인이 독자적으로 DNA 감정을 실시할 즈음인 2000년대 초반으로 가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DNA감정기술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이르러서는 MCT118외에도 많은 분석기법이 새로이 개발되었다. 현재는 우연히 DNA型이 동일한 사람이 존재할 확률이 수천 조 분의 일에 이를 만큼 식별력이 높아져 있다. 15가지의 기법을 동시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방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법으로 DNA감정을 하였다면 위와 같은 황당한 경우는 물론 생길 수가 없다.
일본에서는 2005년 무렵까지도 MCT118을 다른 기법과 함께 사용하여 왔으므로, 아마도 변호인은 MCT118과 함께 다른 분석기법으로도 감정을 실시하였을 것이며 MCT118 DNA型은 ‘스가야’와 체액흔이 같지만 다른 분석기법에서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무죄의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대검 유전자감식실은 1992년 국내 최초로 DNA감정을 실시하였는데, 당시 이미 MCT118을 포함한 4가지 기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가야’가 우리나라에서 DNA감정을 받았더라면, 억울하게 복역을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DNA감정을 통하여 억울한 수형자를 석방시킨 사례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2000년부터 결백프로젝트(Innocent Project)라는 사업을 시행하면서, DNA감정이 없거나 극히 초기이던 시절에 유죄를 인정받은 사건에 대해서 DNA감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사형수를 포함해 200여명의 수형자들의 억울함이 밝혀져 석방되었다. 석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진짜 범인을 검거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DNA감정은 유죄입증뿐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수단으로서도 매우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하려면 당시 사건의 증거물이 안정적으로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입법추진 중인 DNA 데이터베이스 관련 법률이 시행되면, DNA와 관련된 증거물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오래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관련 감정물을 안정적으로 냉동보관하고 있는 미국, 영국 등을 볼 때 부러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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