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보수와 진보는 끝없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하지만 이젠 의미 없는 달리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왔다. 과거보다 미래를 주시하기 위해, 더 나은 국가발전을 위해 보수와 진보가 두 손을 맞잡으려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는 지난 3월부터 매달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토론회를 열어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중지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열린 제4차 남북·한미관계 주제 토론회 이다.
보수와 진보 간 토론은 자주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점만 확인하고 헤어지는 비생산적인 토론에 불과했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는 지혜는 언제나 소중합니다. 이제 이 자리를 통해 그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
다른 점을 확인하는 것이 아닌 공통점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지난 5월 25일 제3차 토론회 ‘한국 민주주의를 보는 시각’에서 <중앙일보> 허남진 논설주간 기조연설 중) 지난 3월부터 보수와 진보가 매달 한자리에 모이고 있다.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가 주도하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공동 프로젝트 덕분이다. 사람 사는 곳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갈등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 이를 풀어내는 과정이 곧 사회 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대안은 소통과 화합이다. 그러기 위해선 통합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이념대립 극복이 우선이다.
사통위는 이념’을 사회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키워드로 세우고 이념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라종일 우석대 총장을 분과위원장으로 삼은 23명의 위원은 지난 2월 19일 1차 전체회의를 갖고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념, 시장경제, 민주주의, 남북·한미관계, 균형발전, 교육 등 10가지 주제로 21세기 국가전략과 사회통합을 모색하기 위해 매달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토론회이다.
지난 10년을 뒤돌아볼 때 세계는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02년 미국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으로 세계평화의 위기가 도래했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마저 촉발되면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대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사회 전반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산업, 노동, 소득의 경제 양극화는 물론 교육, 주거, 노후의 사회 양극화까지 갈등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갈등 해소 최선의 대안은 소통과 화합
그러나 무엇보다 국내외를 둘러싼 끝없는 불안감으로 보수 대 진보라는 소모적 이념갈등이 되풀이되는 것이 문제다. 반복되는 이념갈등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사회발전마저 위협한다. 사통위 이념분과위원들은 우리나라의 보수-진보 이념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국민의 이념 의식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5차례 사전준비회의를 가졌다.
지난해 12월엔 한국정치학회 연례학술대회를 열어 ‘한국정치와 이념갈등 : 소통과 공존의 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국내 이념갈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학술대회 결과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실상 중도로 수렴되고 있으나 오히려 정치인들이 양극화돼가고 있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이념갈등과 이념지형의 변화’란 논문에서 “최근 이념갈등이 심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국민들의 이념적 분화가 심화된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지식인의 이념적 분화가 심화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국사회에서 이념갈등이 일상화되는 주요 이유는 기존 정치제도를 통해 이념갈등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이 이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학술대회를 기점으로 사통위 이념분과위원들은 이념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념을 통합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에 이념분과위원회는 올해 비전을 ‘포용과 존중으로 함께 가는 대한민국’으로 설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수와 진보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며, 토론회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공통분모를 도출하고, 미래 한국의 새로운 국가 비전을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념, 통합의 대상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토론회는 지난 3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총 5차례 열렸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토론회를 진행하기 위해 보수 성향 민간연구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진보 성향 민간연구단체인 좋은정책포럼이 참여하고 있으며, 토론회 운영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하고 있다.
이 토론회의 백미는 공동제안서다. 1차 토론회 때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보수 진영의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와 진보 진영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함께 작성한 제안서에서 “한국사회의 막무가내식 이념갈등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며 “이를 넘기 위해선 보수와 진보가 ‘싸움의 룰’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제안서에서는 인본주의(人本主義) 민주주의와 시장제도 평화와 번영의 대외관계 사회적 약자 보호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동시 존중 등 6개항을 제안했다.
가장 최근에 열린 5차 토론회에서는 ‘균형발전 정책과 지방분권’이란 주제로 보수 진영의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와 진보 진영의 김영정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지역격차의 심각성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진보와 보수의 주장은 엇갈렸으나 장시간 토론 끝에 5개의 합의점을 이끌어냈다. 지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균형발전 정책은 지역특화 발전을 지향, 중앙정부의 일정 역할 필요 지방분권을강화하기 위한 헌법 조항 명시 등이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토론회는 매회 2백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찾을 만큼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학생부터 관련 학자까지 나이와 직업, 세대를 불문하고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통위 이념분과를 담당하는 김인호 사무관은 “보수와 진보가 공동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경쟁과 협력의 미래지향적 국가운영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며 토론회에서 합의된 사항들을 토대로 내년도 이념분과위원회 업무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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