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이자 민족계몽운동가였던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의 74주기 추모식이 오는 10일 오전 11시 도산공원(서울 신사동 소재)에서 열린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백낙환)와 흥사단(이사장 반재철)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박유철 광복회장, 박상은 이종구 국회의원, 신연희 강남구청장, 광복회원, 흥사단원, 진선여자중학교 학생,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날 추모식은 윤경로 도산학회장의 약전봉독, 백낙환 기념사업회장의 추모식사,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장 흥사단 이사장의 추모사에 이어 오동춘 시인의 헌시낭독, 진선여자중학교 학생대표의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 드리는 글’ 낭독, 압구정여성합창단의 추모가 제창과 헌화ㆍ분향의 순으로 진행된다.
안창호 선생 공적
안창호 선생(1878.11.9-1938.3.10)은 평남 강서에서 출생하였으며, 청년시절부터 탁월한 웅변가이며 뛰어난 조직가로서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자주독립과 국민의 자각을 호소했다.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친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상부상조와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동 회를 공립협회로 재창립하여 초대회장에 취임, 공립신보를 발행했다.
1906년 귀국하여 1907년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구국 운동을 전개하였고, 1909년에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청년운동을 펼쳤다.
1910년 통감부의 도산내각 조직 권유를 일축하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191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13년에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과 국권회복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선생의 선각자적 사상은 이 땅의 청년들을 분발시켰으며, 민족교육운동을 통해서만 자주독립이 가능하다고 믿어온 도산(島山)의 「민족개조론」과 무실역행(務實力行)을 바탕으로 한 흥사단 정신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9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대회를 개최하고 파리강화회의에 국민회 대표 파견 계획을 추진하다가, 국내에서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들어서자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여 연통제 실시, 독립신문 발간 등 독립운동의 방략을 지도했다.
1923년에는 대독립당을 결성하고 중국 만주 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근거지로서 이상촌 건설 시도, 1924년에는 남경에서 명학원을 설립하여 실력배양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등 평생을 조국독립에 헌신했다.
1930년에 동인호조사”(同人互助社)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합심 협력을 기획하였고, 1931년 1월에 흥사단 제17회 원동대회를 주재하여 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흥사단보를 발행하는 등 국민의 자질혁신과 청년 인재양성 등 흥사단의 이념 구현에 주력했다.
1937년 6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을 얻어 동년 12월 보석으로 출옥했으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38년 3월 순국했다.
순국 후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현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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