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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증언⑨]세상 밖으로 나오다
기사등록 일시 : 2012-10-03 16:33:36   프린터

본 내용은 지난 21일 북한정치범 수용소해체본부 주관으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실시한 ‘죽음의 경계에서 탈출한 12인의 증언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체를 밝힌다’에 게재된 탈북자 신동혁(개천수용소, 1982-2005 수감)씨 증언의 일부 내용임.(편집자 주)

 

 

삶의 시작- 수용소 생활의 시작

 

나는 1982년 11월 19일 평안남도 개천 14호 완전통제구역 관리소에서 출생했으며 당시 호적상 이름은 신인근이었다. 부친과 모친의 성함 신경섭과 장혜경이었으며 위로 형 신희근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1946년 평안남도 문덕군 룡복리에서 열두 형제 중 열한번째로 태어나셨다. 막내 신명섭과 열째 신창섭도 같은 관리소에 수감되었다.

 

아버지 가족은 1965년 어느 날에 갑자기 할아버지 집에 들이닥친 안전원들에 의해 완전통제구역 14호 정치범관리소에 끌려왔다고 한다. 조부모님도 같이 수감되었다.아버지의 형제 중 둘이 월남을 한 전력이 있기는 하지만 1965년 14호 관리소 설립 후 수감 대상자 물색 과정에서 문제가 되어 억울하게 끌려왔다고 추측할 뿐이다. 관리소에 들어가자마자 가족들의 신분증과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고 형제들은 강제로 뿔뿔이 흩어져 이후의 생사는 알 수가 없었다.

 

수용소에서 나고 자란 나는 가족 간의 정이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식구는 한 지붕 아래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관리소에서는 혼인 후에도 부부가 같이 살 수가 없었고 자녀 또한 인민학교 졸업 후에는 어머니와 분가해야만 했다. 친형도 ‘형이라는 존재’로 인식했을 뿐이고 부모님께도 특별한 정이나 그리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저 낳아 준 엄마에 대한 감정이 아픈 상처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머니 장혜경은 관리소에서 아버지를 만나 혼인했으므로 그 전의 삶과 모계 쪽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한 번은 어머니와 농촌지원 전투를 거들기 위해 함께 작업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그 날 몸 상태가 좋지 않던 어머니는 맡은 논뙈기 3개 중 한 개도 끝내지 못하였다. 그러자 담당 보위지도원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한 시간 반 동안 따가운 햇살이 비치는 논두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들게 했다. 식사를 거르고 처벌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노동을 하던 어머니는 결국 3시 반쯤에 졸도하고 말았다. 하루 계획량을 채우지 못한 어머니는 그 날 저녁 사상투쟁회의에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은 채 40명한테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4호 수용소의 생활

 

대부분의 14호 관리소 수감자들은 그 곳에서 출생했거나 아주 오랜 시간 수감되어 있으므로, 바깥세상과 접촉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규정을 지키고 살다가 수용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해제되어 나간 사람은 본 적이 없으며, 탈출을 시도한 수감자들은 공개처형장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수용소의 경비는, 입구에 경비대 청사가 하나 있고 임시초소가 경계에 50m 간격으로 세워져 있어 매우 삼엄했다. 관리소의 거주지는 본 마을과 1호 골부터 5호 골까지 포함한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5호 골로 들어갈수록 죄질이 무거운 자가 많아 생활에 제한이 상대적으로 컸다. 일을 잘 하는 수용자들은 본 마을까지 나올 수 있었다.

 

감시와 억압이 심한데도 관리소 내에서는 불만이 없었다. 이는 철저하게 사람들의 비판의식을 마비시켜서 저항의식이나 불만 등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휴일은 보통 매월 1일이었다. 일을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에 보내주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한 달에 한 번씩 밖에 뵐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더 열심히 일을 하셨던 것 같다. 

 

배급은 노동 강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을 받아 항상 굶주려 있었다. 부식으로는 일 년 내내 염장배추만 지급받았다. 공장에서나 학교에서나 항상 배가 고파 모두 쥐를 잡아 구워먹곤 했다. 산에서 나는 열매와 버섯, 심지어 방아깨비와 잠자리 등의 곤충들도 닥치는 대로 먹어 영양보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관리소에도 출산 전 보름간의 산전 휴가와 출산 후 한 달 간의 산후 휴가가 있지만 그 후에는 돌봐줄 사람이 없기에 아이를 업고 일하러 가야만 한다. 의료 시설도 취약해서, 병원 내에 의사 하나와 간호사 하나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작업반장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못했다.

 

재소자들의 집은 “집 안에 지팡이를 휘둘러도 건질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재도구가 없었다. 게다가 석탄을 이용해 불을 땠던 까닭에 종종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나왔다. 관리소에서는 ‘모두 다 법 규정과 규율의 요구대로’라는 딱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수용소 내 규율은 굉장히 엄격하고 무자비했다.

 

관리소 내에서도 결혼이라는 게 행해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동력 증진 차원에서의 의미가 짙었다. 그나마도 보위지도원의 결정에 의해서 전적으로 짝이 결정되어 상대가 싫어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은 수용자들의 평생소원이나 다름없어서, 포상결혼은 일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보상제도나 마찬가지였다. 나의 부모님도 이러한 포상결혼의 한 사례이다. 때때로 보위부원에 의해 임신 당한 여자들이 생기곤 하는데 그 여자들은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로 사라졌으며 남녀가 서로 눈이 맞은 경우에도 둘 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상황이 이리 처참하다 보니 수용소 안에서 아동들의 인권이나 제대로 된 교육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관리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정이란 것이 없으며 머릿속에는 오직 수용소 내의 규정을 잘 지켜 재소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중노동을 피해갈 수는 없어서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지하 갱에서 탄차를 밀고 다니고, 주어진 일을 완수하지 못할 시에는 가혹한 체벌을 받았다. 이 가련한 생명들은 평생을 수용소에서 살다가 자기의 인생을 속절없이 마감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1999년 12월경 노인들만 모인 작업반이 산 경사지에 만들어 놓은 밭으로 거름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노인 넷이 힘에 부친 나머지 중간에 조금 쉬다가 보위지도원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들이 용서를 구하는 것도 무시한 채 보위지도원은 5시간 동안 무릎을 꿇게 했고 저녁 7시부터는 구들바닥에 끓어 앉힌 채 화상을 입을 정도로 장작을 계속 뗐다. 그 노인들은 몇 달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막장(갱)과 발전소 건설현장의 희생자들

 

1998년에는 거의 1년 동안 대동강 중형발전소 댐 건설에 동원되었는데, 현장에서 인부들과 같이 숙식을 해결했다. 워낙 고되고 규모가 큰 작업이라 한 달에 사망자만 7~8명씩 나왔지만 보충 인력은 충분했기에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3~4구의 시체가 나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1999년 3월에는 학생 8명이 한꺼번에 콘크리트에 깔려 사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수용소 내 비밀감옥에서의 고문과 수용생활

 

1996년 4월 6일 아침에 나는 학교에서 수갑이 채워지고 머리에 검은 천이 씌워진 채 관리소 지하 감옥에 끌려갔다. 보위부원이 어머니와 형이 새벽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었다고 말하면서 너희 식구의 의중이 무엇이냐, 네가 또 아는 것이 있느냐면서 윽박지르고 추궁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와 형의 탈출 계획을 몰래 엿듣고 신고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탈북 후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나의 부끄러운 과오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기 전날, 선생님이 나에게 집에 가서 자고 와도 좋다고 말했다. 나름의 포상이었겠지만, 그것은 더 불행해질 수 없다 믿었던 우리 가족을 지옥 끝으로 떨어뜨린 한마디였다. 집에 와 보니 형이 와 있었다. 시멘트 공장에서 일했던 형은, 일을 너무 못해서 포상휴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곤 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우리 형제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 후 잠자리에 든 나는 엄마와 형이 소곤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은 공장에서 잘못을 저질러서 보위부원 몰래 집으로 도망을 쳐 온 것이었다. 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던지 수용소를 탈출하겠다고 어머니께 말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수용소를 나갈 아들을 위해 귀하디 귀한 쌀밥을 해주고 계셨다.

 

수용소는 10개의 규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탈출계획을 사전에 습득하고서도 신고하지 않는 자는 총살형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14호 수감자라면 누구나 주지하고 지켜야 할 규칙을 어긴다는 것에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가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형의 탈출 기도를 어머니가 묵인하고 있다는 것에도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 형에게만 쌀밥을 주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학교에 도착한 나는 친한 친구를 깨워 함께 학교 경비병을 찾아갔다. 먹을 것을 더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나는 어머니와 형의 탈출계획을 신고했다. 당시에는 가족애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나의 관심사는 수감자로써의 의무를 다하는 것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 먹을 것을 보장받는 것뿐이었다.

 

감옥으로 끌려온 나는 이틀이 지난 후에는 거의 반 나절을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문을 받았고, 그 다음날부터는 고문실로 끌려가 본격적인 심문을 받았다. 공포에 입이 얼어붙은 나는 추궁을 받을 때마다 모른다고만 답했지만 나를 심문하던 사내 2명은 끝내 내 허리를 불로 지지고 사타구니를 갈고리로 찍는 등 모진 고문을 가하기 시작했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당시 열 네 살의 나이로 당했던 불 고문의 자국은 지금도 허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야 나는 용기를 내어 겨우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고발한 것이에요. 내 친구에게 확인해 보세요.” 처음엔 내 말을 믿지 않던 보위부원들은 함께 경비병을 찾아갔던 친구의 진술을 듣고서야 나의 말을 믿어줬다.

 

내가 수감된 감옥에는 김진명이라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내 상처를 소독해주시고 끼니도 일일이 챙겨주시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셨다. 그 분에게서 바깥 세상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듣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저씨는 생의 의지가 매우 강하신 분이셨다. 자포자기해 있던 나에게 살아갈 의지를 심어주셨으며 이따금씩 내게 자신도 여기서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시곤 했다. 그렇게 비밀 감옥에 들어온 지 7개월이 지나서 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와 형의 공개처형, 그리고 우리 가족의 비극적인 삶

 

비밀 감옥을 나온 내 눈 앞에는 상상도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비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아버지와 함께 공개 사형터에 끌려갔는데 잠시 후 처형장으로 끌려나온 사람들이 형과 어머니였다. 형은 얼굴에 살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위었고 어머니는 몸 전체가 부어 있었다. 어머니는 교수형으로, 형은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밧줄이 어머니의 목을 죄어올 때, 어머니는 몸을 버둥거렸고 같이 처형을 지켜보던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형이 총살로 죽음을 맞이했다.

 

지하 감옥을 다녀온 뒤에는 학교생활이 힘들어져 부모님이 나를 수용소에서 낳았다는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담임선생은 ‘어미와 형이 지은 죄를 씻으라’며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나에게 노동을 시켰고, 심지어 소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급우들마저도 온갖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나를 힘들게 하였다. 당시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바닥에 떨어진 콩이나 옥수수 알을 주워 먹었고 심지어 소 똥 안에 섞인 옥수수 알까지 먹었다. 학교생활은 1997년 3월에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신 뒤로 편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괴롭히는 걸 금지하시고 감사하게도 때때로 식당으로 데리고 가 남은 밥 등을 주시곤 했다.

 

1996년 9월에는 숙모와 사촌누나 신혜숙이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가 비참하고도 어이없는 비극을 맞이했다. 사촌누나는 열일곱 살 정도로 외모가 굉장히 수려했는데 도토리를 줍는 수감자들을 감시하던 경비대 중 한 명이 누나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놈은 반항하는 숙모의 눈을 가리고 손을 뒤로 묶은 채 누나를 성폭행했다. 후에 기절했던 숙모가 눈을 떠보니 누나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끝내는 사망했다. 숙모는 그 다음 날 새벽에 길거리에 나앉아 경비대들을 욕하며 통곡하다가 어디론가 잡혀갔고,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사건 이후 아버지의 의식이 점점 바뀌기 시작하여 “무슨 수를 써서든지 너는 꼭 한 번 이 수용소를 벗어나 바깥세상이 어떤 건지 구경을 하고 아버지의 대를 끊지 말고 이어 달라.”는 부탁을 하시곤 했다.

 

처참한 수감자들의 생활

 

내 사촌누나가 그러했듯이 수용소 안에서 미모가 있는 여자들은 보위부원들의 손길로부터 안전할 수가 없었다. 곱게 생긴 여자들은 보위지도원들이 자신의 방으로 청소를 하러 오라고 직접 불렀는데, 그 때부터 그 여자들은 성 노리개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보위지도원들의 눈에 든 여자들이 임신을 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는데 임신을 한 사실이 발각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더 끔찍한 사건은 2004년 11월 어느 밤에 사상투쟁회의가 있었는데 보위부원 4명이 합석한 것이었다. 그 중 2명은 수용소에서 본 기억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밤 11시에 회의가 끝난 뒤에 보위지도원은 대뜸 어느 호실에 이가 많은지 수감자들에게 물었다. 서로 앞 다투어 손을 드는 반장들 중 남자호실과 여자호실 하나씩을 골라 약을 나누어 주고 그것을 물에 타 목욕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목욕을 한 뒤 일주일이 지나자 그들의 몸에 종기 같은 것이 고름과 함께 생기고 곪아 터지더니 한 달이 지나자 살이 문드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고열에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갈 무렵이 되니 트럭 한 대가 와 모두 싣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생각할수록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다. 어떤 용도의 약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수감자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자행한 것이다.

 

완전통제구역에서의 탈출 그리고 성공

 

2004년 초, 평양 태권도 전당 기술과장 출신이라는 박용철을 만났는데 훗날 나는 이 사람과 같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나와 그는 서로 진심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가 들려주는 바깥세상 이야기를 통해 나는 점점 의식을 깨워갔다. 종종 탈출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이렇다 할 계획은 없었고 다만 기회를 노리고 있자는 이야기뿐이었다.

 

드디어 2005년 1월 2일, 작업반 전체가 화목을 하러 시멘트 공장 뒷산으로 갔는데 그 산에서 경계선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다. 박용철과 나는 기회를 엿보다가 전기 철조망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성공적으로 탈출했지만 기술과장은 철조망 사이에 끼어 버렸다. 그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산을 내달렸기 때문에 그가 후에 어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나는 박용철의 희생을 통해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완전통제구역에서의 탈출에 성공했다.

 

관리소를 탈출한 후 한 달 동안 북창, 맹산, 금야, 함흥, 길주, 청진, 고무산, 무산, 대홍단을 거친 뒤 드디어 2월 2일, 중국으로 월경했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에서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 영사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영사관에 들어선 순간에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6개월 뒤 한국에 입국한 후에야 내가 진정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Konas)

 

이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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