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수군체제는 진관체제(鎭管體制)가 성립되며 주진(主鎭)을 비롯한 제진(諸鎭)이 각 도별로 유기적으로 편성되었고 각 도에는 관찰사(觀察使)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겸직하는 이외에 별도로 전임직(專任職)의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편성되었으나, 강원도,함경도,평안도 등 해양 방위보다 육로의 방비가 중시되었던 지역에서는 관찰사(觀察使)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겸했을 뿐 전임수사가 편성되지 않았다.
해양 방위가 보다 중시된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역은 관찰사가 겸하는 수사(水使) 이외에 전임수사가 2명 배정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편성은 해양 방어를 각 도별로 분담하는 데 치중한 것이었으므로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각 도 수군의 연합작전을 펴기에는 불편했다. 임진왜란 중 경상·전라·충청 3도의 수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수군통제영(水軍統制營)과 그 책임자로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직이 마련됐다.
통제영은 방어에 유리한 입지조건에 따라 한산도·여수·고성·통영 등으로 옮겨지면서 존속하다가 1895년(고조 32년) 칙령에 따라 폐영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하고 경기수사가 겸직하는 삼도통어영(三道統禦營)은 인조 대에 경기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옮겨지면서 설치됐는데, 경기·충청·황해 3도의 수군을 통솔하도록 했으며 각 도의 수영(水營)에는 전선(戰船)·방선(防船)·병선(兵船) 등의 배들이 소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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