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홍보국장
1895년 8월 20일 미우라 공사가 계획한 명성왕후 시해사건에 시신조차 불에 태워진 채 유해도 없던 명성왕후는 2년간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고종은 소렴과 대렴이 끝난 뒤, 빈 관만으로 동구릉 숭릉 옆에 묻고 숙릉(肅陵)이란 능호를 내렸다.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의 광무황제로 즉위하며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11월 21일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다시 치르고 청량리에 장사 지내며 능호를 홍릉이라 했다.
1919년 1월 21일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 당한 고종황제는 경운궁 함녕전에서 67세로 붕어하였고 대렴이 끝나자 1월 30일 오후 4시부터 남양주시 금곡에 능을 잡고 산역을 시작하였고 명성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에서도 능을 파기 위한 공사가 벌어진다.
홍릉 천장은 고종의 산역과 똑같이 시작됐고 2월 12일 오전 6시에 현궁을 열었다. 2월 16일 오후 4시 명성황후는 금곡으로 이장됐다. 3월 3일 발인한 고종의 장례행렬은 금곡으로 도착했고 먼저 와 있던 명성황후와 고종은 3월 4일 합장했다.
고종의 홍릉과 순종의 유릉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의 홍유릉 경역은 대한제국 황실의 묘역이다. 홍유릉 경역에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구 공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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