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상고시대부터 10월 상순 국중대회(國中大會)를 열어 둥근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려 국태민안을 기원해 왔으며 1897년 고종(高宗)은 대한제국(Daehan Empire)이라 국호를 정하고 심순택(沈舜澤)의 상소에 의해 경운궁(慶運宮) 대안문(大安門) 앞에 환구단(圜丘壇)을 축조하고, 10월 12일 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환구단에 나아가 환구대제를 봉행하고 광무제(光武帝)로 즉위했다.
대한제국 고종 광무제는 광무 원년 경운궁 대안문 앞에 제천단 환구단을 축조하였는데 황단(皇壇)이라고도 하며 1층은 장광이 144 척이며 둥글게 돌로 쌓아 석 자 높이로 쌓았고, 2층은 장광이 72 척이며 석자 높이로 쌓았고, 3층은 장광이 36척이며 석자 높이로 둥글게 쌓아 올렸고,바닥은 벽돌을 깔고 황단 주위를 둥글게 석축을 모으고 돌과 벽돌로 담을 쌓았으며,동서남북으로 황살문을 세웠고 남문은 문이 셋이다.
1910년 불법 무효한 경술늑약에 의한 일제의 대한 병탄 후 환구단의 건물과 터를 관리한 총독부가 1913년 대한제국 황단 환구단(圜丘壇)과 대한 황궁 경운궁 동편 권역을 철거하고 호텔,경성부를 악의적으로 설치하여 민족정기를 훼손하였고 경운궁은 원형복원이 가능하지만 환구단은 원 위치 원형복원이 불가능하며 광무 3년(1899년)에 축조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8각 3층 건물로 황천상제,황지지 신위를 봉안한 황궁우(皇穹宇)와 화려하게 조각된 용(龍) 무늬가 있는 돌로 만든 석고(石鼓) 3개,정문만 남아 있다.
총독부가 환구단(圜丘壇)과 경운궁을 철거하고 호텔,경성부를 악의적으로 설치하여 민족정기를 훼손하였으므로 경운궁과 환구단의 역사문화경관을 침해하는 경성부 철거,경운궁 대안문과 황궁우 석고단 사이에 환구단을 복원하여 고종 광무제가 친히 환구단에서 제사드린 친사환구의를,경운궁 태극전에서 고종 광무제가 황제위에 오르는 등극의,고종 광무제의 조칙을 반포하는 반조의,황태자가 황제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리는 진치사의,문무백관들이 황제에게 축하를 올리는 하표의, 환구대제를 봉행하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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