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 도서 보관 및 출판과 정책 연구,정치 자문 등을 담당하던 규장각(奎章閣)은 1776년 정조 즉위 직후 창덕궁 안에 설치되어 역대 국왕들의 친필, 서화, 고명(顧命), 유교(遺敎), 선보(璿譜)를 관리하고 영조의 어필(御筆), 어제(御製)를 봉모당(奉謨堂)을 세워 봉안하고, 사무청사인 이문원(摛文院) 등을 내각으로 하였으며 출판 등을 담당하던 교서관(校書館)을 합쳐서 외각으로 삼았다.
1781년 정조(正祖)는 청사들 중 가장 넓은 옛 도총부(都摠府) 자리로 옮기고, 강화사고 자리에 강도외각(江都外閣)을 신축하였고 내각의 부설 장서각으로 국내 문서를 보관하는 서고(西庫)와 중국 문서를 보관하는 열고관을 만들었다. 열고관(閱古觀)의 도서가 늘어나자 다시 개유와(皆有窩)라는 서고를 증축하였으며 1781년에는 서호수(徐浩修)에 의해 ≪규장총목≫이라는 도서목록이 작성되었다.
관원으로는 내각에 종1품∼종2품의 제학 2명, 종2품∼정3품 당상관의 직제학 2명, 정3품∼종6품의 직각 1명, 정7품-정9품의 대교 1명이 있었고, 외각에는 당상관으로 겸하는 제조 2명 아래, 정3품 판교, 종5품 교리, 겸교리, 별좌, 정, 종6품 별제, 정7품 박사, 정8품 저작, 정9품 정자, 종9품 부정자 등이 있었다. 내각에는 정식 관원 외에 재주와 학문이 뛰어난 서얼 출신의 학자를 충원하는 검서관(檢書官)이 있다.
각신(閣臣)들은 승정원의 승지 이상으로 국왕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젊은 당하관 중에서 선발된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시험하고, 국왕의 모든 언동을 기록했다. 또한 왕과 정사를 토론하였고, 교서를 대신 작성하기도 하였으며 그 밖의 각종 정책결정이나 편찬, 간행에도 깊이 관여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궁내부에 소속되었고, 1895년 규장원으로 변경되었다가 1897년 규장각으로 환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