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儀軌)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기록으로 훗날에 참고하기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며 대개 1-4책의 필사본으로 제작되었지만, 8-9책에 달하는 분량이 활자로 인쇄되어 폭넓게 반포된 것도 있다.
행사가 끝나면 의궤를 편찬할 기구와 담당자가 결정되고 주관 관서인 도감과 관련 관서의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편찬하였다. 각 책의 제목은 해당 행사를 주관한 임시 관서의 명칭에 '의궤'를 붙여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의궤가 작성되는 주요 행사는 왕비·세자 등의 책봉(冊封)이나 책례(冊禮), 왕실 구성원의 결혼, 선대(先代) 인물들의 지위를 높이는 추숭(追崇)이나 존호가상(尊號加上),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의 마련에서 능원(陵園)의 조성 및 이장에 이르는 각종 상례(喪禮), 신주를 태묘(太廟)에 모시는 부묘(祔廟)를 비롯한 여러 제례(祭禮),국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親耕), 궁궐 건물의 건설 및 보수, 공신 녹훈, 왕실 인장(印章)이나 국왕 초상화의 제작 등에 편찬됐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명령 및 보고 또는 관서들 사이에 오고간 전교(傳敎)·계사(啓辭)·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들과 소요 물품의 제작과 조달을 담당한 부속 공작소(工作所)의 기록들은 각기 개별적인 의궤(儀軌) 형식을 갖추고 있다. 왕실 주요 행사가 진행된 과정, 업무의 분장, 동원된 인원, 물자 및 비품의 조달과 배정, 경비의 수입과 지출, 건물 및 비품의 설계 및 제작, 담당 관리와 동원된 인물, 행사 유공자에 대한 포상 등 관계된 사실 모두를 수록했다.
채색의 반차도(班次圖)와 같은 그림도 실었다. 대체로 5-8부 정도가 제작되었는데, 임금의 열람을 위하여 고급재료로 화려하게 만드는 어람용(御覽用) 1부가 포함되며 나머지는 관련 관서 및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도록 했다. 이 중 어람용을 포함하여 1860년대 이전의 의궤 중에서 강화도 외규장각(外奎章閣)에 보관되던 많은 수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약탈당하고 교육기관에 불법이관되었으므로 문화재청은 환수,이관하여 고궁박물관이 전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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