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보 수집기관의 통합 검토, 청와대 NSC의 보강, 공직자 기강확립 등 추진해야
김성만 (예, 해군중장.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북한 김정일 사망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의 대북정보 부재(不在)가 현실로 나타났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여기에 더해 국가위기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언론보도를 종합하여 자세히 살펴보자.
북한의 움직임은?
김정일은 2011년 12월17일(토) 0830분에 현지지도 중 열차에서 사망했다. 북한은 12월19일 오전 10시에 방송을 통해 ‘정오 특별방송’을 예고했다. ‘중대방송’ 예고는 간혹 있었지만 ‘특별방송’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외엔 사용된 적이 없는 용어다. 북한은 예고한대로 정오12시에 김정일 사망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우리 정부의 움직임은?
국가안보를 책임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국가위기관리실, 국가정보원·국방부·통일부·외교통상부 등 안보·외교라인 전체가 김정일 사망이 발표될 때까지 51시간30분 동안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은 12월17일~18일 일본을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했다. 대통령은 17일 오후(12:40)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한 후, 18일 오후(14:40) 서울공항에 돌아왔다. 즉, 26시간 동안 북한엔 김정일이 없었고 한국에도 대통령이 없었다.
그리고 청와대와 정부는 12월19일 오전까지만 해도 평상적 분위기였다. 19일 아침에는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생일파티가 열렸다. 71세 생일이자 결혼 41주년, 대통령 당선 4주년인 ‘트리플 기념일’이었다. 청와대 직원 200여명은 본관에 모여 깜깜하게 불을 꺼놓고 있다가 아침(07:20경)에 출근한 이 대통령을 맞이하며‘서프라이즈’파티를 열었다.
오전 8시부터 1시간30분가량 진행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북한의 이상동향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북한조선중앙방송의‘특별방송’이 예고된 이후에도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특별한 것이 파악된 것은 없다”고만 말했었다. 통일부 당국자도“김 위원장이 최근 현장지도를 했고 북한 내 특이동향도 없었다”면서“김 위원장의 사망여부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망을 알리는 생방송이 나오는 그 시각(12:00)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국회 여야 원내대표 면담차 여의도 국회에 있었고, 정승조 합참의장은 군부대를 순시하고 있었다. 탈북자 단체와 민간 기업의 움직임은?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탈북자 단체와 대기업이 사전에 이를 인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공식 사망발표를 20분 앞두고‘NK지식인연대’는 북한이 예고하고 있는 특별방송이 김정일의 사망소식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한 탈북자출신의 지식인들로 구성된‘NK지식인연대’는 12월19일 11시41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12월19일 현재 북한중앙텔레비전에서는 12시부터 특별방송이 있다고 거듭 발표하고 있다”면서“특별방송을 알리는 예고로부터 김정일이 사망보도를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NK지식인연대는“예고를 하는 방송원이 매우 비통한 어조와 표정으로 특별방송을 알리고 있으며, 1994년 김일성사망 시를 연상시키는 예고보도를 하고 있다”면서“지금 방영되고 있는 모든 프로그램이 김정일의 생애와 활동 소개로 일관되어 있다”고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리고 뉴스통신사인 뉴시스는 일부 언론관계자의 말을 인용, “某기업의 한 고위임원이 12월18일 저녁 몇몇 언론에 전화를 걸어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설이 있다. 그 쪽 분위기는 어떠냐’고 문의를 했다”고 보도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김정일의 급사(急死) 가능성은 이미 예고돼 있던 사실이다. 커트 캠벨 美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2010년 2월 방한 때 국내 정치인과 가진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3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김정일은 2008년 뇌졸중(腦卒中)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최근에는 담배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하의 맹추위가 몰아친 12월에 들어서만 군부대 훈련참관 2회, 공연관람 2회 등 9회의 공개 활동을 했다. 실내행사 5건, 실외행사 4건이었다.
김정일은 12월10일 함경남도 함흥의 여러 공장·기업소를, 12월13일에는 평양 근교에 있는 제966 대연합부대(평양방어사령부)를 찾아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했고, 12월15일에는 평양 통일거리에 문을 연 하나음악정보센터와 광복지구상업중심(대형마트)을 방문했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과 김정은으로의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그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강행군이다. 북한은 방송을 통해 현지지도 동영상을 모두 공개했다. 당연히 우리 정보기관은 이를 주목해야 했다. 김정일은 북한의‘핵 통제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의 군사지휘체계는 더욱 한심하다. 북한의‘특별방송’예고를 듣고도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이 부대를 떠나 있었다. 작년 천안함/연평도 피격사건 당시와 유사하다. 우리 정보기관의 분석·판단이 일개 탈북자단체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런 일이 또 있었는가?
그렇다. 천안함이 공격당하는 시각(2010.3.26, 금요일21:22, 군사 취약시간)에 우리 합참의장은 대전지역에 출타 중이었다. 합참은 천안함이 피격되기 수일 전에 북한 잠수정과 잠수정 모선이 기지를 이탈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연평도가 포격을 받은 시각(2010.11.23, 화요일14:34)에 우리 국방부장관은 여의도 국회에 있었다.
합참은 연평도 피격 전 적(敵)개머리지역에 방사포가 집결하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연평도 포격 당일 오전에 북한은 우리(국방부)에게 “포격을 경고하는 전통문”을 보내왔었다. 이렇게 군(軍)의 정보판단 실패로 국방부(합참) 지휘부의 대응조치는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에 국가위기관리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정상으로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대북정보 수집기관의 통합 검토, 청와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의 보강, 공직자 기강확립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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