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털뉴스 김형근 기자 = 오늘 우리 세상에는 동지와 배신자 그리고 보통 사람이 살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배신자는 거꾸러지고 동지만 남는다.
동지는 ‘뜻을 함께 하며 일을 함께 도모하는 사람’이다. 동지는 ‘뜻’을 세상 사람과 공유하여 세상에 당당하게 세워야 한다. 동지는 ‘뜻’에 합당한 ‘일’을 만들고 목숨을 걸고 죽음을 불사하며 ‘일’을 이루어야 진짜 동지가 된다.
배신자는 ‘탐욕을 따르는 자가 뜻을 버리고 일을 부수며 결국 사리사욕으로 배를 채우다 거꾸러지는 사람’이다. 배신자는 ‘탐욕’을 사유하여 의지와 철학을 버려야 한다. 배신자는 ‘뜻’을 버리고 ‘시리사욕’을 만들고 목숨을 부지하여 죽음을 부르는 ‘일’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이루어야 진짜 배신자가 된다.
역사란 ‘뜻’과 ‘탐욕’이 번갈아 나타나며 벌어지는 사건의 정제된 해석이다. 사람이 만든 ‘뜻’은 공유되어 전파되고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나아가서 아주 많은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오래도록 회자 된다. 사람이 채우는 ‘탐욕’은 독점되어 뜻에 침투되고, 뜻을 부수며, 독점 소집단 말고는 많은 사람에게 어떤 도움도 안 된다. 독점 소집단에게 유리하지만 결국 사유화되고 거꾸러진다.
오늘 우리가 살아 가는 세상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많은 사건이 벌어진다. 사람이 다 똑같지 않고 아주 다르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이기붕의 이야기가 벌어졌지만 사람들은 아직은 모른다. 3대가 지나도 모를 지 모른다. 일부 집단에게 독점되어 수 없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이득을 안겨 주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뜻을 버리고 사리사욕을 채우려 들었다 하더라도 겉모습은 교언영색으로 치장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훗날 사람들은 기억한다.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남게 되고 기억한다. 사람들의 기억은 흔적을 남기고 아주 정말 작은 흔적이 이야기를 되살릴 수 있다. 그리고 뜻도 없고 탐욕도 없는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과 기억을 바라보며 흔적과 기억을 깨우며 이야기를 만든다. 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개념이 통하고 이승만과 이기붕의 이름에 거칠게 다른 이야기가 회자된다. 아직은 이승만과 이기붕의 흔적과 기억이 일깨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월은 정제된 해석을 내 놓을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정제된 해석은 한 명 이상의 ‘뜻’과 ‘의지’ 그리고 ‘철학’이 있는 사람이 한다. ‘탐욕’과 ‘사리사욕’이 가득 찬 사람은 거꾸러져 사라지기 때문이다. 동지는 죽음도 넘어설 수 있지만 배신자는 세월을 넘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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