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社稷洞)은 1395년(태조 4)에 세운 왕이 직접 나와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社稷壇)에서 유래했다. 사직단 뒷산에는 활터 정자인 황학정(黃鶴亭)이 있다. 필운동(弼雲洞)의 이름은 필운대(弼雲臺)에서 유래한다. 필운은 인왕산(仁王山)을 뜻하지만, 인왕이란 산 이름은 변하지 않고 필운대만 남아 있다.
누상동(樓上洞), 누하동(樓下洞), 옥인동(玉仁洞) 일대를 포함한 지역에 인경궁(仁慶宮),자수궁(慈壽宮),송석원(松石園)이 있었다. 인경궁(仁慶宮)은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1676년(광해군 9)~1682년에 짓다가 인조반정으로 중단하였다. 누상과 누하란 지명은 누각동(樓閣洞) 위,아래쪽에 있다는 데 연유한다.
통인동(通仁洞)이란 지명은 통곡(通谷)과 인왕산(仁旺山)의 이름에서 연유한다.조선시대의 관청인 내시부, 사포서, 세종의 탄생지이다.통의동(通義洞)에는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문 잠저(潛邸) 창의궁(彰義宮), 관상감(觀象監)과 사재감(司宰監)이 있었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태어난 곳이다.
체부동(體府洞)이란 지명은 왕의 뜻을 받들어 장병들의 시찰을 독려하는 체찰사부(體察使府) 또는 체부청(體府廳)이 있었다는 데 연유한다.체부동에는 금천교(禁川橋)가 있었으며 금천교는 고려시대 충숙왕 때 가설된 체부동, 통의동, 내자동 등으로 통하는 십자로에 있던 돌다리이었는데, 금천다리길이 있다.
내자동(內資洞)의 명칭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는 여러 식품과 직조(織造) 및 궁중 잔치를 맡아 보던 내자시(內資寺)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며 효종이 출생한 별궁 어의궁(於義宮)이 있었고 적선동에는 영조의 둘째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金漢藎)이 살았다는 월성위궁, 장흥고(長興庫), 사온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