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분권칼럼 제9호 “주민참여―지방분권의 일부이다”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바 있다.중앙의 국회와 행정각부가 지방의 자치입법권과 자치행 재정 및 인사권 등 각종 지방관련 권한과 통제권을 지금처럼 스스로 끌어안고 있을 것이 아니라 깨끗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넘겨주고, 그 지방권력에 대한 통제의 몫은 그 지방주민에게 맡겨야 하며, 그것은 주민참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민참여법령을 국가(중앙정부)가 개선해줌으로써만 가능해진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제나 견제 수단으로서 주민참여가 궁극적으로 가장 본질적인 수단임을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한다. 그를 위하여 일단은, 주민참여라는 직접적 방식이 아니더라도―거기까지 가기 전이라도 다른 수단에 의해 지방권력의 통제가 가능한 부분을 몇 가지 살펴보면서, 거기에 얽혀 있는 문제점들을 통하여 지방권력 통제가 왜 결국은 주민참여의 문제로 귀착되어야 하는 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첫째, 지방자치단체 내에는 집행부(단체장)와 의회간의 상호 견제제도가 있다. 이 점은 중앙정부에도 행정부와 의회가 권력분립 원리와 전통에 따라 상호 견제하도록 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지역주의 정치’라는 마법에 걸린 관계로 집행부와 의회가 한 통속의 정당으로 구성된 특정 지방들은 기관간 상호 견제와 균형 기능이 전혀, 혹은 거의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직접적 주민참여에 의한 견제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지역주의 정치 아래에서 특히 주민소환제의 의미는 중차대한 것이다.
(이 점은 다음 13호 칼럼을 통하여 별도로 다시 상술한다).
권력분립이란 어느 정도 대등한 복수의 힘들이 분립 또는 정립(鼎立) 되어야만 소기의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의회에 비하여 집행부(단체장) 권력이 워낙 강하여 상호’견제라는 기능이 취약하고 단체장 독주체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실제를 들여다보면 미국 일부 지방정부가 취하고 있는 강(强)시장형 제도 가운데도 가장 강력한 힘을 쓰게 되어 있는 초(超) 강시장형’ 제도를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집행부는 갖고 있다.
왜냐하면 강시장형 집행부를 가지는 대부분의 미국 지방정부들은 시장 이외에 사무관, 회계검사관,세액사정관, 검찰관, 치안판사 등등 시장과 마찬가지로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행정고위직 및 사법기관이 여럿 있어서 시장에 대한 견제장치가 2-3중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반면, 우리 한국의 제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사법직을 빼고 는 오히려 그들의 임면권을 모두 시장(단체장)이 행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을 견제하는 지방의회의 사무직원 임면권까지도 최종적으로는 단체장 이 행사하게 되어 있다.
당연히 한국의 지방단체장들이 소통령’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초 강시장’으로 권위화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권력을 견제할 힘을 중앙에 의존하지 않고 지방 안에서 찾거나 만들자면 결국 주민소환을 필두로 한 직접적인 주민참정 수단을 강화하는 길이 가장유효할 것이며, 그래서 지난 제9호 칼럼이 그 점을 먼저 강조하였던 것이다.
둘째,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미국형 강시장제의 보편적 패턴을 우리 한국 지방자치에도 도입, 적용해 보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즉 한국의 초 강시장제를 바로잡기 위하여 미국처럼 시장(단체장) 이외에 주민직선으로 뽑는 지방 고위직을 많이 만들어서 지방권력 상호간의 견제구조를 다원화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재정담당관이나 예산기획관, 도시계획관 등 주요 행정관직을 단체장이나 교육감과 마찬가지로 주민직선에 의한 정무직으로 두게 된다면, 주민으로부터 그들이 직접 선출되는 만큼 자연히 단체장의 독주나 전횡에 제동을 걸 것이다.
광역지방정부까지 포함하는 완전한 경찰자치제를 실시하고 사법부까지도 지방분권화 하는 철저한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을 행한다면, 지방경찰총수나 지방검찰관 및 지방법관까지도 주민직선제로 전환하여 지방 고위관직 상호간의 견제가 더 한층 용이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선거비용 문제나 국민정서의 적응 문제, 집행부 리더십의 지나친 분산 등 여러 난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낯선 제도를 도입하기 보다는 차라리 소환제 등 주민참여제도를 잘 활용토록 하는 견제수단이 역시 바람직해 보인다.
셋째, 정부간 관계 자체가 지방권력 통제의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방광역정부와 지방기초정부 사이에는 행정 계층적 의미에서 는 상・하간 수직적 위계관계가 존재하지만, 국민 또는 주민직선으로 선출된 정치조직이라는 면에서는 상호 대등하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로 해석된다. 정부간 관계에 내재하는 이러한 모순적 성격은 때때로 정부간 알력과 분쟁을 유발하기도 하지만(그럴 때는 궁극적으로 사법부-법원이 그 분쟁의 심판관이 된다)
그모순적 관계의 존재 자체가 서로의 과도한 이기심을 자제토록 압박하는 효과도 발휘한다. 즉 행정적 계층면에서 상위기관인 중앙정부나 광역지방정부가 각각의 하위기관인 광역지방정부나 기초지방정부에 대하여 정치적 민주성에 근거한 수평적 대등관계임을 고려하여 지나치게 우월적 군림을 자제토록 하며, 또 반대로 정치적 대표기관이라는 공통의 조직 원리에 따른다면 대등한 수평적 관계 만을 고집할 수도 있는 기초지방정부나 광역지방정부도 행정적 계층면에서 각각 광역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하위기관인 점을 감안하여 스스로 그들에게 협력하는 자세를 취하도록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 복합관계론은 물론 이상에 치우친 해석일 뿐이며, 실제에 있어서는 상하의 위계적 질서가 정부간 관계의 주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됨이 불문가지이다. 바로 그 때문에, 지방의 자율적 발전과 주체적 혁신을 꾀하고자 애쓰는 한, 현실에서 나타날 정부간 관계의 과도한 위계성과 불평등성을 예방하고 상호 대등한 협력관계임을 명시하는 법제적 강제가 필요하다.
지난 분권칼럼 6호와 7호에 걸쳐 필자가 강조하였던 것처럼, 분권형 헌법’으로의 개정은 그러한 정부간 관계의 대등성을 법제적으로 강제하는 근본 규범을 확고히 해 줄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인 것이다. 헌법을 포함하여 ‘법이 정치의 소산’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 모두가 부인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헌법개정을 향한 정치활동이야말로 지방분권운동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유영국 교수는 지방권력기관들 상호간의 견제 시스템을 통해서도 지방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되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였고, 어떤 이유에서건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면 소환제를 중심으로 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통해서 지방권권의 전횡이 충분히 통제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중앙권력이나 지방분권 반대세력들이 분권반대의 명분을 하도 고양이 쥐 생각하듯 ‘지방권력의 전횡과 그통제수단 결여’에서 찾으려 하고 또 대중에게 그렇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실은 그것이 터무니없는 과장이며 대중에 대한 우롱이라는 점을 지난 9호 칼럼에 이어 이번 12호 칼럼에서도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방권력이 문제를 일으킬 때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려는 중앙의 법제적 노력이지 지방권력의 전횡 가능성을 빌미삼아 분권을 반대하거나 분권작업의 순도를 떨어뜨리는 사보타지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