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께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일단의 일본 군경이 앞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도착해서 마을 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주민들이 교회당에 모이자 아리타는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게 하고 집중사격을 명령했다.
그때 한 부인이 어린 아기를 창 밖으로 내어놓으면서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일본군경은 그 아이 마저 찔러죽였다.
이같은 학살을 저지른 일제는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불을 질렀으며, 아직 죽지 않은 주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밖으로 나오려고 했으나 모두 불에 타 죽었다.
이때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증언에 의하면 교회에 불을질러 학살하는 도중에 뚜거움을 견디지못하고 밝으로 나오려하자 이들을 발견한 일본 군경은 총으로 사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그 후손들이 증언했다.
지난 1일, 기독교 대한감리회 경기연회 감독 (정판수)목사 주최로 3.1 운동 당시 교회당 안에서 희생당한 마을 주민들과 교우들에대해 그 날에 희생으로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민족이되었다며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한편 기념예배에 참석한 (김철한 수원오목천교회) 목사는 우리에 비극이 더 이상 이땅에 있어서는 않되며 3.1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한 동포들이 하나가 되어 사회, 경제 등에 힘을 합하여 한민족임을 재확인해야하며 속히 남북한 통일을 이루어 한민족의 아픔이 없어야 한다며 분단의 아픔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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