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는 1일 한 집안에서 3세에 걸쳐 5명의 열사를 배출한 해주오씨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한 장이 마련돼 산교육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세오충열사 추계향사 봉행이 1일 오전 채규정 익산시장을 비롯한 성균관 유도회 임귀진 용안지부장·용안중학교 학생·지역 유림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용안면 삼세오충열사에서 개최 한다.
초헌관에는 오수영씨(전 육군대장)가 아헌관은 채시장이 맡아 치러지는 이날 봉행은 오충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하고 향사에 대한 유래와 약사 보고회 등이 열리다.
이날 봉행 행사는 해주 오씨들에 의해 해마다 행해지다 삼세오충열사가 지어진 지난 1980년부터 지역 유림들의 주도하에 치러지고 있는데 오충열사들이 쓰던 물건과 소장품도 이날 전시됐다.
지방 기념물 제 61호로 지정된 삼세오충열사는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 용안면사무소 뒷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4만여㎡의 부지에 신도비와 정여, 사당, 기념관, 교지, 관복 등을 진열했다.
조선시대 나라를 위해 순절한 이들 열사는 해주오씨인 오응정, 오욱, 오직, 오동량, 오방언 등 3세에 걸쳐 5명이다.
오충열이란 이들 5명의 열사를 총칭하는 말로 오응정의 큰 아들이 오욱이며 둘째아들은 오직, 세째아들은 오동량, 오방언은 오직의 장남으로 모두 용안면 출신이다.
오응정은 조선 명종 3년(1548)에 용안현에서 태어나 27세때 무과에 등재한 후 비변사의 낭관으로 선발된데 이어 사헌부 감찰과 형조정랑, 군기첨정 등을 역임하다 조정에 당파싸움을 중지할 것을 역설하는 상소를 올렸다 흥덕현감으로 밀려나자 낙향하여 임진왜란 직전까지 삼남일대를 돌며 생활했다.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 부사로 남원 전투에 참전했으나 여의치 않자 큰아들 욱, 세째아들 동량과 함께 화약고를 터트려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삼세오충열사는 지난 1980년 이춘기 전북애향운동본부총재가 삼세오충열사복원사업회 회장으로 추대된 이후 국비와 자체 기금으로 복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