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 기자의 시사펀치
세월호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 이를 수수방관한 해경과 해수부 그리고 책임회피 할 궁리만 하는 청와대. 세월호 참사는 썩어문드러진 한국사회 권력집단의 축소판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지자 시민들에게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각료들에게도 비밀로 한 채 몰래 지방으로 내뺀 이승만. 그는 시민들의 안위야 어찌되건 인민군 진격 속도를 늦추겠다며 한강 다리를 폭파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승만과 세월호 참사는 '비유'로만 그칠 게 아니다. 그 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부터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현 권력집단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쌍둥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분명히 수세에 몰려있다. 지지율이 폭락하며 정권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6.4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하면 더욱 궁지에 몰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집회를 보며 '아침이슬'을 불렀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마냥 참회하겠다고 할까?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은 전선에서 몰래 혼자 내뺀 데 그치지 않았다. 적반하장으로 국민들을 제 손으로 학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을 조사했던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국민은 적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국군 각 사단과 미군이 후퇴하면서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군 8사단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강릉에 주둔하고 있었다. 인민군에 밀려 전선이 후퇴함에 따라 8사단은 단양, 제천, 영주 등을 거쳐 대구로 후퇴했다. 그러나 이들의 총구는 인민군만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전투가 없는 날이면 수백명의 민간인들을 골짜기로 끌고 올라갔다. 이들의 후퇴 경로는 곧 민간인학살 발생 경로였다.
춘천에서 홍천, 원주, 충주 등을 거쳐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한 6사단도 마찬가지였다. 국군의 다른 사단들과 미 24사단, '노근리 사건'으로 유명한 미 1기병사단이 거쳐 간 곳도 다르지 않았다. 골짜기로 끌려간 민간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직도 전체 희생자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이다.
애초 보도연맹은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관료조직이 의례 그렇듯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는 윗선의 명령에 반강제로 가입된 '무지렁이' 농민들이 다수였다. 이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이승만 정권은 아예 적(敵)으로 돌렸다. 신 소장은 "정말 상상만 하던 짓, 즉 적을 도울 것 같은 국민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는 짓을 저질렀다"고 탄식했다.
과거의 일일까? 후퇴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보자. 지금 앞에서는 대국민사과를 하니 마니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하지만 뒤편은 딴판이다.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교사들은 징계절차에 들어갔고, 세월호 보도를 자아비판한 공중파 방송 기자들은 지방으로 쫓겨 가고 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엔 아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공안 검사를 앉혔다. 아마 지금처럼 불리한 상황은 오히려 '적아(敵我)'를 구분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거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을 색출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세월호참사가 또 어영부영 잊혀 진다면, 이 땅의 권력집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수를 위한 진격에 나설 것이다. 광화문을 뒤덮은 촛불 앞에 참회하는 듯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이 잦아들자 촛불의 배후를 캔다며 시민사회를 들쑤시고 민간인사찰에 나서던 모습을 이미 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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