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부(宗親府)는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 편찬과 국왕의 어진(御眞)을 받들고 국왕 친척인 왕가·종실(宗室)·제군(諸君)의 계급과 벼슬을 주는 인사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고 고려 때 제군부를 세종 15년에 고친 이름으로 1905년 종부시로 이름을 고쳤으나 2년 후에 폐지되어 그 업무는 규장각으로 옮겨졌으며 종친부가 건춘문 앞에 위치했던 것은 종친(宗親)과 외척 및 부마(駙馬)·인척,상궁들만 건춘문으로 출입했기 때문이다.
돈녕부(敦寧府)는 1414년(태종 14) 종친부(宗親府)에 속하지 않는 왕의 친족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관아로, 왕과 같은 성을 쓰지만 태조의 자손이 아닌 자와 왕실 외척의 사돈 지간, 그리고 왕실의 외손을 관리하는 부서였는데 돈녕부의 수장은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라 불리었으며, 주로 왕의 장인이나 왕비의 형제들이 그 자리를 맡았고 품계는 정1품이나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으며,국가에서 정1품에 상당하는 급여를 주는 명예직이다.
종친부 옆에는 왕비의 소생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의 남편인 의빈(儀賓)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었는데 왕의 부마(駙馬)인 의빈들도 왕족 대우를 받았으므로 모여 의논하고 친목을 도모했다.
조선시대에 공신을 책봉할 일이 있으면 공신도감(功臣都監)을 설치해 공훈 심사책정 사무를 전담하였으며 1434년(세종 16) 공신도감을 충훈사로 고쳤고 참외아문(參外衙門)이었으나 1454년(단종 1) 충훈부(忠勳府)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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