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히데토시(마이니치신문 논설부위원장)은 22일 2004년 NHK에서 방영한 한국 TV드라마 ‘후유노소나타(겨울연가)’가 폭발적인 붐을 일으켰다. 한국입장에서 보면 TV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것은 단순한 연예뉴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이것은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드라마는 위성방송과 공중파로 수차례 방송, 일상대화에서 ‘후유소나’로 통하게 되었으며, 주연배우인 배용준최지우씨의 영상과 이름이 연일 미디어에 등장하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비교적 높지 않은 중장년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국여행이 붐이 되었으며,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였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학생은 ‘이웃 아줌마들 모임에 불려 다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아르바이트 수입도 배로 늘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의 ‘후유소나’ 붐 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느 날 밤 80세를 넘은 나의 모친이 늦은 시간까지 ‘후유노소나타’를 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라고 묻자 ‘예쁘잖아’라고, ‘풍경과 사람 모두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 아름답게 촬영했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냥 뻔한 멜로드라마던데’라고 나쁘게 말하자, 이것을 보고 있으면 한국인들은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부모라는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좀 본받으라고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느낌은 보통 사람이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지만 프로인 평론가도 ‘후유소나’의 인기 비결은 일본에서는 흐려진 가족 구성원간의 연대감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언급한다.
즉 일본인은 TV드라마를 통해 한국사회의 모습에서 일본사회의 이상을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이 언어나 관습, 문화의 벽을 넘어 상통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나라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는 일본인에게 신선한 발견이었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부터 동서냉전의 최전선이 되어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재일 교포사회도 둘로 나뉘어 대립했다. 냉전시대에는 재일교포뿐만 아니라 일본인마저도 남북 중 어느 한 쪽을 지지하도록 강요 당했다. ‘한반도’인가 ‘조선반도’인가, 또 ‘한국어’라고 해야 하는가 ‘조선어’라고 해야 하는가. 이처럼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엄격히 구분하는 시대가 있었다. 일본에서 ‘한글’이라는 어휘가 정착한 시점이 바로 그 때쯤이었다. 지금도 NHK가 방송하고 있는 외국어강좌에서 한국어강좌 프로그램명은 ‘한글강좌’이다.
한국 ‘가까운 이웃’으로 인식 변화
한반도에 관심을 갖고 언어를 배우려고 하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일본인은 한국과 북한을 ‘정치적으로 까다로운 국가’라고 여기고 가까이 하지 않는 편이 신상에 좋다는 심리구조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를 가깝고도 멀게 느끼는 것은 냉전시대의 유산 때문일 것이다. 한일간에 역사인식에 관한 분쟁이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다.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인가. 양국 모두에게 문제가 있지만 일본인의 무의식 중에는 한국을 먼 나라로 간주하는 심리가 있다.
일본인의 의식이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후유소나’는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상징하는 것처럼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냉전구조의 틀을 탈피하였다. 그것을 가장 먼저 느낀 중국과 대만에서 ‘한류’붐이 일어났으며, 오랫동안 냉전심리로 굳어져 있던 일본인의 생각 또한 차차 바뀌어 한국이 정말로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한국을 향한 관심은 ‘후유소나’붐이 끝나더라도 다른 형태로 이어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지금까지 한일 쌍방의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왔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한일 파트너십을 체결하였다. 2002년 5월부터 6월에 걸쳐 개최된 한일월드컵은 일본인에게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끄는 바탕이 되었다. 먼저, 냉전시대적 사고에 묶여있지 않은 젊은 세대가 가수 보아와 같은 한국에서 발산되는 대중문화를 받아들였다. 이어 냉전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중장년층이 ‘후유소나’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일반 대중들이 인식을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김대중 정부가 끝나고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는 시기와 겹친다. 역사인식 문제나 무역마찰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김포 - 하네다 간 운항되는 항공편이 연일 만석인 것을 보면 양국관계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12월 가고시마에서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역사문제에 대한 질문에 "감정적인 입장에서 일본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논의가 일어나도록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언에 여유가 묻어나는 것은 한국측이 일본 국내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한일 국교수립 40주년인 한일우정의 해로서 다채로운 문화교류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국의 국민이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이다.
북일관계 납치문제로 정체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식변화가 이루어지는 것과 함께 북한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월드컵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던 2002년 가을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북평양선언’을 맺었다. 이것은 식민지지배를 청산하고 국교정상화 방안을 결정한 문서이다. 일본인들은 냉전시대부터 줄곧 그들이 등을 돌리고 있었던 국가인 북한의 지도자가 자국의 총리와 회담하는 모습을 TV 중계화면을 통해 보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 나라’가 충격과 함께 ‘가까운 나라’가 된 것이다.
과거 북한에 대해서 ‘이상적 공화국’, ‘주체사상의 국가’라는 목소리와 함께 ‘기아 지옥이 되어버린 독재국가’라는 엇갈린 목소리도 있었다. 일본인 대부분은 북한이 처한 현실이 실제로 어떻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시선을 돌렸다. 식민지지배 청산에 대해서도, 북한공작원이 가족을 납치했다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유언비어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같은 태도를 취하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북회담에서 북한 공작원의 납치사건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전국이 큰 충격을 휩싸였다. 무관심이라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던 북한은 ‘테러국가’라는 뚜렷한 윤곽을 가진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일본인의 관심은 납치문제에 집중되었다.
한국에 갖는 호의적인 관심과는 반대로 북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측면만을 주시하는 관심 아닌 관심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더구나 일본인의 대부분은 한국인도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갖고 있다. 한국에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과 북한이 민족통일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함께 안고 있음을 이해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이 갖는 북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메워나가는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해는 말레이시아에서 ‘동아시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한국·일본·중국에 ASEAN 10개국을 더한 아세안+3와 형식은 같지만 일단 아세안이라는 이름이 사라지면 그 다음부터는 한중일의 리더십이 요구될 것이다.
다행히 한일관계는 상호신뢰가 가능한 상태에 있으나 일중관계는 역사인식문제라는 커다란 암초에 걸려 정상간 상호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겨우 미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였던 일북관계도 납치문제가 장애로 남아 정체하고 있다.
한중일 3개국(북한을 합친 4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에서, 또한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은 한국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당초부터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리더’로서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틀림없이 한중일북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틀이 한국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한국이 현재 주어진 현실적 목표에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정상회의’를 앞장서서 이끄는 국제적인 리더역할을 수행해내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자 약력> 1948년 도쿄출생. 도쿄외국어대학중국어과 졸업. 마이니치신문사 입사. 정치부기자로서 총리관저, 자민당 등을 담당. 1988년부터 6년간 베이징특파원. 1996년부터 2년간 홍콩 특파원. 귀국후 논설위원을 거쳐 논설부위원장.
국제사회, 한국에 ‘동아시아 리더’ 역할 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