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2000년 7월29일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은 경의선 철도의 끊어진 구간을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동해선 연결은 2002년 4월5일 임동원 특사 방북시 합의했다.) 그로부터 6년 10개월, 무려 56년 동안 멈춰서 있던 철마가 17일 마침내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 한반도의 동과 서에서 남북을 오가게 됐다.
역사의 전환점이다
이번 운행은 철도 개통의 전단계인 시험운행으로서 향후 정상운행을 위한 기술적 준비를 마무리함으로써 철도개통의 실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행사이다. 경의선은 남측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간 27.3km를, 동해선은 북측 금강산역에서 남측 고성 제진역간 25.5km를 왕복으로 달렸다.
철도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 특별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일제는 한반도 수탈과 대륙침략의 수단으로 철도를 활용했고 수탈에 지친 민초들은 척박한 북간도를 향해 경의선 열차에 몸을 의탁했다.
불과 반세기 전에는 피난의 인파를 실어 나르는 피눈물 나는 이산의 현장이었고, 전후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철도는 우리 민족에게 이러한 고난과 아픔, 애환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 철도가 이제 새로운 희망을 싣고 남북의 통합을 촉진하는 민족의 동맥으로 거듭나게 됐다.
17일 열차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을 오가고 이제 남북간에 하늘길, 바닷길, 땅길이 모두 연결되게 된다. 열려진 길은 소통을 뜻하며, 소통은 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남북을 연결한 철길은 물자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남북 주민들이 왕래하는 통로가 되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다. 그러기에 열차시험운행은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연결하고 나아가 한반도에 민족공동체 형성의 새 장을 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철도는 경제다
철도가 개통되면 남북간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시켜 남북경제협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인천-남포간 왕복을 기준으로 수송수단별 물류비용을 비교해 보면 철도개통의 경제적 의미를 체감할 수 있다. 현재 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해상운송의 경우 인천-남포간 수송일수는 5-6일이고 운임은 TEU(20피트 컨테이너 1대분)당 800불정도인데 비해 철도운송의 경우 수송일수는 1-3일이고 운임은 200불에 불과하여 수송일수는 3-4일, 운임은 600불이나 줄일 수 있다.
남북간 철도는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의 경우, 철도를 통한 대량운송과 운송시간 단축을 통해 물류비를 절감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내에 거주하는 북측 근로자의 출퇴근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 개성공단 사업의 안정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에도, 동해선 철도를 금강산 관광객 운송에 활용하면 관광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경의선, 동해선 양축을 따라 북으로 동서 양방면의 경협루트를 확보해 나갈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향후 남북간 철도가 보다 멀리 대륙까지 연결되어 정기적 운행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남북경협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확장된 남북철도는 세계 최대 자원보유국인 러시아와 엄청난 시장을 가진 중국과 연결됨으로써 우리가 북방경제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인프라로 될 것이다. 한반도는 동북아 물류거점으로 거듭나고, 나아가 단절된 동북아 협력공간의 복원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동북아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될 것이다.
철도는 평화다
이번 열차시험운행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노력이 있었다. 작년에는 운행 하루 전에 갑자기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는 열차시험운행에 경제적인 측면 외에 군사적인 측면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지속적인 경제협력을 통해 남북경제공동체라는 비전을 실현해 가기 위해서는 어떻든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한다.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고는 협력은 고사하고 만날 수조차 없다. 이는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 없이는 남북 경제협력이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
내일 열차시험운행을 위해 지난 5월 8일부터 11일까지 제5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이 개최되었다. 이 회담에서는 열차시험운행을 위한 군사적 보장방안 뿐만 아니라, 서해평화정착에 관해 진지한 협의가 이루어졌고,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개최에 대한 원론적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이 과정은 군사적 신뢰구축 과정에 있어서의 한반도의 특수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남북경협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견인해 내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총부리를 겨누던 남북의 군사당국자가 경협을 지원하기 위해 서로 만나 불신을 허물고, 또 경협을 위해 필요한 군사적 보장조치를 같이 취하면서 신뢰를 쌓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협의 진전과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이 보조를 맞추어 함께 나아갈 때,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수준은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이번 열차시험운행이 끝나면, 남북간에 합의한 대로 빠른 시일 안에 철도개통과 함께 정기 운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측 군사당국이 1회성 군사보장을 한 것에 대해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그러나 북측 군사당국이 이를 허용하기 시작한 것은 하기 전과는 큰 의미의 차이가 있다. 0과 1의 차이’다. 어떤 일이건 0을 1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이번 경우에 안성맞춤이다.
남북 철도가 완전히 연결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큰 관건은 역시 북측 군사당국의 태도이다.
다행히 북측 군사당국은 향후 철도 도로 통행 군사보장 합의서를 채택하기로 우리측과 합의한 바 있다. 정부는 당면한 수요와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남북철도의 개통과 운행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대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면서 북한 철도 현대화를 통한 대륙철도와의 연결까지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 열차 시험운행은 단순한 시험운행이 아니다. 일백년 전 민족의 아픈 역사를 씻고 반세기에 걸친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는 쾌거이며, 더 번영된 경제, 더 공고한 평화, 더 나은 민족의 미래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적 사건이다.
열차운행 평화·번영·도약으로 가는 이정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