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1월. 공연 첫날인데 하필이면 비가 내렸다. 관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2500만원짜리 원룸
전세금을 빼 연극 ‘라이어(Liar·거짓말쟁이·레이 쿠니 작) 제작에 탈탈 털어넣은 스물아홉
살 이현규는 무턱대고 행인 둘을 붙잡았다.
그리고 초대권을 내밀었다. 두 명의 초대 관객과 7명의 배우. 공연은 희극이었지만 연출자와 배
우들에게는 비극적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6년 후, 이현규 파파 프로덕션 대표는 대학로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번 제작자가 됐다.
라이어’는 지난주 2000회 공연(관객 40만명)을 돌파했고, 연출까지 맡았던 이씨는 그 공연으
로 12억원을 벌었다.
그를 울렸던 라이어’는 99년부터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지난해에는 4억5000만원짜리 극장(행복한극장)까지 손에 넣게 한 보배가 됐다. 이씨는 올해 ‘라이어’의 후일 담을 다룬 라이어2 전혀 다른 거짓말쟁이의 소동을 그린 ‘라이어3’를 잇달아 무대에 올려 역시 객석을 80% 이상 채우며 흥행하고 있다. 지방공연팀까지 총 50명(배우 28명)의 대식구로 커졌다.
하지만 그는 ‘2000회 공연’을 공개적으로 자랑하지 않았다. “대학로가 푹 가라앉아 있는데
2000회라고 떠드는 게 시건방진 짓 같아 우리끼리 자축하고 말았어요. 욕도 많이 먹었어요. 연극
도 아닌 게 대학로 관객 다 가로챈다고…
라이어’는 부인을 둘 둔 채 양쪽 집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즐기는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다. 어느
날 강도사건에 휘말리면서 스케줄이 헝클어진 그는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간다. 이씨는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짜여진 코미디”라고 말했다.
연극 제작이 꿈이었던 이씨는 한양대 4학년 때부터 극단 한양레퍼토리에서 2년간 연극 기획 일
을 배운 뒤 96년 독립했다. 그가 기획한 날 보러와요’(연출 김광림) 늙은 도둑 이야기’(이
상우) 등이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지만 가난은 계속됐다. 이씨는 대표 체면에 ‘차비 좀…’이
라는 말이 안 나와 대학로에서 고양시 화정동 집까지 걸어간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연출이나 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대학로 연극인들로부터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값
싼 개그를 만든다는 비판도 듣는다. 그러나 “집중력 높은 상황극을 만든 게 관객을 얻은 비결
같다”고 말하는 이씨는 자부심이 넘친다. 대학로의 ‘불황’에 대해서도 “지원금 받아 올라가
는 공연들은 실망스러운 게 적지 않다”고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작품은 좋은데 마케팅을
못해 공연이 죽 쒔다”는 표현을 거부한다.중요한 건 공연의 질이고 관객의 입소문이 흥행작
을 만든다는 것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오후 6시30분. 라이어’가 공연 중인 샘터파랑새극장 앞에 늘어서기 시작하는 줄을 보면서 그
가 말했다. “두 명의 관객으로 시작했는데 저렇게 불어났어요. 나태해질 때마다 저 줄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관객 줄 볼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