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68)이 사망함에 따라 정권을 세습(世襲)했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그는 어린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자유롭고 풍족한 사회를 체험했다. 김정은 정권 초기인 2012년 2월에 미국과 2·29 선언에 합의했다.

김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유예(모라토리엄) 등 비핵화 사전조치와 미국의 대북 식량(영양)지원(24만 톤)을 골자로 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28)은 2012년 4월 15일 첫 육성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주민의 생활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김정은 정권 이후 탈북한 탈북자들은 “주민들의 삶이 김정일 시대와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UNICEF 등 국제기구 통계에 따르면, 북한 내 영양실조 상태인 어린이는 전체 어린이 가운데 70~80%에 달하며 매년 모자라는 식량은 50만 톤에 이른다.
북한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김정은 정권이 선군정치(先軍政治)를 계승하면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29선언을 무시하고 2012년 4월 13일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2012년 4월 개정한 새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함으로써 핵 포기 가능성을 사실상 원천 봉쇄했다.
그리고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에 장거리 미사일을 또 발사했다. 두 차례 미사일 발사에 9억 달러의 돈이 들어갔다. 북한 6~7년간 식량 부족분을 살 돈이다. 이런데도 김정은은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위성관제종합지휘소에서 지휘하면서 앞으로 더 많이 발사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여기에 더해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사업과 체제 선전에 돈을 쓰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12년 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맞아 평양만수대 예술극장 앞에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모두 8개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건립했다.
기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웃는 모습으로 고쳤다. 김정일 시신을 영구보존하고 생전 사용했던 물품을 전시하기 위해 2012년 초부터 금수산태양궁전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을 벌여왔다. 김정일의 호화 요트, 지방 현지지도 및 중국·러시아를 방문할 때 사용한 특별열차의 객차와 벤츠 승용차를 실내에 전시했다.
북한 정권은 민생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유원지 건설에도 거액을 투입했다. ‘최고지도자의 업적’이라고 선전해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다. 평양 능라인민유원지를 건설하는 데 9천만 달러를 썼고, 김정은 등 극소수만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 원산 스키장을 만드는 데에는 6500만 달러가 들었다. 2012년 9월 준공된 평양민속공원을 짓는데는 1천만 달러, 함흥에 청년놀이공원을 건설하는 데는 6500만 달러가 들었다. 북한은 우상화 사업에 1억1천만 달러를, 체제 선전을 위한 위락시설 건설에 2억3천만 달러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김정은 정권은 대남(對南) 적화통일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고 있다. 북한군부 최고 실세인 최용해 총정치국장은 2012년 12월 16일 한국을 ‘민족반역의 무리’로 비난하면서 “최고사령관 동지(김정은)께서 최종 수표(서명)하신 조국통일 대업을 성취하기 위해 작전계획대로 즉시적인 섬멸적 반(反)공격전으로 남조선을 영원히 깔고 앉겠다”고 주장했다.
최용해는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정일 사망 1주 중앙추모대회 연설에서 장거리 로켓 은하-3호의 발사 성공을 언급한 뒤 “(김정은의) 선군 의지는 원수들을 전율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추모대회에는 김정은과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당·군 간부가 대거 참여했다. 로켓 발사 실무를 주도한 박도춘 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와 주규창 기계공업부장도 참석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백두산 혁명강군으로 강호 발전시키고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군사강국, 당당한 핵보유국의 지위에 올려 세우는 민족사적 공적을 이룩했다”고 김정일을 한껏 치켜세웠다.
김영남은 “김정은 동지의 사상과 영도는 곧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영도”라며 “
전체 당원과 인민군 장병, 인민은 수령결사옹위의 전통을 이어 일편단심 김정은 원수님을 순결한 양심과 도덕 의리로 받들어 모시고 견결히(견고히) 옹호 보위하며 원수님의 두리(주위)에 단결하고 또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낮 12시8분까지 약 70분간 진행된 추모대회를 일제히 실황 중계했다. 북한군 핵심 수뇌부인 현영철 총참모장은 2012년 12월 2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정은 군 최고사령관 추대 1주년(30일) 보고대회를 통해 “온 나라에 군사중시 기풍을 철저히 세우며 전국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앞으로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인가?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체노선과 선군정치를 재확인하는 김정은의 언급이 나왔다. 김정은은 2012년 10월 16일자 노동신문 사설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변함없이 걸어야 한다”며 “그 길에서 자그마한 탈선도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나아갈 길은 명백하다”며 김정일 시대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동신문 사설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을 지칭)께서 펼쳐주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는데 우리 혁명의 백년대계의 전략이 있고 종국적 승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발언 수위를 보면 안팎의 개혁·개방 기대를 일축하고, 정책노선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공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2012년 10월 21일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 체제 개혁과 개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김정일이 ‘나에게서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거나 ‘나의 사상은 붉다’고 언급했던 상황과 유사하다”며 “주체 사회주의와 선군정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신문(2012.12.22)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2년 12월 21일 함흥시 동흥산 언덕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제막식을 가지면서 적화통일(赤化統一), 소위 주체혁명 위업 달성의 의지도 재확인했다. 김정은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고무해주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더욱 분발하여 수령님과 장군님의 구상과 념원을 빛나게 실현해나감으로써 주체혁명의 새로운 100년대를 승리와 영광의 년대로 빛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이 김정은은 집권 1년 동안 개혁·개방보다 무력 적화통일 준비와 우상화 작업에 광분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금 북한의 3차 핵실험 준비완료를 경고하고 있다. 김정은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더욱 몰두함에 따라 주민생활은 도탄(塗炭)에 빠졌다. 이제 김정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시점이다. 하루 속히 김정은 정권을 제거하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구출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이런 점에 유념하여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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