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수행자 노릇을 잘못하면 능구렁이 몸 받는다는데...
이법철 스님
나는 노승이 된 지금도 능구렁이가 산사의 도량에 왜 집착하여 살고 있는지 이유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능구렁이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어느 봄 날, 사미승(沙彌僧:10대 소년)시절, 처음 산사의 양지바른 돌담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 같은 능구렁이를 목격하였다. 그 때 내눈에는 호랑이 처럼 검고 붉은 반점을 가진 능구렁이는 경악할 정도로 크게 보였다. 나는 놀라운 마음에서 능구렁이를 건네보는데, 능구렁이는 나를 무시하듯 보며 달아나지를 않았다. 그 때 나의 등 뒤에서 향엄노스님이 능구렁이를 향해 이렇게 꾸짖었다. “무엇이 탐착스러워 업보의 몸으로 부처님 도량에 몸을 나타내는가! 당장 사라져라!” 능구렁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산신각 뒤 쪽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그날 밤 향엄노스님은 어린 나를 무릅을 꿇려놓고 사찰에 사는 능구렁이는 수도승이 도를 닦지 않고, 중생을 위해 봉사하지 않고, 오직 재물에 탐착을 부린 업보라고 말하면서, “능구렁이 몸을 받지 않으려면 청정한 수행승이되라”고 지엄히 교시하였다. 그 때 나는 향엄노스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을 의심치 않고 능구렁이가 되지 않으려고 수행자의 공부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부지런히 예불을 하고, 부지런히 불경을 읽으며, 선배스님들의 심부름을 눈섶이 휘날리도록 부지런히 했다.
훗날 나이가 들어 알고보니 능구렁이는 사찰에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능구렁이는 일본, 중국, 몽고, 태국, 히말라야 동부 등지에 분포하여 활동하는 뱀이었다. 구렁이를 설명하는 책자에는 능구렁이(Dinodon rufozonatus rufozonatus),영명 : Red Banded Odd-tooth Snake 라고 씌어있고, 몸길이 : 70∼120cm. 능구리, 능사 라고도 한다. 내가 아는 박노인은 능구렁이를 사주(巳主)라고도 했다. 뱀의 왕이라는 것이다. 다른 뱀을 잡아 먹는 다는 것이다.
능구렁이는 독이 없으나 성질은 사납다. 꼬리길이는 몸길이의 1/5 정도이다. 등쪽은 붉은 갈색이며 검정색 굵은 띠 무늬가 몸통에 50∼70개, 꼬리에 18∼20개씩 나 있다. 몸 옆구리에도 바깥쪽의 3∼5비늘줄에 걸쳐 검정색 얼룩무늬가 길게 늘어서 있다. 주둥이 끝은 편평하다. 야행성으로 눈이 작고, 낮에는 바위 밑이나 나무 그루터기 등 빛을 가려 주는 곳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 개구리나 쥐, 작은 새, 물고기 따위를 잡아먹는다. 한국에 흔한 종으로 평지나 낮은 산지에 살며 논이나 못 근처를 좋아한다. 특히 독이 있는 두꺼비를 잡아먹는다. 능구렁이는 흔한 종이지만 야행성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쉽게 관찰할 수 없다. 능구렁이의 뱀굴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도시화 되지 않은 환경에서 능구렁이가 살고 있다. 대표적인게 장독대, 지붕속, 처마 밑 공간, 곳간, 마루 밑 등에서 생활한다. 나는 산사의 장독대가 있는 돌틈에 자고나니 능구렁이가 긴 허물을 벗어논 것을 많이 보았다.
80년 대 초, 내가 무위사(無爲寺: 전남 강진 성전면 죽전리) 주지로 재직할 때이다. 무위사는 법당인 극락보전과 극락보전의 벽화 32점이 국보 13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극락보전 오른 쪽에 도장(盜葬)한 것 같이 보이는 봉분이 있었다. 나는 그 봉분이 자랑스러운 국보13호의 지척간에 있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봉분을 파내어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고, 포크레인을 불렀다. 저녘무렵 중형의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극락보전 옆에 정지했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다음날 아침에 일을 하기로 했다. 땅속에 사는 생명들이 밤사이 피신하라는 배려에서였다. 다음날 오전 9시경 포크레인으로 봉분을 파려니 불국사 조실 월산큰스님이 무위사를 방문했다. 월산큰스님은 총무원장으로 재직할 때 나를 불교신문사 편집국장으로 발탁해준 인연이 있기에 나는 공사를 멈추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월산큰스님은 봉분을 손으로 가르키며,“ 저 봉분은 도장(盜葬)이 아니네. 파불상(破佛像)들을 파묻은 게야. 공사를 하지 말게. 저것을 파내면 자네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네.”나는 마지못해 “예,예”만 했다. 월산큰스님은 “자넨 청개구리 심사를 지녔지. 내말을 듣지 않을걸세.”그는 햐얀 봉투의 금일봉을 주고 무위사를 떠나갔다.
굉음을 울리며 봉분을 파헤치던 포크레인 기사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불렀다. 달려가 보니 봉분속에 엄청나게 큰 능구렁이가 목쪽이 포크레인에 찍혀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피흘리는 능구렁이를 향해 꾸짖듯이 말했다. “어젯밤 피신하라는 기회를 주었잖아. 어쩌자는 거야? 포크레인과 맞서보겠다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나는 긴 장대로 능구렁이를 건져 탑 옆의 시식대(施食臺)의 바위에 올려놓고 “네가 죽는 것은 네 책임이야, 알았어?”하고서는 왕생극락을 비는 염불을 해주었다. 피를 줄줄 흘리는 능구렁이는 염불에는 뜻이 없고 분노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듯 했다. 나는 피투성이로 죽은 능구렁이를 후장(厚葬)했다. 그리고 포크레인 기사에게 외쳤다.“여보게 이녀석이 주검을 불사하고 봉분을 지키려는 것을 보니 봉분에는 보물이 있는 것 같네. 보물이 상하지 않도록 살살 파보게.”과연 황금빛이 나는 파불상들이 무수히 발굴되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대고 경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능구렁이는 파불상을 보물처럼 사수(死守)한 것이었다.
능구렁이가 사수한 파불상으로 인해 나의 구설과 액운의 서막은 올랐다. 도청의 문화재 전문위원이 광광객의 통보로 달려왔다. 군청과 경찰서에도 다투어 달려왔다. TV방송기자와 신문기자들이 들이닥쳤다. 문화재 전문위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근거도 없이 기회를 잡은 양 파불상은 조선 태조 초(初)의 불상인데 포크레인으로 부서진 것 같고, 국보 13호 지척을 당국에 승인없이 파헤친 것은 중대한 과오라며 나를 맹비난했다. 방송과 언론은 국보 13호 주변에서 보물급 문화재들이 발굴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구설과 액운을 예방하기 위해 포크레인 기사와 목격자들의 확인서를 서명날인 받아두었다.
그런데 괴상한 입소문이 퍼졌다. 발굴현장에서 다수의 보물급 금불상이 나왔는데 주지가 가로채 숨겨놓고, 파불상만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도처에서 “국보 13호 옆에서 금불상이 일곱 개나 나왔는데 그 불상을 귀돋힌 이무기가 지키고 있었다오. 주지가 탐욕에 눈이 어두워 포크레인으로 이무기를 죽이고 금불상을 가로챘다”는 입소문이 자자했다. 경찰과 언론, 신도들에게 “나는 금불상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수없이 해명을 해야 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긴급 소환령이 떨어졌다. 나는 확인서를 들고 총무원을 향해 상경했다. 나의 상경에 입소문과 방송 언론은 “무위사 주지가 금불상들을 걸망에 담아 도주 중”이라는 긴급뉴스가 퍼졌다. 민완경찰이 출동했으므로 체포는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목포 MBC기자가 TV카메라를 들쳐메고 왔다. “귀돋힌 구렁이를 주지가 일본에 밀반출 하려고 대형 상자에 숨겨놓았다”는 소문이 있어서 왔다며 특종 보도로 촬영을 허가해달라고 매달렸다. 거의 매일밤이다시피 피흘리는 능구렁이가 분한 듯이 꿈속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당시 나는 “나는 금불상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잠꼬대를 할 지경이었다. 능구렁이를 죽인 인과응보였을까?
나는 그 후 무위사와 다른 곳에서도 또다른 능구렁이들을 볼 수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을 뜯어 고치는데 기와지붕 밑에서 능구렁이 한 마리가 재빨리 풀숲으로 낙하하여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 능구렁이는 화장실 천정에서 방분(放糞), 방뇨(放尿)하는 남녀들을 훔쳐보았을 것이다. 무위사에는 천불전(千佛殿)이 있다. 어느 비오는 여름날 오후, 천불전 마당에는 큰 능구렁이 한 마리가 우욕(雨浴)을 즐기듯이 길게 늘어져 놀고 있었다. 합천 해인사 산내암자인 청량사 마당의 석탑앞에 역시 여름의 비오는 날, 풀숲에서 비를 맞으며 길게 누워 있다가 인기척을 알고서는 스르르 석탑속으로 사라졌다. 석탑은 능구렁이의 은신처인 것 같았다. 능구렁이는 고탑, 요사채, 전각, 등 도처에 은신하여 인간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높은 전각, 요사채의 지붕속을 어떻게 침투하는지 화두이다.
큰절에서는 대중이 먹을 국을 끓이는 책임자를 갱두(羹頭)라고 한다. 갱두가 채소를 씻어 대바구니에 넣고 화장실에 갖다오는 시간에 능구렁이가 스르르 대바구니의 채소속에 들어갔다. 갱두는 채소속의 능구렁이를 모른채 채소를 국을 끓이는 큰 솥안에 쏟아붓고 솥두껑을 닫고 국을 끓였다. 국물을 먹은 승려들은 국맛이 좋다고 갱두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전하는 말도 있다. 마루밑의 흙에서 노니는 능구렁이, 천장에서 스르르 기어다니며 찢어진 천정사이로 방안에서 대화하고, 잠자는 인간들을 훔쳐보는 능구렁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천정에서 스르르 소리를 내며 오가는 것은 능구렁이다.
진정 능구렁이는 산사에서 수행하지 않고 황금에 탐착한 수행자의 업보인가? 그것은 그날의 향엄노스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은 금과옥조(金科玉條)의 방편법의 법어로 오직 수행자의 길을 갈것을 맹촉(猛促)했을 뿐이다. 산은 산이고 능구렁이는 능구렁이일 뿐이다. 나역시 요즘 과거의 나같은 어린 사미를 만나면 향엄노스님처럼 방편법문을 한다. “능구렁이 몸을 받지 않으려면 수행 잘해서 불교계와 사회에 유익한 승려가 되어라"
그러나 작금의 불교계에는 행색은 수행자인데 마음은 매국노(賣國奴)짓은 물론, 부귀영화를 위한 매불행위(賣佛行爲)로 속인 뺨치게 치부하여 황금에 탐착하는 자들을 왕왕 볼 수 있다. 그들의 탐착심은 황금빛 파불상을 사수하려는 그날의 능구렁이와 다를게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직 수행해야 한다는 나의 말은 승속을 통하는 충정(衷情)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산사 도량에 능구렁이들이 맹활약한다는 정보만 접한채 몸보신하려는 속세의 남녀군(男女群)들이 능구렁이를 잡는 긴 막대와 부대자루를 들고 산사로 달려가 맹활약을 하지 않기를 지도지도(至禱至禱)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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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렁이의 追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