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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불씨는 일시 보관되고 있다.
그림에서 나비가 다른 그림으로 날아다니고 폭포수가 영화속 화면처럼 쏟아지는 드로잉 쇼는 미술의 현대적 메타모포즈,즉 변형(變形)이다. 이미 고정된 틀은 무시되고, 환상은 현실이 되며 구태의연한 프레임은 곧잘 망각되고 파괴된다.
오 정 인(소설가)
요즘은 원래 위엄있던 神조차도 희디흰 망토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플레시게임개발에 중독된듯하다.
우리의 삶에서 예측을 가능케 해주는 힌트란 없다.
현실에 꿈을 주었던 무한상상의 만화조차 이제 현실의 변화와 무수한 변형과 돌연변이들을 죽어도 따라가지 못하고 숨차한다.
정작 순수했던 시민의 촛불에 끼워들어 주도권을 잡은 세력들조차 자고나면 식은땀 나게 급격히 진화한 촛불의 에너지를 그들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전대통령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 촛불에 전혀 영향력이 없다.
이 말은 촛불을 끄기위한 어떤 은밀한 타협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의 소강상태는 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촛불은 지금 변형을 위한 일시 휴식기로 들어간듯하다.
감성적 충동을 극대화 시킨 광장의 광란에서 이성적 계산의 숙의(熟議)로 들어간 것이다.
무엇을 위한 염원? 백만 촛불 동원인가?
이명박 아웃? 그 다음은?
그들은 그들의 희생이 결국엔 손으로 입 틀어막고 웃음을 참고있는 여의도 정치꾼들을 위한 노예들의 합창일 뿐이라는걸 깨닫게 됐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대통령에 실망하고 배신감 느낀 우익보수쪽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화들짝 정신을 차린 듯 하다.
이제부터 그들의 머리는 차디찬 얼음처럼 이성적이고도 냉철하게 무장할 것이다. 토론하고 확실한 목표를 산출 해 낼 것이다.
지금은 그 시기다. 저절로 꺼진 촛불이 아니라 , 약화된 촛불이 아니라 고도로 의도한 결정에 의한 소강상태란 얘기다.
우익보수측도 이미 그런 움직임이 있다. 기존의, 현재의 정치인들을 결코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이제 더 이상 죽쒀서 뭐 주는식의 어리석은 짓은 말아야 한다는 강한 자의식은 이미 양쪽이 다 형성됐다. 우익보수는 순수한 정수(精髓)의 우익보수당으로 항상 변화 할수있는 단체들로 변형된 것이다. 가장 용감하게 투쟁하는 그들이 본의아니게 결과적으로 엉터리나 사이비들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필요할 때 언제든 직접 정치에 뛰어들 수 있는 준비는 필요하다는데 동감한다. 물론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촛불에서 그런것은 더 문제다.
그들은 이번에 수십만의 숫자와 엄청난 에너지를 경험하고 축적했다. 목숨걸고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은 그들의 그다음의 절차와 목표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인들이 그들앞에 서는 것을 처음에는 거부했다. 야당정치인들이 앞장서는 것을 허락한 것은 이미 그들이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와 영리해진 다음 부터다.
그들역시 투쟁의 목표와 성공의 영광에서 기존의 정치인들의 이름은 없을 것이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현재의 정치인들은 이제 아스팔트나 광장에서는 신뢰받지 못한다.
지금 상태는 그들 말대로 시민권력으로 변형되어 있는 셈이다.
내란적 광란은 물대포나 하다 안되면 막말로 군대동원으로라도 얼마간 진압할수 있다.
차라리 광장을 광란으로 휘몰아갈 때 나는 오히려 그들을 아마츄어로 보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런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것에 불과한 유치함일수 있다. 결과가 보였기 때문이다.
삶에서든 문제에서든 미리 힌트를 준다면 그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있을까?
그러나 광란조차도 이제는 시민권력이든 어떤 명칭이든 ,명확한 목표와 냉철한 토의로 들어간 보이지 않은 힘들의 치밀한 계획과 계산하에서 전국적으로 동시다발로 시도된다면 그것은 더 상대하기 힘들것이다.
그런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쩌면 그들은 이제까지는 연습게임에 불과 했을수도 있다.
아고라를 아수라라고 말장난식 폄훼를 해도, 인터넷의 패해를 나열하고 평정과 견제의 압박을 한다해도 이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미 아고라는 인터넷에서 어린 아이들까지 즐기면서 그들이 목적한 곳을 자연스럽게 공공의적으로 인식시킬수 있는 다른 모습으로 아주 영리하게 변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원적 촛불의 문제가 그대로 살아있는한 아수라적 아고라는 변형되어 어디에선가 다시 생겨날 수 있다.
빌딩을 불지르고 핵장치까지 가동되는 플레시게임이라는 방법으로
촛불의 변형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너무 쉽게 오판해서는 안된다.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들과는 다른 의미,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편견에대한 강력한 분노라는 의미에서지만 이제 불교계까지도 핍박을 각오한 천일의 촛불을 다짐할 정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할수도 있는 종교전쟁의 조짐일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원적 문제해결이란 무엇일까?
해결은 될 수 있는 것일까?
실은 암담하다. 그래도 생각해야한다.
촛불의 근원은 무엇일까?
지난 두달동안 광화문 일대를 넘실거리던 촛불의 파도는
결국 깊고도 참담한 우리 모두의 배신감과 불신(不信)의 강이다.
지상에 펼쳐진 지옥의 모습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기를 바라는 적대감의 결코 돌아오지 못할강들이 우리의 곳곳에 너무도 깊은 계곡들을 만들고 있다.
절대선(善)이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자신들이 믿는 바를 절대선이라는 전제하에 상대를 쳐부셔야 할 악랄한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참나무 껍질보다 더 두꺼운 불신과 절대로 타협되지 않는 잔혹한 적의(敵意)가 견고한 성들을 쌓고 있다.
그 사이를 노리는 무수한 세력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연결선을 가지고 부추기고 노략질하고 검은 뒷거래를 하기도 한다.
쾌도난마식의 해결방법은 없다.
그러나 차선의, 차차선의 방법은 찾아야한다.
일단 신뢰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대통령부터 정부부터 여당부터 그 일을 해야한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지켜주는 그나마의 방법은 법치다.
법치를 제대로 하려면 권력이 먼저 원칙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건 상식이다. 그래야 설득이 되고 힘을 가질수 있다.
지금의 정부, 여당이 국민들에게 그런 신뢰를 받을만 한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도 스스로 매일매일 돌아보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삿대질하고 저놈은 악마다 저놈들을 죽여라 가두어라 하고 있다.
각자가 믿는 사상과 이념과 시각만이 , 자신들의 울분과 피해의식과 분노만이 절대진리처럼 맑고 정당하다고 소리친다.
믿기 싫어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반도의 오래된 슬픔이다.
우리 민족에게 결코 풀리지 않을 숙제이고 아픈 멍에가 되었다.
촛불은 또 어떤 외부든 내부의 강한 힘에의해 어떤식으로 변형내지 돌연변이가 되어 또다시 도심을 삼키는 화염의 강을 만들지 모른다.
광화문 일대가 아니라 정국의 요소요소에서 어느날 갑자기 동시다발로 해일처럼 촛불이 휘몰아칠지도 모른다.
도저히 불가능한 화합일지라도, 어느 한쪽을 잘라낼수 없는 결국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여당은 누구보다 먼저 일단은 청정한 푸른호수같은 신뢰를 회복하기위해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보고 최선을 다해주기 바랄뿐이다.
보수의 결점은 부패일수 있다. 지금은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어느때보다 청렴하고 어느누구보다 정직하고, 뒤통수치기나 , 권력을 이용해서 잔재주 부리는 경박스런 비열함으로 신뢰를 잃지말고, 국가를 위한 진정한 애국심들을 가져주기 바란다.
불화와 적대감을 녹이고 조화를 이루어낼 신망있고 강력한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할때다.
너무 오래되어 나이먹은 지구촌 전체가 이제 모든것에서 기능과 면역성이 약화되고 노후되어 헉헉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전반적으로 더 힘들고 있다. 정말 어려운 때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럴수록 우리 국민들도 이제 모두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저놈들 죽여라 하기전에 한번쯤 역지사지(易地思之) 해 볼 사고(思考)의 여유와 아량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나의 민족끼리, 한국가의 국민끼리 죽어도 돌이킬수 없이 돌아오지 못할 불신(不信)의 깊은 강을 더욱 멀리 파고 있는 우리 자신들을 이제는 한번쯤 돌아봐야 할때가 아닐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잘 가고 있는 것인가?
마주보고 달려오는 분노의 불차들이 부딫힌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촛불측에도 권유하고 싶다.
진화든 변형이든 돌연변이든 , 혹시 창조든 다 좋다.
어느 정권이든, 정권의 일방적 독주(獨走)를 염려한 견제의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주권재민,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감시? 마땅히 해야한다. 준렬한 채찍 , 필요하다. 반성, 시켜야한다. 잠시 맡겨준 권력을 믿고 겸허하지 못한채 오만하고 남용하고 잘못했다면.
촛불은 이제 정권의 견제역활로서는 나쁘지 않다.
권력형 부패도 좀더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권력의 잘못된 오만도 지적할 필요는 분명 있다.
다만 적의(敵意)를 위한 적의 , 투쟁을 위한 투쟁, 피해의식의 분노화가 폭력과 광란의 당위성을 가지려하는게 아닌,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성인자를 버리고 우성(優性)의 유전자에 의한 건강한 촛불의 변화, 돌연변이. 혹은 변형을 논의 해 보는게 어떨런지?
예술에서의 새로운 창조적 메타모포즈처럼 국민들에게 세계인들에게 청정한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촛불의 창조적 변형을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그대들 역시 이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선한 국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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