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종북 정치인이 외치는 민주화의 종착역은, 조선인민 민주화
이 법 철(bubchul@hotmail.com) 그 사람의 진정한 인생평가는 관두껑을 닫을 때, 인생종착역을 보았을 때, 비로소 참된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박정희, 전두환, DJ, YS, 노무현, 다섯명의 전직 대통령들의 종착역을 보면, 그들의 참된 사상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DJ, YS, 노무현은 민주화를 외치며 투쟁하며 결국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은 1차 목표는 제왕적 권좌인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고, 2차 목표는 조국통일을 빙자한 북한정권의 충성동이같은 종북 정치인 노릇이었다. 주장의 근거는 그들이 인생의 종착역에서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외쳐며 종북정치를 해온 그들의 역사가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DJ, YS, 노무현은 제왕적 권력인 대통령이 되기위해서는 환장하듯 설친 사람들이다. 그러나 72가지 변화술을 가진 손오공이 원숭이 항문이 붉은 것은 변화할 수 없다듯이, 그들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김일성을 향한 단심(丹心)은 국민들에게 기만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오매불망 꿈꾸워 왔던 대통령이 되었을 때 DJ, YS, 노무현은 어떤 국정을 펼쳤는가? 그들은 일평생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모략, 중상, 흑색선전, 맹비난해왔다. 그런데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보다 더 좋은 정치를 했을까? 이 글은 DJ, YS, 노무현, 소위 민주화 투사가 대통령이 되어서 무슨 정치를 했는가와 사상의 종착역을 살피며, 국운이 선택한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의 사상의 종착역에 대해서 살피면서 누가, 자유대한을 사랑하고 국민을 존중하고 사랑했는가에 대해 고찰하기로 한다.
문민 삼총사(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의 활약
무장출신 대통령들에게 온갖 모략 중상, 비난을 일삼았으면서 민주화를 외쳤던 DJ, YS, 노무현의 본색은 대통령이 되고 난 즉시 스스로 드러내었다. 첫째, 김일성에게 생존시에 충성을 바치더니 김일성이 사망하고 나서부터는 김일성의 유자(遺子)를 돌보는 고명대신(顧命大臣)처럼 김정일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종북 정치인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둘째, 가족들이 무차별 뇌물을 받아 챙겨 대졸부(大猝富)가 되게 배려한 것이요, 셋째, 특히 김대중, 노무현은 제호주머니 돈은 아까워 지출지 않는 술법으로 통일 좋아하는 국민들에게 ‘햇볕정책’이라는 사기술로 혈세를 착취하여 김정일에게 충성을 표시했다.
떡줄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전해오는 말이 있다. DJ와 노무현이 햇볕정책으로 김정일에게 돈과 물품만 대량 공급하면 마침내 김정일이 공산주의와, 세습독재를 포기하고 철의장막을 걷고 조국평화통일로 나온다는 기만책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속였다. 김정일 또한 종북 정치인들의 대북 퍼주기를 받으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 판처럼 자신이“통크게 마음 먹으면 통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대북퍼주기의 결과는 어떤가? 예컨대 오히려 김정일은 북핵으로 협박, 공갈을 하고, 무고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주부를 등뒤에서 저격하여 죽였을 뿐이다. 김정일은 입으로는 ‘우리민족끼리’의 평화통일을 표방하지만, 내심은 북핵을 폭발시켜 ‘베트남식 통일’을 획책하려는 자이다. 베트남식 통일은 첫째, 공산당으로부터 떼주검을 당하는 길이요, 둘째, 한반도가 김일성왕조가 되는 것이며, 셋째, 한반도가 다시 중국의 위성국이요, 속방(屬邦)으로 전락할 뿐이다.
YS는 어떻게 대북한 점수를 땄을까? 북한정권이 가장 증오해 마지않는 국군 죽이기다.
첫째, 5,18특별법’을 만들어 국군을 일방적으로 폭도로 몰아 특별법에 의해 단죄한 것이요,
둘째, ‘5,18 특별법’을 효시로 제주 ‘4,3 폭도’시건, 여순반란사건, 등 도처의 반란사건을 진압한 국군과 경찰을 반대로 폭도자요, 가해자로 만들어가는데 역할을 한 것이다.
셋째, 94년 5월 초,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세계의 악당중의 첫 번째인 북한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전투개시를 하려할 때 결사 반대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반대는 자유대한 보다는 북한정권의 보위를 위해 자행된 것이라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가터와 YS의 공로로 북한정권은 목숨을 부지했으나, 클린턴의 공갈협박에 놀란 김일성은 94년 7월 8일, 묘향산 산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DJ, YS, 노무현의 행복한 춘몽(春夢)은 있었다. 민주화를 외치면서 첫째, 일확천금(一攫千金)의 정치자금을 받아 사복(私腹)을 챙길 수 있고, 둘째, 공천장사를 해서 떼돈을 벌고, 셋째, 조국평화통일을 외치면서 국민혈세를 착취 북한정권과 나눠먹고, 넷째, 민주화를 외치며 돈없다고 울면 착한 국민들이 개, 염소, 오리, 닭 판 돈 까지 송금해와 대졸부(大猝富)가 될 수 있었든 것이다.
이제 그들의 정체는 이제 온국민들에게 적라라(赤裸裸)하게 드러났다. 먼저 노무현이 양심의 가책속에 부엉산의 고혼이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정의하며,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홀연히 DJ는 저승차사에게 멱살을 잡혀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삼총사중 남은 자는 YS이다. 그가 또 민주화를 운위하며 DJ의 세력을 수하에 거두려는 행보를 보인다. 왜?
지난 11월 26일, 고 DJ의 졸거(卒去) 101일째 되는 날 저녁, YS가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화합만찬을 주재했다는 보도가 도하 언론에 보도됐다. 그는 “DJ와 난 죽음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며 “만약 김 전 대통령과 내가 협력해 투쟁하지 않았다면 이 나라는 지금도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통받는 미얀마처럼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렁이가 제몸추듯 자화자찬의 극치 아닌가? 그는 약방의 감초처럼 또 5공을 씹었다. YS는 자신이 자행한 첫째, 위헌의 '5,18특별법‘으로 자유대한의 국군죽이기가 민주화요, 둘째, 북한 세습독재자를 지원하는 것이 민주화요,
셋째, 대졸부(大猝富)가 되어도 국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을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그의 춘몽(春夢)이 오래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딱한 영감님이다. 그도 조만간 저승차사의 손에 멱살잡혀 뾰족한 수 없이 끌려가겠지만, 그동안에 소통령이라는 별호의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여 영호남의 종북정치인들의 맹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사실 YS는 단 일주일의 유치장 생활조차 하지 못한 몸보신의 민주화투쟁을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5,18특별법’이 개떡같은 특별법이요, 국군죽이기의 특별법이 아끼는 아들에게 부메랑이 되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정치인이다.
현대 정치사의 忠義 表象은 누구인가?
충(忠)과 효(孝)는 동서 고금의 인간사회에 가장 존중되는 사상이요, 영원불변의 진리라 할 것이다. 충효에서 딱 하나를 첨가한다면, 의(義)사상이다. 의는 두 가지가 있다. 신의(信義)와 충의(忠義)이다. 신의는 친구는 물론, 사회생활, 국가간에도 신의가 있어야 한다. 충의는, 그러나 주군(主君)과, 국가원수의 상하지간에는 충의(忠義)가 있지만, 조국인 대한민국을 상대로 충의(忠義)도 있다. 누가, 자유대한의 현대사에 자리메김할 누가 충의지사일까?
현대사에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자유대한 군인의 충의(忠義)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YS가 개떡같은 특별법으로 단죄한 ‘12,12’의 합수부측 장병들이다. 국가원수인 박대통령이 동향동리(同鄕洞里)출신이요, 신임했든 부하인 정보부장 김재규의 음모로 시해가 시작할 때 정 육참총장은 사전에 시해지근거리에 김재규부터 초대되어 와 있었다. 시해의 총성이 수차 울리고, 피비린내를 풍기며 피에 젖은 와이샤스를 입은 김재규가 제일먼저 달려와 만난 사람은 정총장이었다.
김재규의 시해현장 부근에 사전에 포진하듯 와 있었던 정승화 총장 관련설이 서울 장안과 경향 각지에서 소나기같이 쏟아졌다. 하나같이 수사를 맹촉했다. 장안에는 어느새 정씨득국(鄭氏得國)이라는 요언(妖言)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감록에 등장한 정도령이 정총장이라는 아부파가 생기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박대통령이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 시해되어 싸늘한 시체로 누워 있는데,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은 우왕좌왕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시해자인 김재규기 계엄을 실시할 것을 명하다시피 했다.
마침내 시해 지근거리에 있든 정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었다. 정총장은 김재규가 육참총장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새로운 권력자 정총장인, 계엄사령관에게 수경사 사령관, 특전사 사령관 등이 충성의 줄을 섰다.
출세를 위해 시해당한 국가원수의 억울한 주검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 된 것이다. 당시 군은 김재규군(軍)과 박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충의장병들간으로 좌악 나눠졌다. 마침내 양군은 충돌했다. 국가원수를 시해한 자 및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충의의 장병들이 승리한 것이다. 국가원수를 시해한 자들이 계엄하에 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는 충의장병들의 거병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충의장병들은 박대통령 시해범들과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운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의 충의단심(忠義丹心)을 주목했다. 기립박수를 보냈다. 충의장병들이 등 떠미는 바람에 전대통령의 운명이 바뀌어 대통령이 됐다. 훗날 전대통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전혀 없는 충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인일 뿐이다.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을 사이로 인민군과 전투를 할 때 대구 공고의 졸업반이었다. 인민군의 박격포탄이 대구시 근교에 떨어져 폭발하는 것을 보고, 조국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전선으로 가기 위해 진해 육사에 입교했다. 그는 어머니와 눈물로서 작별하면서, 군문에 스스로 들어갔다. 그는 그때나,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지금이나 가슴에는 대한민국을 향한 충의단심 뿐이다.
충의장병들의 칭송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할 때,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은 장기집권의 폐해를 되풀이 하지 않기위해 장기집권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대통령직에서 떠나갔다. 후임자에게 ‘6,29 선언’으로 ‘문민시대’를 열라는 간절한 부촉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에게 이를 갈아부치는 정치인은 있었다. 충의와는 무관한 군대도 갔다오지 않은 DJ와 YS였다. 그들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 분풀이로 연일 민주화를 빙자하여 흑색선전을 쉬지 않았다. DJ의 음모는 성공했다. 자신이 배후조종한 당시 광주사태를 모두 전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었다. 세계사상 유례없는 흑색선전이었다. YS의 음모도 성공했다. 위헌을 해가면서까지 특별법을 만들어 ‘5,18'과 ’12,12‘의 허물을 몽땅 전두환 대통령과 충의장병들에게 뒤집어 씌웠다. DJ와 YS는 충의장병들을 죽이고, 그다음 민주화를 외치면서, 조국평화통일을 빙자하여 종북정치가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민주화는 종북정치가 종착역이었든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이 오늘날 밥술이나 먹도록 산업화의 기초가 된 것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두 명의 대통령이 재직할 때는 첫째, 중단없는 전진으로 경제성장을 향해 일로 매진했고, 둘째, 철통같은 안보가 있었다. 북한군의 도발에는 언제나 일전불사(一戰不辭)의 당당함이 있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믿음을 주었다. 대다수 자유대한의 영광의 발전을 위해 국민총화를 이루었다.
오매불망 대통령 되려는 음모와 술수를 부리든 문민정부의 삼총사는 대통령 소원을 이루어서 어떤 행보를 보였나? 첫째, 무장출신 대통령들이 이루어 낸 경제발전을 북한 세습독재체제 유지를 위해 국민혈세를 착취하여 김정일에 바치려고 혈안이 되었고, 둘째, 국민혈세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망치기에 전념하고, 셋째, 자신과 가족의 사복(私腹)을 채워 모두 대졸부가 되었다. 그리고 임기내내 사회도처에 좌우대결의 대못을 깊이깊이 박았다. 결과는 어떤가? 계엄령이 선포되어 자유대한을 수호하는 오늘의 충의장병들이 나서 대청소를 하지 않는한 한국사회는 기사회생(起死回生)하기 어려운 중병에 들고 말았다.
통일사기극을 벌인 자들이 김정일과 야합, 인민군에게 무혈입성케 한다면 어떤 결과가 한국사회에 벌어질까? 어느 전망을 요약하면, 1. 거주지간의 이동을 금지하며 허가받은 자만이 이동할 수 있다. 2, 5호담당제(월남패망직후실시)가 아닌 3호담당제를 실시한다.3,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3호담당제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4, 불평불만자, 허가와 사전승인을 무시하는 자를 공개처형하며 공개처형장은 인근학교 운동장에서 한다. 5,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을 분리시킨다며 대대적인 거주지 이동을 명한다. (부산에서 강원도로 광주에서 함경도로).
유산계급자 (1가구2주택 이상 소유자, 재산 1억 이상 소유자, 놀고먹든 자 등등) 들을 사회범죄자 (술주정뱅이, 강도강간자, 소문이 안좋은 자 등등) 와 같이 집단 처형해버린다. 7, 전직공무원, 군인(하사관이상), 경찰, 들은 전부 재교육장으로 끌고 가서 강제노등으로 살게한다 (대부분 5년이내 사망함-월남)8, 모든 공개처형은 재판 없이 즉결심판으로 실시한다.
살아남은 대부분의 남한사람들은 북한땅으로 강제 이주되어 재건작업에 투입된다 (3년내 50%이상 사망확실)10, 전체적으로 남한인구가 3천만으로 줄때까지 처형과 강제노동이 지속된다. 11, 시체는 100% 화장해 버린다 (송두율은 김정일의 지시로 1978년에 독일베를린대학교에서 1941-43년간 유태인강제 소각장운영과 전후처리 결과에 대한 논문으로 대략학살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이북에 제출했다)12, 간헐적으로 도심에서 무장폭동이 일어나면 즉시 전부다 사살해 버린다. 등이다. 우리는 김정일의 충성동이가 된 종북 정치인들의 사기적 민주화에 더 이상 기만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장장 15년간 종북정치인들의 민주화에 속아 좌파의 죽창은 등장했고, 총성만 울리는 순서에 처해있다. 이제 한국사회는 자유대한의 마지막 보루(堡壘)인 충의군경(忠義軍警)에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위기의 상황이다. 통일은 천천히, 우선 경제성장이어야 한다.
저 사기적인 종북 정치인들이, 대북 퍼주기를 하면서 평화통일을 운위 하지만 김정일은 북핵을 앞세워 베트남식 통일을 하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국전을 일으킨 김일성에 이어 부전자전(父傳子傳)의 전략전술일 뿐이다. 자유대한을 수호하는 애국시민들은, 우선, 종북정치인부터 정계에 발을 못붙이도록 강력히 운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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