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 중에서 다단계판매업 만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업태(業態)도 드물다. 특히 다단계판매업에 대하여는 다른 유통업과는 달리 업태 자체에 대한 긍정-부정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다.
다단계판매업을 옹호하는 측-주로 사업자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련돼 있는 다단계판매업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중소기업판로 확대, 고용창출, 유통채널 다양화 등 다단계판매의 국민경제적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반대로 부정하는 측에서는, 다단계판매의 장점은 사업자가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소비자 피해 양산, 인간관계 파탄, 그릇된 환상과 한탕주의적 풍조를 만연시키는 사회의 암적 존재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서 수많은 논란과 함께 개정된 방문판매법(다단계판매업을 규율하는 법)이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났다. 당시 법개정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은 ‘규제완화(시장자율성 증진)’와 ‘소비자정보제공 강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종래와 같이 획일적인 영업활동 규제와 처벌 강화만을 통해서는 소비자피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개정법은 다단계판매업에 있어 가격 제한 완화, 위탁·알선판매 허용 등 사업자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완화하는 대신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제도를 규정해 소비자피해 구제에 보험원리를 도입한 바 있다. 또한 개정법은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결정에 필요한 사업자의 정보제공 의무를 강화해 규제완화에 따라 위법행위 통제가 약화되는 것을 방지했다.
개정법이 마련한 이 같은 제도와 방책은 착실히 실행돼 왔다. 공제조합이 설립돼 다단계판매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해 효과적인 보상을 해주고 있다. 설립 이후 1년 반 남짓한 기간동안 4600여건에 30억원정도의 피해를 보상해 소비자·판매원 피해구제에 상당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다단계판매를 포함한 특수거래 분야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조정해주는 기구가 2003년말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내에 설치돼 공제조합에서 처리가 되지 않는 분쟁 사안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결을 하고 있다.
정부에 의한 시장 감시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위법 행위자에 대하여는 수시로 법집행이 이뤄졌으며 특히 공제조합에 가입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다단계판매업을 해온 업체들에 대해 고발 등의 조치가 취해진 바 있다.
이 같은 사후적 피해 구제, 처벌 등의 조치와 더불어 금년초부터 50여개 업체가 공정거래법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도입해 공정거래법·방문판매법을 준수하고 소비자 피해도 예방하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금년 8월에는 다른 업종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상세한 정보를 정리해 공개한 바 있다.
업체별 매출액, 판매원수, 후원수당 지급액·분포 등을 포함한 이번 정보공개로 다단계판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막연한 환상을 바로잡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노력의 결과 다단계판매와 관련한 피해 사례는 줄어들고 있다.
소비자보호원 자료에 따르면 업태별 피해 상담건수에 있어서 다단계판매 분야는 2002년도에 비해 2003년도에 약 42%나 대폭 감소한 바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료를 보더라도 다단계판매 피해 사례는 2002년 2,095건, 2003년 1,786건, 금년 상반기 561건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다단계판매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먼저 다단계판매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력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다단계판매원 활동이지만 단기간에 적은 노력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다단계판매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무(無)에서 부(富)를 창출할 수 없다. 물품을 판매·소비해야 하고 거기에서 발생한 이익을 나누어 갖는 것에 불과하다. 많이 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입이 없거나 용돈 정도의 수입을 가질 뿐이다. 일부 다단계판매원이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고 해서 자기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환상을 갖거나 현혹돼서는 안 된다.
다단계판매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다단계판매원의 지위도 오랜 기간동안 노력을 통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정당한 것이지 승급에 눈이 멀어서 필요하지도, 팔리지도 않을 물품을 무리하게 구매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무조건 끌어 모으는 식의 영업활동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한편 다단계판매로 인한 피해자가 그간 많았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규제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자는 주장도 바람직하지 않다. 주식시장에 있어 피해자가 많다는 이유로 주식시장에서의 거래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중하게 처벌하면 주식시장 자체가 무너지거나 건전 거래자들은 빠져 나가고 적발을 감수하고라도 큰 이득을 챙기려는 악덕 거래자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법적 규제를 통해 다단계판매 활동을 억압해서 그로 인한 피해를 막겠다는 발상은 마치 주식시장을 위축시켜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자칫 건전 사업자를 구축(驅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규제와 처벌보다는 소비자에 대한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사업자간 건전 경쟁을 촉발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통하여 시장에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단계판매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