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생사의 자유자재
쇼펜하우어는 삶의 괴로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법철 스님
백정이 지금 자기들을 고르고 있는 줄을 모르고 목장에서 즐거운 듯이 뛰노는 양떼들을 생각해 보라. 우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현재의 복된 나날을 즐기고 있더라도 운명이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병마, 박해, 퇴락, 살상, 실명(失明), 등이다.
불교는 마음공부를 통하여 운명 즉 업(業)을 극복하고 마음에 평안을 얻는 종교이다.
마음공부를 통하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있는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그 가운데 중국의 당나라 때 은봉(隱峰)선사의 생사를 초월한 모습은 조만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살아있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대해 시사하는 바 크다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은봉선사의 속성(俗姓)은 등(鄧)씨이고, 마조도일(馬祖道一)선사의 법사(法嗣)로서 평소 기쾌(奇快)한 행(行)으로 유명한 분이다.
은봉선사는 평생 건강한 가운데 항상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기행을 나타내어 보여서 많은 사람을 깨우쳐 왔다.
은봉선사는 자신의 세연이 다한 것을 알고 역시 파천황적(破天荒的)인 열반 장면을 연출하여 세인에게 생사를 자유자재하는 기발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어느 날, 은봉선사는 수행자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 참석하여 돌연히 이런 말을 꺼냈다.
제방의 장로(長老)들이 천화(遷化=열반)할 때 흔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것이야 그리 신통할 것이 없는 것이고― 서서 그대로 왕생(往生)한다면 전례없는 신기한 열반의 모습이 아닐까?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그렇습니다. 서서 간다면야 생사를 자유자재한 모습이지요. 그러나 신기한 열반이라고 할 수 없다.
전례가 있었으니까요. 3조대사(三祖大師)께서 큰 나무 밑에서 선 채로 대적정(大寂靜)에 드셨다는 기록이 전해오거든요.”
제자의 말을 들은 은봉선사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여보게,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열반에 들었다는 사람은 없겠지? ”
예. 그런 소식은 아직 불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은봉선사는 제자의 답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거꾸로 서서 왕생 하려네.
은봉선사는 말이 끝나자 마자 두 손으로 땅을 집고 다리를 공중으로 번쩍 들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는가 싶자 호흡을 끊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중은 놀라서 황망히 여기저기 소리쳐 대중들을 부르고, 대중이 모여들어 은봉선사의 기이한 열반의 모습을 보고 생사의 자유자재에 감탄하면서 합장하여 불호를 외우고 절을 올렸다.
더욱 신기한 것은 물구나무를 서서 열반한 은봉선사가 입고 있던 가사장삼이 조금도 흘러내리거나 벗겨지지 않고, 입은 그대로 몸에 착 붙어 있는 것이다.
은봉선사의 거꾸로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땅 위에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은봉선사의 기이한 열반소식을 듣고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경배를 올리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찬탄했다.
조사의 열반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여 가장 생사를 자유자재한 분이 은봉선사이다."
그런데 장례식을 올리기 위하여 시신(屍身)을 납관(納棺)하게 되었으나, 은봉선사의 도화(倒化)한 시신은 자세 그대로 꼿꼿이 서서 아무리 잡아 당기고 밀어도 꼼짝달싹을 하지 않았다.
대중은 황망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그 때, 한 여승이 홀연히 대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와 도화(倒化)한 은봉선사를 향해 이렇게 매섭게 힐책을 했다.
오라버니! 이 무슨 짓입니까?
평생을 기행만 하시더니 열반에 들 때마저 이러시면 첫째는 불조(佛祖)에게 실례가 되고, 둘째로는 중생을 놀라게 하여 미(迷)하게 하니 이 무슨 짓입니까?
제발, 이제 그만 하세요!
하고, 여승이 손끝으로 슬쩍 미니 그대로 스르르 넘어지는 것이었다.
그 여승은 은봉선사의 누이동생으로서 오라버니를 따라 출가위승하여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오래전에 오도(悟道)한 휼륭한 선승이었다.
은봉선사의 생사자재한 열반을 통해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여 마치 죽음 보기를 고향에 돌아가듯이(視死如歸) 여유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마음의 자세, 생사의 자유자재는 오직 마음공부를 닦아야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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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