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현일기자의 시사펀치 >
우리는 응시한다.
오직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응시의 상황이란 것이 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분노조차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둔중한 쇠뭉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할 뿐이다.우리는 열흘 동안 진도 앞바다를 지켜보았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을 기다리며 부모들이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하염없이 진도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듯이 우리는 역시 구조대의 한 마디,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해서 온종일 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열흘, 아직도 아무런 구조의 소식은 없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처럼 우리 역시 그 아이들이 반드시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 부모들처럼 우리 역시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환상을 보고 아이들이 돌아오는 떠들썩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아직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저 넘실대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머릿속이 하얀 안개로 덮여 있는 듯하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사실들은 모호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왜 저 짐승같이 커다란 배가 십여 년 한결같이 다녔던 항로에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말인가? 배가 기울어진 다음 황금의 한 시간 동안 왜 구조대는 아무것도 못했던 것인가? 사진으로 보이는 창문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데, 그 창문을 깨는 망치는 왜 없었던 것인가?
왜 정부는 콩 볶듯이 분주하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인가? 왜 정부의 발표는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것인가? 이 모든 의문이 진도 앞바다의 조류보다 더 세차게 일렁거리는데, 우리가 아는 것은 마지막까지 바다 위에 떠올라 있던 세월호의 꼬리 정도이다. 그것조차 언젠가부터 물속으로 가라 앉아 보이지 않는다.
욕하고 싶다. 분노하면서 절규하고 싶다. 때려 부수고 싶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팔 하나, 다리 하나 들 힘이 온몸에 빠져나갔다. 도대체 누구를 향해 욕을 하고 무엇을 위해 절규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
언론은 여전히 관성대로 움직인다. 한 번은 배를 버리고 떠난 비정규직 선장을 까발리더니, 또 한 번은 세월호의 선주 구원파 회장 이름 없다는 사진가를 쑤셔댄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내 책임은 아니지, 네가 할 일 아니냐 하는 해경과 정부를 저주한다. 하지만 그 어떤 고발도 그 어떤 폭로도 그 어떤 저주도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그들 모두가 언론이 파헤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그것만이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책임을 모두 합하더라도 그것으로 이 비극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것만 같다. 진실은 까마득히 다른 어디에 있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호의 침몰은 대한민국의 침몰이라고. 그래도 이 말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저 커다란 짐승 같은 배가 침몰하려면 얼마나 많은 원인이 쌓이고 쌓여야 할까? 그 많은 원인이 무수한 세월을 거쳐 하나씩 누적되었고 마침내 터졌으니, 이게 대한민국 전체의 침몰이라고 해도 정말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타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이 배를 버려야 할까? 우르르, 저 넘실대는 바다에 몸을 던져야 할까? 구조선은 오기나 할까? 생각해보니 어떤 철학자가 이런 문제를 던졌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면서 물이 새는 배를 고치는 방법이 있는지를. 배를 고치기 위해서는 배를 뭍에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 배는 영원히 바다에 떠돌며 우리가 찾는 뭍은 발견되지 않는다. 배에는 물이 새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곧 지금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탄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응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 상황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말대로 생각할 수 없는 것, 배에 타서 물이 새는 배를 고치는 일을 생각해 보자. 그걸 생각하는 것은 살아있는 한에서 우리가 버릴 수 없는 의무이다.
3)정부와 언론 그리고 학자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에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의 침몰 앞에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 나라 사람들은 허둥대기만 할 뿐이라 한다. 쉽게 말하면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는 말이겠지. 시끄럽고 분주하지만 오직 그뿐이라는 말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허둥대기만 할까? 그게 바로 침몰 중인 배에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구멍이 아닐까?
그러면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이렇게 허둥대기만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하나 믿을 만한 구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단단한 암반처럼 굳건한 것이 있다면 그것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로부터 가지를 뻗어 가면서 마침내는 우리를 구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아무리 돌아보아도 믿을 만한 게 없다. 그러니 허둥대지만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국민의 안전에 관해서라면 정부가 가장 믿을 만한 구석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정부는 조작의 대명사가 아닌가?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1번 어뢰는 누구의 작품이었던가? 자기 국민을 잡아먹기 위해 남의 나라 공문서조차도 날조하는 자가 어느 나라 정보부였는가? 신뢰와 원칙이라는 이미지조차 날조하는(아니 위조이든가?) 정치가가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 그러니 이 엄청난 재난을 당해서 정부의 각종 대책기관이 내놓은 발표 중의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국민들이 믿기를 바란다면 그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정부의 발표가 진실이면 정말 그럴수록 더욱 의심스러워지는 것은 그걸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권력을 비판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을 믿어 볼 수 있을까? 우리 언론은 정부의 왜곡된 발표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받아쓰는 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지 않는가? 관 장사라는 말이 있는데 언론이야말로 사건 장사를 하는 게 아닌가? 사건만 나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관련자의 인권은 무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언론만이 가진 고유한 권리가 아닌가? 한 번도 자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적이 없으면서 오늘도 우리 언론은 타인의 기만과 타인의 책임에 대해 자기만이 유일하게 비난할 권리를 가진 자라고 믿는다. 그런 언론을 보고 진도 앞바다에 모인 부모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온 국민은 다 아는데 오직 언론 자신만은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 사실을 검증하고 진리를 추구한다는 학자, 지식인들은 믿을 수 있는가? 필자 역시 여기에 속하니, 필자 자신이 이것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철학자 푸코가 지식권력 복합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이유를 생각해 보라. 정부의 기관들 가운데 학자들이 개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는가? 그들의 전문적인 학식은 이제 권력이 되었다. 그들의 모델은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당한 부르노가 아니다. 그들의 모델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면서도 슬그머니 지동설을 내려놓은 갈릴레오이다. 그나마 갈릴레오를 그들이 모델로 한다면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많은 학자가 자신의 양심을 권력과 돈을 대가로 팔았을까? 모르기는 해도 이번 세월호의 개조를 허용하는데 지식인과 학자들의 책임이 없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4)아이들아 돌아와라
대한민국에서 단단한 진실의 암반이 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이 세 존재이다. 정부와 관료, 언론과 기자, 대학과 학자, 진실은 이들의 운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다른 국민들의 행복을 탐내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침몰에서 가장 책임이 있는 자라면 바로 이 세 존재일 것이다. 더구나 국민들은 다 안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에서 세월호 선장처럼 가장 먼저 도주할 존재라면 바로 이 세 존재라는 것을.
아직도 머리가 뜨겁다. 마치 열병 든 자처럼 쓸데없는 헛소리가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그저 아이들이 구조되기만 기다릴 뿐이다. 모든 것은 구조에 바쳐져야 한다. 여전히 우리 눈에는 살아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돌아오면서 떠들썩한 웃음과 장난기 어린 말들이 들린다.
그들이 돌아오면 그들에게 침몰하는 이 대한민국을 맡기자. 다시 넘실대는 시퍼런 진도 앞바다를 응시한다. 아이들아, 제발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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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꼭 살아서 돌아와라 절규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