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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당 수암 대선교 종사 실기
기사등록 일시 : 2008-09-18 18:33:24   프린터

부제목 : 집현전에서 한글을 창제하고, 역사속에 숨은 고승

 

신미선사는 세종, 문종, 세조 3대왕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조선조 최고 불세출의 고승이다. 그는 세종 조(朝) 때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하고도 이상(我相)을 초월하여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분이다. 특히 그는 권력을 잡기위해 악업을 지은 세조대왕을 불심으로 깨우친 스승이었다.

 

신미선사는 충북도 영동에 영산 김씨 가문에서 부친 김훈과 모친 여흥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가 입산 전에 부친께서 진사벼슬에 등과한 후 태종때에 영의정까지 지낸 귀족가문 출신이기에 속가에서 사서삼경을 모두 섭력하고 출가 입산하여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범서장경(梵書藏經) 또는 다라니경(多羅尼經)이 중국에 들어와 여러 고승들에 의하여 번역되었으나 마음에 차지 않아 범서로 된 원전을 보기 위하여 범어(梵語)와 범서(梵書)를 했다. 그는 범서 경전이 부처님 뜻에 가장 근접한 경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은 중국의 한문 글이 너무 어려워 백성들이 문맹인이 많아 배우기 쉬운 우리 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아침 조회에 신하들을 모아 놓고 우리도 우리 글을 한 번 만들어보자, 우리 글을 집현전(集賢殿)에서 연구하고 창제할 것을 명하며, 집현전답게 장안의 우수한 학자들과 장안 외 전국을 총망라하여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불가의 학덕이 높은 고승까지 선발하여 모든 현자(賢者)들이 집현전에 집결하여 한글창제에 참여토록 명했다.

 


 만월의 달밤에 상원사 계곡에서 흐르는 계곡물로 세조대왕의 병을 치료해준 동자의 얼굴 모습. 훗날 세조대왕은 신미선사로부터 그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현인 문수동자라는 것을 깨닫고, 조각을 명하여 상원사에 봉안 한다. 

 

불가에서는 유일하게 충청북도 속리산 복천암에 주석하고 있는 신미선사가 세종대왕의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하게 되었다. 집현전에서 1443년부터 한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시작 1446년까지 4년에 걸쳐 논의한 끝에 신미선사는 모음 자음 소리글을 범서에서 착안하여 한글을 마무리 짓고 시험할 때 해인사에서 장경을 간인하여(법화경, 지장경, 금강경, 반야심경등) 토도 달아보고 번역도 하여 시험을 끝내고 마침내 우리 글이 완성되었다고 세종대왕께 보고했다.

 

세종은 신미선사의 한글설명을 듣고 너무 기뻐하며 1446년 9월에 우리 글을 ‘훈민정음’이라 전국에 공포했다. 세종은 우리 글이 만들어졌으니 우리 글로 노래도 한 번 지어 보라 명했다. 그 때, 저 유명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용비어천가(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탄생한 것이다.

 

한글창제에 지대한 공을 세운 신미선사에게 세종대왕은 포상적인 의미에서 대시주를 했다. 그것은 신미선사가 주석하고 있는 속리산 복천암에 주불아미타와 좌우보처 관음세지 양대 보살상을 목각 조성하여 시주했다. 그리고, 억불숭유(抑佛崇儒)에 상상할 수 없는 시호를 준비했다. 시호는 ‘선교도총섭밀전정법비지쌍운우국이세원융무애혜각존자(禪敎都摠攝密傳正法悲智雙運 祐國利世圓融無碍惠覺尊者)’ 라고 지어 문종(文宗)에 위임하여 문종이 부왕을 대신하여 신미선사에게 시호하였다.

 

그러나 한글을 훈민정음이라 세상에 공포한 후 집현전에 같이 참석하였던 성삼문, 정인지 같은 유생들이 말하기를, 한글에 대하여 신미대사의 공은 인정을 하되 최초 발기를 세종대왕이 하셨으니 그 공을 세종대왕께 돌리자고 신미대사를 종용했다. 유생들이 군왕에게 아부하려는 속마음을 안 신미선사는 쾌히 승낙했다. 그 후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지은 것으로 되었다. 지금 같으면 특허권을 신미선사가 취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는 모든 공덕은 군왕에게 돌아가는 시절이었다. 단비가 와도 군왕의 공덕이요, 풍년이 들어도 군왕의 공덕인 것이다. 유생들은 조작에 나섰다. 모든 문헌 등에 신미대사가 집현전에 참석한 것 까지도 밝히지 않고 오직 세종대왕이 한글창제를 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한글창제에 대한 모든 증거 문헌에는 신미선사에 대한 언급이 빠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영산김씨 족보엔 신미선사가 세종의 초빙을 받아 집현전에 참석하여 한글창제에 기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유생들은 신미대사가 승려의 신분으로 한글을 주도한데 대하여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들은 세종대왕이 서거한 후 한글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기 시작했다. 한글을 언문이니 부녀자들이 뒷방에 앉아서 찬정에 편지나 써서 보내는 글이니 통시글(쉽다는 말)이니 하며 이것이 무슨 글이냐, 장부들이 배울 글이 못된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신미선사는 세종대왕의 뜻을 따라 누구든지 배우기 쉽게 만든 것 뿐이기에 유생들의 그러한 비웃음에는 개의치 않았다. 유생들은 유서에만 능했지 신미선사처럼 불경, 유서, 범서 등 모두에 능한 선비는 전무했다. 따라서 범서(梵書)에서 착안한 한글 논의에 대하여 유생들은 일체 반론도 한 번 못했다. 뒤에서 비야냥 거릴 뿐이었다. 한글창제는 시종일관 신미선사의 뜻한바 대로 시작하고 완성되었다.

 

집현전에서 4년간이나 학자들이 머물러 있을 때, 학자들을 뒷바라지하는 ‘한글도감(都監)’을 수양대군이 맡았다. 수양대군은 학자들을 보살피면서 그 중에서 신미선사를 가장 존경했다. 한글이 신미선사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고, 유서뿐이 아닌 앞서 언급한 모든 학문에 정통하고, 덕이 높으며, 지혜가 뛰어나고, 점잖고, 용모도 선풍도골(仙風道骨)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글을 창제를 마치고 신미선사는 집현전에서 속리산 복천암으로 돌아와 불가의 수행과 전법에 전념했다. 세월이 흘러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했다. 그러나 문종은 병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따라서 문종의 아들인 12세 되는 어린 단종이 즉위를 하니 수양대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다.

 

섭정한지 얼마되지 않아 수양대군을 따르는 신하들은 어린 왕의 섭정만 할 것이 아니라 수양대군이 군왕으로 즉위할 것을 부추겼다. 수차 고사(固辭)하든 수양대군은 마침내 따르는 도당들과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에 성공한 수양대군을 따르는 도당들은 음모를 꾸며 어린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내고 마침내 무참히 죽게 하고, 수양은 세조대왕이 되었다. 단종을 따르는 수많은 신하들이 희생되었다. 신미선사는 속세를 초연하여 골육상잔(骨肉相殘)까지 하면서 권력을 추구하는 와중에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원혼들을 위해 영혼천도를 해주었다.

 

어느 날 밤, 세조대왕이 잠을 자는데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성난 얼굴로 삿대질을 하면서 말했다. “네가 아무리 용상이 탐이 나기로서니 어린 조카를 살해까지 할 수 있느냐, 이 더러운 놈아!” 하고 세조대왕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가 놀라 꿈이 깨었다. 그 후 부터 세조대왕의 등에서부터 나병(癩病)같은 부스럼이 생기고, 그것은 온몸에 번지기 시작했다. 부스럼병은 얼굴까지 침범했다. 백약이 무효였다.

 

병세가 날로 악화될 때 세조대왕은 불교의 인과응보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세조대왕은 용상을 차지하기 위해 어린 조카를 죽인 것을 통곡하며 참회했다. 또한 자신 때문에 비명횡사한 사람들에 대해 호명하며 참회했다. 자나깨나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죄업을 참회했다. 세조는 나날히 병으로 추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절규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저 중국의 순치황제(順治皇帝)처럼 출가위승(出家爲僧)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병중에 신음하든 수양대군에게 어느날 문득 신미산사가 생각이 났다. 법력이 높은 신미선사를 만나 자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하고, 가르침을 구하고 싶었다. 세조는 사전통보를 한 뒤에 4-5오백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신미선사를 찾아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을 향해 불원천리 찾아갔다. 세조는 청주에 와서 2일간을 쉬고 보은 말티재밑 대궐터 지금 장재리에 하룻밤을 잤다.

 

세조 10년 갑신년(天順八年) 2월 28일 신해일에 말티재를 넘어 큰 소나무 밑을 지나는데 세조가 탄 연(輦)이 드리워진 소나무 가지에 걸릴 것 같아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세조대왕은 신하들에게 소나무가지에 “연 걸린다, 조심하라”고 소리쳐 외쳤다. 그 때 시기한 일이 벌어졌다. 연을 낮추기 전에 소나무 가지가 저절로 번쩍 위로 들렸다. 연은 무사히 통과되었다. 세조대왕은 신기하여 연을 멈추고 신하들에게 명했다. “임금을 알아보는 소나무이니 벼슬을 주자”고 하며 ‘정이품’벼슬을 내렸다. 지금도 법주사 가는 길에는 정이품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건재하다.

 

세조대왕을 영접하기 위해 신미선사와 문도들인 학조, 학열 등 많은 스님들이 나왔다. 신미선사는 세조대왕을 법당으로 안내 참배케 했다. 세조대왕은 복천암 불전에서 3일간 참회기도를 했다. 또 신미선사로부터 법문을 듣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마음의 안정속에 환궁하는 세조대왕은 신미선사에게 청이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으니 말을 하라고 거듭 말했다. 그 때 신미선사는 다음과 같은 청을 드렸다.

강원도 오대산에 가면 월정사가 있고, 월정사 위에 상원사가 있으며, 상원사 위에 중대(中臺)가 있고 그 중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부처님의 머리부분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습니다. 그 보궁의 건물이 오랜 세월에 의해 퇴락하여 도괴직전에 처해 있습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찾는 신도가 드물어 도괴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청컨대 대왕께서 복원을 해주시면 그 공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조대왕은 흔쾌히 신미선사의 청을 수락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신미선사의 문하에서 보궁복원을 감독할 스님을 부탁합니다.”
신미선사는 그 자리에서 학열스님을 보궁복원 감독으로 천거하였고, 세조는 수락했다.

 

학열스님이 걸어서 월정사 거리에 당도하니 벌써 강릉쪽에 나라의 수세(收稅)로 바칠 것을 상원사 적멸보궁 복원비로 올리라는 통첩이 대궐에서 관아에 전달되어 백성들이 곡식을 이고, 지고, 마차에 싣어 월정사 거리가 빽빽하게 들어왔다.( 그 당시는 인부 노임을 곡식으로 환산하였다.)

 

학열스님이 적멸보궁 복원을 마치고 낙성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서신을 받은 신미선사는 적멸보궁으로 갔다. 신미선사는 낙성식에 세조대왕을 초청했다. 세조대왕은 낙성식에 참석했다. 세조대왕은 유월 염천에 해는 길고 많은 신도들 앞에서 왕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옥대를 매었으니 옷속으로 땀을 많이 흘려 지병인 부스럼이 더욱 가렵고 따가웠으나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괴로움을 참아야 했다. 그는 밤 9시경에서야 좌우의 종자들에게 모두 들어가 잠을 자라고 명하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방문을 나섰다. 세조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씻고 싶었든 것이다. 때마침 하늘에는 둥근 달이 환히 떠 있었다. 세조는 달빛 속에 멀리 철철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찾아 혼자 걸었다.

 

세조대왕은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인기척이 전무한 계곡을 찾았다. 그는 나무거지에 왕관과 곤룡포와 옥대를 걸어놓고 계곡의 얼름장 같이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몸을 씻었다. 한참 기분좋게 몸을 씻는데, 갑자기 통통통 산위에서 뛰어 내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세조대왕이 보니 달빛속에 7-8세 되어보이는 어린동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기품이 있는 귀여운 동자였다. 세조대왕은 귀여운 동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얘야, 너는 어디 사느냐?”
절에 살아요.”
오, 그러냐? 너에게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느냐?”
네 말씀하세요.”

이리 와서 내 등을 물로 씻어다오”

동자는 흔연히 세조대왕의 등에 물을 끼얹고 손으로 씻어 주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동자의 손이 세조대왕의 등에 닿을 때 그의 아픈 등은 가려움과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등 씻기를 마친 후 세조대왕은 동자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애야 나하고 약속을 하자. 너 오늘밤 대왕의 몸에 손대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알았느냐?”

동자는 세조를 보며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국법에는 왕의 몸에 손을 대면 이유를 불문하고, 사형에 처했기 때문이다.
세조대왕의 말이 끝나자 동자는 대답했다.

저에게도 약속을 해주세요. 대왕께서는 오대산 계곡에서 달밤에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마세요.”
동자는 말을 마치고 깔깔 거리며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동자가 사라진 후에야 세조대왕은 사라진 동자가 문득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세조대왕이 침실에서 눈을 뜨니 방바닥에 무슨 벌레같은 것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무슨 벌레일까? 손으로 집어 살펴보니 벌레가 아닌 자신의 등과 몸에 난 부스럼이 모두 나아서 딱지가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세조의 몸에는 악업의 댓가처럼 온몸에 번졌든 나병(癩病)같은 부스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세조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신미선사에게 간밤의 동자와의 있었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찾아도 절에는 그런 동자는 없었다.

 

마침내 세조대왕은 붓을 들어 화선지에 간밤에 만난 동자의 용모를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신미선사는 그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현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문수보살의 가피를 세조대왕이 받았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세조대왕은 자신이 본 동자의 상을 조각케 하여 도금(塗金)을 하여 상원사에 봉안케 했다. 독자 여러분이 상원사에 가면 세조대왕이 달밤에 만난 동자상이 있다.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이다. 그곳에는 세조대왕의 옷이 걸려있다. 세조대왕은 집권초기에 악업을 지었지만, 불심이 지극하고, 전국적으로 불사를 많이한 시주, 기도 인연공덕으로 오대산 문수보살의 가호로 병을 치료하게 된 것이다.

 

세조대왕의 마음의 병은 복천암의 신미선사의 법문을 듣고 쾌유하였고, 육신의 병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동자가 아픈 등을 씻어주어 쾌유했다고 세조대왕이 말하여 오늘에 전해온다.

 

한글을 신미선사가 창제한 것은 역사가 사실(史實)이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신미선사는 법당을 짓는 목수역활을 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법당을 짓는 사람은 목수가 짓는 법이다. 그러나 법당 앞에 안내판에는 목수의 이름은 없다. 아무개 스님이 지었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목수처럼, 신미선사는 자신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모든 공덕을 세종대왕에게 회향한 것이다. 그 숨겨진 역사를 모르고 사람들은 한글창제를 세종대왕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한글을 사용하고, 한글의 세계적 우수성을 자랑하는 한국인이여, 시간을 내어 법주사 복천암을 찾으라. 그곳에는 신미선사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신미선사 비석의 비문(碑文)을 읽어보고, 신미선사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향화를 봉헌하여 인연작복(因緣作福)하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나는 후학으로써 한글창제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마치 신문고(申聞鼓)의 북을 치듯, 세상에 신미선사를 알리는 것이다. 역사속에 신명을 바쳐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무명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스님이 어찌 신미선사 뿐일까?

한자용스님(은평구 녹번동 98-26, 정인사 회주) (02) 355-4338

이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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