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통해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처·청 등의 416개 정부 산하 위원회 가운데 51%인 215개를 폐지하고, 201개만 남길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18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정부조직의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상 기능을 하지 않은 이름뿐인 위원회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오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는 위원회들을 적절한 논의나 기준도 없이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졸속이다.
인수위원회는 독립위원회인 국가인권위와 방송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구로의 변경하겠다고 밝히면서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만든 것은 그 역할의 특성상 어떤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 받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권고하고 있는 원칙이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당시의 사회적합의 이기도 하다.
대통령직속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면 대통령과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나 비판은 위축되거나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 방송위원회와 같은 기관을 단지 기능적 접근만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로 인해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정부가 국제사회 등으로부터 '인권 비친화적(human rights unfriendly)'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변경하겠다는 방안 또한 마찬가지 문제다.
방송 또한 권력으로부터 독립이 생명이기 때문에, 설립당시부터 독립 기관화했던 것이나, 이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바꾸는 것은 설립취지를 역행하는 것임은 물론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청렴위원회는 반부패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당초 시민사회에서는 국가청렴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설립하고 산하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립 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치권의 반대로 논의만 무성 했을 뿐 실현되지 못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대통령 소속기구로 설치되었고 조사권마저 주어지지 않아 활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행정자치부의 공직윤리업무를 청렴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을 골자로 반부패기능의 통합과 강화가 논의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반부패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및 행정심판위원회와의 통합하고 위상을 낮추는 것은 반부패 정책을 크게 후퇴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BBK 사건 등의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조치는 ‘부패에 관대하고 무감각한 정부’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그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거듭 밝혀왔음에도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 정보공개위원회의 폐지가 포함되었다. 정보공개위원회의 강화와 행정심판기능부여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학계·언론계·시민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다. 또한, 체계적인 국가기록물 관리의 틀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역시 폐지 대상이라고 한다.
인수위원회가 현 정부에서 논의된 현황을 파악하고 정부조직개편안에 반영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위원회와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폐지는 정부투명성의 후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새 정부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말이 허울에 불과함을 드러낸 것이다.
인수위는 각종 과거사위원회를 법 만료 시기 도래와 함께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청산과 극복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각 과거사위원회의 설립취지와 시한 연장의 필요성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전부 폐지 방침을 밝힌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집권의 주축 세력이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과거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역사적 뿌리가 독재정권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처럼 집권세력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의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기 위해서라도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리는 일에 소극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론수렴 없는 일방적인 결정과 추진에 있다. 인수위원회는 정부와 청와대, 각종 위원회들까지 망라하는 방대한 조직개편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이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어떤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았다. 이는 보수언론의 힘만 믿고, 국정운영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이 당선자는 이 같은 태도들이 정권이 출범도 하기 전에 국민들에게 오만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위해선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등이 통과되어야 한다. 당선자와 인수위는 이제부터라도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야당과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구성원의 여론을 수렴하여 새 정부의 정부조직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오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기구들을 새로운 합의 없이 졸속으로 축소하고 폐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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