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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건 약속 (지율스님)
기사등록 일시 : 2005-12-30 02:59:59   프린터




초록의 공명"<jiyulgreen@hanmail.net>

생명을 건 약속

눈을 감으니

법계가 온통 생명의 바다였고

눈울 뜨니

이땅의 아픔은

온전히 우리의 아픔이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구름이 지나가고

풀벌레가 울다 간 자리가

온통 화엄의 바다였고

우리의 기도가 머무는 곳이 정토였습니다.

바라건대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이 사진은 신륵사에서 뵌 스님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문이 없다고 하신 스님이시지만 ....

스님을 염려하는 마음들은 버리시지 않으시리라고 믿고 영상 편지를 띄워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지율스님은 천성산입니다. 천성산은 또 이 땅의 모든 생명이고,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지구의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한 몸이고 한 마음인 한 생명체입니다.

인간이 만약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다른 누군가의 두려움을 경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모순을 지적할 필요도 없이,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단지 '죽음'이라는 개념을 정의내린 인간의 관념만이 그것을 두렵다고 느낄 뿐입니다.

나는 지율스님의 나직한 숨소리가 멈추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그에게 어느 한 순간 한 찰나라도 평안이 함께 하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읍니다. 이번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경제적 이익과 손실, 정치적 좌우 등의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이번 사태를 바라본 사람이라면, 당신은 어떻습니까? 좀더 정확한 질문은 "당신은 무엇이 두렵나요?" 겠지요. 당신은 무엇이 두렵습니까?

당신에겐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만이 목적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이 땅에 사람(스스로 인간이라 인식하는 관념들)이 생명을 존중하길 바랄 것이고, 또 개발이 그러한 존중을 바탕에 두고 진행되길 바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위해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 밭에 생명의 싹을 심고자 방법을 고심할 수 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당신은 개개인의 사람들이 가진 신념들이 어우러져 공동체의 현실을 창조해 낸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기 때문에, 시민과 대중, 국민, 혹은 좀더 지혜롭다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신념부터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입니다. 당신은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미디어를 활용하며, 전문가의 경고를 세상에 알리고, 모임과 연대를 이끌어 각자의 신념이 바뀌길 기대하겠지요. 이 나라에서 이마저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기까지 한 당신은 역경과 고난을 즐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파괴를 우려한다고 해서 극단적 생각과 행동을 취하는 것을 지혜로운 당신은 경계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당신은 진정성이란 당당함을 위한 나만의 것일 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또 당신은 그러한 처사가 오히려 대중의 반발을 사고, 적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도 꿰뚫고 있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두렵습니다. 당신의 관념으로는 생명의 반대말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신의 관점에서 지율스님의 단식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당신도 생명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또 인생의 전 과정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돼야만 당신은 당신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당신 마음속에 관념을 넘어선 진정한 생명과 평화, 한 몸과 한마음으로서 함께 살아감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명은 절대적인 것으로 그것과 대비되는 반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무한한 진동입니다. 머무는바 없는 흐름입니다. 생명은 모든 곳과 모든 순간에 존재합니다. 단지 멈춰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당신의 의식만이 '죽음'이라는 허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지구에서 유독 지혜롭고 보다 깊고 날카롭게 실상을 이해하고 있지만, 또 모든 생명이 함께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진화된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의 눈과 코와 귀와 혀, 피부를 통해 받아들이고 뇌를 통해 이름 붙여 저장한 정보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신체기관들은 부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두려움을 생산하는데 익숙합니다.

머무름(정체)과 끝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았고, 갑작스러운 지율스님의 행보를 천성산 터널공사 만큼이나 두려워하고, 안쓰러워하며, 욕하기도 합니다. 지율스님의 행보가 머무름을 향하고, 끝을 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성산에 있는 바위를 보세요. 천성산의 바위는 천성산 계곡에 흐르는 물보다, 천성산을 감싸고 있는 맑은 공기보다 다만 천천히 움직일 뿐, 머무는 바 없이 진동을 하고 있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스스로 모습과 힘의 세기, 성질을 바꿀 뿐 멈추지 않아요. 당신이 믿고 있는 끝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툼이 있을 뿐입니다.

지혜로운 당신은 혹시 종말 혹은 끝'으로 정의된 지구의 미래를 우려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지혜는 깊은 동감을 자아냅니다. 지구에서 삶의 의미를 한번이라도 성찰해본 사람이라면 당신의 지혜와 통찰에 깊이 동감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들은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개념에 얽매여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성산과 새만금, 수도권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공사는 한발자국도 뻗지 못한 채 두려움에 갇혀 떨고 있는 소심한 마음작용의 결과입니다.

들어나는 결과뿐만 아니라 들어나지 않는 심성의 황폐화는 또 어떻고요. 더욱이 문제의 핵심은, 또 지율스님의 행보는 들어난 결과의 참담함이 안타까워서가 아닙니다. 심성의 황폐화는 천성산과 새만금, 상처받는 백두대간의 단초이고, 또 다른 상처를 입히기 위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진지하고 자발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고로 해결책을 찾지도 않습니다. 언론의 헤드라인만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며,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막아선 이가 손해를 끼친다면서 욕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심성은 어떤 것일까요? 주변의 실상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환경에 순응해 버리며, 참된 불만과 반항의 정신은 사라져버리고 책임의식마저도 잃어버린 우리는 어떤 앞날을 만들어낼까요?

단순히 유명해지기를 바라고, 좋은 직장을 갖고, 보다 능력이고 능률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고 있는 우리는 어떤 앞날을 만들어낼까요? 우리의 인생은 깊이가 없고, 공허할 뿐입니다. 오로지 책 속에 묻혀서 생활하는 과학자나 학자가 되고, 지식에만 얽매인 전문가가 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우리는 결국 세계를 파괴하면서 비극을 자아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천성산과 새만금 등, 특정집단(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과 작전세력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이권사업들은 많은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책임의식마저 잃은 채 순종과 순응의 삶을 선택하는 지금의 한반도의 주류정신을 길러내는 학교와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택이 '종말'과 '끝'을 향할 것임을 아는 당신은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지혜로운 당신이라도 당신 생각하는 종말과 끝은 진정한 종말과 끝이 아닙니다. '종말'이 아니라 '회귀'가 보다 적절한 용어 선택이 될까요? 물과 바람과 흙, 그리고 본래의 에너지로 '회귀'할 뿐입니다. 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뜨겁고, 지혜로우며 열정적인 에너지 상태로 존재했던 우리는 그저 다시금 흩어질 뿐입니다. 그래요 흩어진다는 표현이 더 좋군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과 나의 관념 뿐입니다.

지율스님은 청전산의 죽음, 도롱뇽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나즉한 숨과 우주와 함께 힘차게 진동하고 있는 뜨거운 심장이 멈추는 것을 '죽음'이라 규정짓고 두려워하지 않듯이요.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스님은 단지 '끝'이 아니라 '나툼'임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것은 두려운 진실이 아닙니다. 죽음과 끝을 두려워하며 천성산과 스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어지러운 관념일 뿐입니다.

지율스님은 천성산과 하나로 다투었습니다. 그의 강인한 정신은 천성산의 것입니다. 수백만 년을 묵묵히 버텨온 정신은 찰나의 부귀영화를 쫓는 그것과 비교할 바 없이 튼튼합니다. 청전산은, 지율은 허구의 개념과 관습에 따른 인정에 얽매여 두려움을 가질만한 나이가 아닙니다.

지율은 바위가 되겠지요. 지율은 인류가 모두다 물과 바람, 흙과 태초의 에너지로 흩어지는 좌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튼튼한 반석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천성산의 의지입니다. 높은 존재상태를 경험하는 여정에서 지구가 타고남은 재로 주저앉지 않도록 기꺼이 나의 뼈는 물과 바람과 흙 속에 날려 보내고 나의 영혼은 태초의 에너지로 회기 함을 기꺼이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천성산의 의지입니다.

이것 역시 천성산에게는, 지율에게는 고귀한 행동이란 생각도 없습니다. 흩어진 것과 모여 있는 우리가 이미 한마음, 한 몸으로 공용하고 공식하는 공체이기 때문이지요. 분리된 채 천성산과 지율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관념만이 그것을 고귀하다고 칭송할 것입니다.

지율과 천성산이 하나 듯이 우리 모두는 하나입니다. 부디 이곳에서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려움 없이 소임을 합시다.

오늘 경북의 작은 토굴에 머물고 있는 스님 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30kg남짓한 메마른 몸은 부서질듯 야위어 차마 안아볼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기운이 쇠진해져 몸은 마비가 오고 눈은 침침하지만 틈틈히 정신을 가다듬고

기도 정진하며 보내는 이시간들이 4년간 천성산을 지키며 살아온 시간중에 가장 호강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도 많고 좋은 분들도 너무 많았는데 걱정만 끼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너무 못드리고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늘 초록의 공명에 함께하여 주신 모든 분들과 도롱뇽의 친구들께도 감사하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대신하여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함께하는 마음을 나누워 주세요. 기도하여 주세요
이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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