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기념에 50년 외길…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 회장
유엔군 참전기념비 건립·참전모임 결성·참전용사 방한 행사 주도
지갑종 회장이 자신과 6.25의 긴 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해마다 6월이 되면 바빠지는 노신사가 있다.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지갑종 회장이다. 공감코리아가 인터뷰를 한 21일에도 지 회장은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모 방송국 직원에게 자신이 수집한 6.25 관련 비디오테이프 등을 챙겨주고 있었다. 물론 인터뷰 중에도 그를 찾는 전화벨이 여러번 울렸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꼭 이맘때만 찾아오지. 평상시 연락하면 좀 좋아!”
일년 열두달 중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집중되는 매스컴의 관심에 지갑종 회장이 한마디했다. 그러나 표정은 그리 못마땅해보이지 않았다. 지 회장 역시 언론인 출신으로 시의성을 따지는 매스컴의 속성을 익히 이해하는 듯 느껴졌다.
의문점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사전 조사에 의하면 지갑종 회장은 6.25에 참전한 유엔군의 참전기념비 건립을 주도했다.
전직 장성 등 군인이나 정부 단체도 아닌 기자 출신의 민간인(단체)이 유엔군 참전기념비를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사연은 6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직후였지. 당시 연희전문에 다니면서 미 군정 통위부장(현 국방부장관)인 프라이스 대령집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었지. 국방경비대가 창설될 때였는데 프라이스 대령이 입대를 권유했어. 그런데 후보생을 보니까 대부분 학병이나 광복군 출신에 나이도 나보다 서너살 많더군. 그래서 군에 가는 대신 학교를 졸업하기로 마음 먹었지. 대신 장교들 통역은 열심히 해줬어. 그러다보니 군대에 아는 사람도 많게 되고 애정이 커졌지.”
종군기자로 6.25 전장 누벼…정부 수립 10주년 유엔참전국 순방 취재
지 회장은 이처럼 군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창군에 깊숙히 관여하며 군과 떼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됐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발발했고, 지 회장은 로이터통신 기자로 유엔군과 국군 부대를 오가며 3년여간 전선을 누볐다. 그리고 정전 협정 이후 언론계로 복귀해 연합신문 정치부 차장으로 취재활동을 펼쳤다. 잠시의 휴지기였다.
“1958년 신문사에서 정부수립 10주년 특집을 기획하는데 참전한 유엔군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무척 궁금하더군. 그간 일체의 보도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UN 참전 16개국 순방을 결심했지. 당시 공보실에서 취지가 좋다고 정부기관을 대표해 가면 취재비를 지원하겠다고 하더군. 또 다른 언론에서도 자기 신문 이름으로 가면 취재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도 하고. 100명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액이었어. 근데 도의상 그럴 수가 없어 광주 고향의 과수원을 팔아 취재비를 충당해 떠났지.”
당시만해도 남미나 아프리카에는 우리 공관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지회장은 8개월간의 사전 준비끝에 1958년 10월 필리핀을 첫 기착지로 삼아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적도를 6번 넘나들며 참전 16개국을 포함해 32개국을 거쳐 이듬해 3월, 5개월여의 긴 취재를 마쳤다. 항공우편을 통해 본사로 보낸 기사만도 130여건이 넘었다.
“당시 참전용사들과 인터뷰를 해보니 한국전 전우들이 모인 참전용사회를 설립하면 좋겠다고 다들 그러더군. 그런데 각 나라에 한국전 참전모임이 생기려면 우선 우리나라에 그 모임을 주도할 본부 가 생기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귀국 후 국방부에 뜻을 전하고 정부차원의 주선을 제의했지. 국방부도 좋다고 해 1960년 6.25 10주년을 기해 발족시키자고 준비했어. 나도 기자로서 참여를 했고….”
이듬해 4월 19일 혁명이 일어났고, 계획은 무산됐다. 대신 지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기록사진들로 특별사진전을 개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당시 장면 총리는 좋은 계획이라며 다음년도 설립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다음해 5. 16이 일어나며 추진 계획은 또다시 무산됐다.
이쯤되면 보통사람들은 포기할만도 했다. 그러나 지갑종 회장은 오히려 신문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출범에 들어갔다. 그리고 1963년 1월 19일 마침내 ‘유엔한국참전국협회’를 설립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이다.
“협회에서 각 국에 확인해보니 태반은 참전모임이 없었지. 그래서 꾸준히 교신하며 속속 참전모임결성을 유도했는데 문제는 미국과 캐나다야. 워낙 땅이 넓다보니 조직을 결성하는게 어렵더군. 그래서 대안으로 국회의원 참전용사 모임 설립을 주선했지. 의원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노력한 끝에 미국 의회에 16명의 한국전참전용사모임이 생겼지. 캐나다도 마찬가지였고.”
2전3기만에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설립…각국 참전모임 주도
협회의 첫 사업인 각 국의 참전모임 결성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결과 지금 각국의 한국전 참전모임은 어느 전쟁퇴역자 모임보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참전모임 결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지 회장은 다음 과업에 들어갔다. 바로 국가별 참전기념비 건립이다.
“참전용사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옛 격전지를 가고 싶어해. 그런데 격전지를 가보면 전적비는 있는데 참전국의 기념비는 없었어. 그래서 각 국의 격전지 근처에 참전기념비를 세우기로 결심했지.”
태어난 것이 1966년 경기도 연천 율동에 건립된 필리핀군 전적비 겸 참전기념비다. 필리핀 참전회가 원하는 위치에 세웠는데 휴전선에서 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두번째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는데 또다른 장애에 부딪쳤다. 바로 자금문제였다. 고민하던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영연방 4개국 합동 참전기념비를 건립하는 것이다.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하고, 기념비 위치를 고르는데 주요 전투지가 임진강 북쪽 보안지구인거야.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을 때 참전국 순방 당시 기억이 떠올랐지. 그래 가평이다.”
지 회장은 마지막 순방국가인 호주 방문시 시드니의 한 거리 이름이 ‘가평 스트리트’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격전지였던 가평 전투를 기념한 거리였다. 캐나다 역시 가평캠프가 있을만큼 가평과 연관이 있고, 뉴질랜드 역시 가평과 인연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여곡절끝에 경춘가도 근처에 영연방 4개국 참전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했다. 땅값과 노임은 지 회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했고, 시멘트는 시멘트회사에서 400포대를, 철근은 인천철공소에서 200톤을 지원받아 준공을 마쳤다.
1967년 9월 30일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에는 4개국 대사와 유엔군 사령관, 국무총리까지 참석한 성대한 행사였다.
16개국 참전 기념비 모두 건립…참전용사 방한 추진
참전기념비 성과는 이듬해에 확연하게 드러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호주·뉴질랜드 순방 시 호주 국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지 회장의 아이디어로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옛 격전지 가평에 참전기념비를 세웠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호주 국회의원들은 6분 동안 전원 기립해 박수를 치는 등 옛 전우를 기억하는 한국에 높은 경의를 표시했다.
이후 참전기념비 건립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참전기념비의 의미를 경험한 박 전 대통령이 협회를 격려하며 정부차원의 지원을 지시한 것이다.
지 회장의 자문으로 국방부가 참전기념비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5년 12월 22일 남아프리가공화국을 끝으로 16개국 참전기념비가 모두 세워졌다. 1년 후에는 덴마크, 인도 등 5개 의료지원국 참전기념비도 부산 영도에 건립됐다.
유엔한국참전국협회는 6.25 25주년인 1975년부터 참전용사 방한사업에 역점을 기울였다. 재향군인회와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가 함께 사업을 펼친 결과 지금까지 3만 5000여명의 유엔군이 한국을 찾는 성과를 올렸다.
올해는 우리 민족의 큰 상처였던 6.25가 끝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전쟁을 체험한 역전노장들도 하나둘 유명을 달리하며,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지 회장은 6.25의 의미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는 말이나 글 등의 기록도 중요하지만, 사진이나 영상, 물품 등 시각적 자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적인 전사품의 수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물이야 아무때나 지을 수 있지. 그러나 전사품은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건져야 해. 그걸 모아서 전시해야지.”
지 회장은 일찍부터 이런 생각에 전사품 수집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각 국 참전용사와 정부 등을 찾아다니며 B-29 폭격기, 김일성 승용차 등 6.25와 관련된 수천점의 전사품을 수집했다.
1970-80년대 여의도광장 한 편에 자리했던 안보전시장이 바로 그가 수집한 전사품 등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안보전시장은 1990년대 여의도 개발 이후 사라졌고, 전시품들은 경남 사천에 자리한 항공우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972년 B-29를 미 공군에서 받아 18개로 분해해 우리나라에 들여왔지. 공군이 이를 재조립했는데 그 때 항공기 제작공부가 많이 됐다고해. 김일성 자동차는 가장 애착이 가는 전사품이야.1969년부터 14년을 추적한 끝에 1982년 미국 뉴저지에서 개인수집가에게 당시 7만 5000달러를 주고 겨우 샀어. 20만달러를 달라고 했거든.”
6.25를 잊는 순간 제2의 6.25가 온다!
지갑종 회장은 최근 초등생들의 6.25 혼동 논란 등에 대해 다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선 교사부터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아 교사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후세들을 위해 기념관다운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나 해외 참전용사들이 세상에 없어도 기념관이 있으면 6.25는 영원히 기억되지. 단, 아이들 놀이터가 아닌 흉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전사품들을 전시하고 교육하는 진정한 기념관이 돼야 해.”
지갑종 회장 뒤에는 종군기자 시절 사진, 유엔 16개 참전국 순방 취재 사진 등 그가 반세기 넘게 6.25기념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기록들이 자리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찾은 6.25 기념관의 건립을 강조한 지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정전 60주년 기념 방한 참전용사들을 맞이하러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이 한마디를 덧붙인채.
“기억해! 6.25를 잊는 순간, 다시 6.25가 일어나는거야. 그걸 막아야지!”
지 회장의 마지막 말에서 그가 왜 60년간 그토록 6.25의 기억을 살리고, 기록하며, 기념해왔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 
“6.25를 잊는 순간, 제2의 6.25 일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