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험난한 협상과정이 예상되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향에 있어서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는 9.19 4차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거론된 경수로, 200만 kW 전력공급, 에너지지원 문제 등은 다음 회담에서도 중점 이슈로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형편없는 북한 에너지 사정
잘 알려진 대로 북한은 지난 90년대 이후 만성적인 에너지난을 겪고 있다. 1980년대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2-3%였던 북한은, 1990년대 초 북한의 경제를 지탱해주던 공산주의 경제블록이 해체되면서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그 성장률은 마이너스 10-15%까지 달했으며, 그 이후로도 북한경제는 지속적으로 후퇴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경제성장 하락은 결과적으로 에너지수급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석유의 경우,북한은 재정적 문제로 크게 의존하던 러시아로부터의 수입이 극감하여 1990년에는 약 40만 톤, 그 이후는 거의 수입 중단상태다. 중국으로부터의 석유수입도 계속 줄어들어 2000년 수입량은 1990년의 1/3 수준인 40만 톤 정도였다. 2000년 이후 증가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북한 석유수입의 70-80%를 차지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량은 연간 100만 톤에 미치지 못한다 한다.
전력의 경우도 북한은 1950년대 말 전국적으로 통합된 전력망을 갖추었지만 그 이후 관련 부품 및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발전 및 송배전 시설의 노후화로 현재는 단일 전력망이 아닌 단절된 지역 전력망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압 및 주파수 변동이 심하고 송배전 손실이 약 35%일 정도로 열악하다. 이처럼 북한의 발전설비 및 전력망의 노후화는 석탄생산 저하로 이어지는 등 전력 수급측면에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 에너지 사정에 밝은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에 의하면, 북한은 1990년 기준으로 운영이 불안정한 소규모 화력발전을 바탕으로 800만-1,000만 kW의 발전설비용량을 갖추고 있지만, 설비 노후화 및 연료부족으로 가동률이 낮아 실제 발전설비용량은 200만-300만 kW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현재 발전설비용량(약 6,000만 kW)의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000년 이후 북한은 연료부족문제로 소수력 및 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수력발전은 갈수기나 동절기 등 계절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재생에너지 경우는 관련 부품 확보가 어려워 전력부족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다. 최근 평양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급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 전체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다.
200만 kW 대북송전 문제
북한의 열악한 에너지 및 전력시스템 상황을 감안할 때, 대북 송전에 의한 200만 kW 전력공급을 제안한 우리 정부의 중대제안은 대북 전력지원 측면에서 흥미로운 제안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중대제안은 다음과 같은 기술적이고 비용적인 정치 제도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향후 수년간 전력예비율이 충분해 신규 발전소 건설 없이도 200만 kW 대북 송전에 무리가 없다고 밝힌바 있다. 그렇지만 40% 이상을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은 주변 발전시설의 부족으로 영호남 지역으로부터 고압 송전선으로 전력을 공급 받고 있는데, 수도권 지역의 전력수요 증가로 현재 송전망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전력 공급안정성에 문제를 초래하지 않으면서 200만 kW 대북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수도권 주변지역에 새로이 200만 kW 규모의 발전소를 신규 도입하든지 아니면 영호남 지역으로부터 신규 고압송전선을 설치하는 수밖에 없다.
대북 송전 비용문제에 있어서 정부는 송전선로 건설비용으로 1조 5천억-1조 7천억 원 정도, 그리고 연간 발전비용으로 6천억-8천억 원 정도 추정하고 있으며, 북한의 배전망에 대한 지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대북 송전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북한의 열악한 전력망은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노틸러스 연구소는 북한의 송배전망 절반 개선비용으로 1조 8천억 원 정도를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수도권 지역의 전력 공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200만 kW 용량의 신규 발전소를 건설할 필요가 있으며, 노틸러스 연구소는 복합화력발전소 건설비용으로 약 1조 원을 추정하고 있다.
대북 송전 관련 정치 제도적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에너지안보’와 ‘송전선 설치공사’ 관련 문제를 들 수 있다. 북한이 남으로부터의 대북 송전방식을 수용하는데 난색을 표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안보’의 취약성 때문일 것이다. 1948년 남으로의 송전을 중단시킨 전력이 있는 북한으로서는 당연한 우려이다.
송전선 설치공사 경우, 대북 송전을 북핵 폐기 완료 시점에 맞추기 위해서는 북핵 프로그램의 검증 및 폐기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송전선 설치공사가 함께 진행되어야 하므로 사전에 북한의 전력계통 및 송전탑이 지나갈 곳의 지형적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미국의 안전보장 담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한이 일정지역을 공개해야 하는 이 공사에 대해 어느 정도 협조할지 점치기 어렵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북 송전 방식에는 여러 복잡한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더욱이 이 방안에 대해 북한이 꺼리고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100% 직접송전뿐만이 아니라 좀 더 다각적인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북한의 노후한 발전설비를 개선해 생산량 및 효율을 높이고 여기에 풍력 및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도입을 연계해 발전설비 용량을 효율적으로 증대시킨다면 북한 전역에 200만 kW 직접송전에 상응하는 규모의 개선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생산전력의 상당부분을 송배전과정에서 잃어버린다면 효과가 없으므로 북한의 노후한 전력망을 개선하는 작업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성없는 경수로 문제
한편, 북한은 에너지 부족문제 해결방안으로 경수로에 의한 원자력발전을 주장해왔다. 4차 6자회담 내내 경수로문제는 핵심쟁점이었다. 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한은 미국의 경수로 제공을 핵포기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주장하고 있어, 선 핵포기 후 경수로 논의가능 입장의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 그런데, 경수로를 제공받으려면 북한은 먼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수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원자력 공급국들이 가입하고 있는 원자력공급자그룹(NSG)은 NPT 가입과 IAEA 핵사찰 수용을 경수로를 제공받으려는 국가의 필수조건으로 하고 있다. 2003년 1월 NPT를 탈퇴한 전력이 있는 북한이 일단 NPT에 복귀하더라도 경수로를 제공받은 뒤 NPT 재탈퇴 선언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에 북한은 신뢰회복 차원에서 NPT에 복귀하면 두 번 다시는 재탈퇴를 하지 않고 핵사찰을 성실히 수용하겠다는 구속력 있는 약속을 국제사회에 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경수로 발전은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극심한 전력부족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신포의 한반도개발기구(KEDO) 경수로 공사를 재개하거나 새로운 경수로 건설에 착수하여 수년 내에 전력생산에 돌입한다 할지라도 그때까지 북한의 전력망 개선 없이는 생산된 전력을 북한이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북한 전체 발전용량이 경수로 발전용량의 10배는 되어야 정비 등의 이유로 인한 경수로 정지 또는 불시정지에 따른 북한 전력망에의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실질적 개선을 추구해야
만성적 에너지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은 선 경수로 건설을 고집하는 자세를 지양하고, 베이징 공동성명의 이행합의에 성실히 임함으로써 제공되는 에너지 지원을 자국의 에너지체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북한 에너지 문제 경제논리에 충실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