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군의 존재목적은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일 뿐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아군도 막대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자는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라고 하지 않았던가?
군사전문가들은 현재의 한미연합사방위체계와 전시작전통제권이야 말로 否戰勝의 요결 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북한은 6.25전쟁이후 감히 전면도발을 해오지 못했다. 금번 대청해전이후에도 말로만 '보복' 운운하며 엄포를 놓고 있는 것도 사실상 주한 미군의 주둔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입만 열면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소리쳐 온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전시작전통권이란 무엇인가?
재래식 전쟁에서는 전장상황이나 명령관계, 수행하는 임무가 비교적 간단하였기 때문에 단순한 명령과 복종관계만으로도 부대지휘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전은 상황이 복잡해지고, 다른 군간의 합동작전, 다른 국가 간의 연합작전이 일상화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전환과 명령관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상황에 맞게 적용시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우리 군에는 전통적으로 예속과 배속의 개념이 있다. 예속은 상하가 하나의 조직 내에서 단일한 명령, 복종관계를 유지하는 것이고 배속은 예속과 동일한 명령-복종관계이지만 예속에 비해서 일시적이고, 또한 인사, 군수 등의 지원을 예속부대에서 책임지는 게 차이가 있다.
미군에서 도입된 작전통제권이란(OPCON : Operational Control)개념은 지휘권과 혼용되지만 실제로는 지휘권보다 휠씬 좁은 개념이다. 즉, 작전계획이나 작전명령 상에 명시된 특정임무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해당되는 지휘관에게 일시적으로 위임된 권한이다.
지휘권에 포함되어 있는 인사, 군수, 예산편성, 작전상 훈련연습 및 소요 편성 등의 권한은 작전통제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군사작전 수행간에 관련된 모든 부대들의 행동을 통일시키기 위한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의 권한, 그리고,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목표를 부여하고, 목표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강조사항이나 제한사항을 부여하는 것 등이 작전통제권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작전통제권은 관련된 모든 부대들이 하나의 작전계획을 기준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군사상의 편의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전통제권은 민족자존심의 문제일 수 없고, 오직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군사적, 전략적 방책이라고 할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연합사의 전시작통권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작전통제권을 연합사령관으로 일원화하여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전쟁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지휘통일'의 원칙에도 부합된다.
실제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한 번도 지휘권을 분리해서 전쟁을 한 경우가 없다. 6·25전쟁 때도 우리는 UN군사령관이, 북한과 중국은 조·중 연합사령부가 단독으로 지휘권을 행사했다. BC 216년의 칸나전투에서 세계 최강 로마군이 카르타고의 한니발에게 패한 것도 2명의 지휘관에 의해 지휘통일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전략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평시작통권을 환수하면서도 전시에는 연합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하도록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부는 군사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전시작통권 문제를 민족 자존심에 호소한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전작권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권 문제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전작권의 전환은 한미연합사 해체로 이어지면서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직접책임이 해제된다.
둘째, 한미연합사 체제하의 작계5027에 의해 유사시 한국에 즉각 지원될 69만 명의 병력, 5개의 항공모함 전단, 160척의 해군 함정, 1600여대의 항공기 등 전시증원 목록이 자동으로 소멸된다.
셋째, 미군이 주요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미군 철수를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넷째, 휴전 당사자인 UN군사령부가 실 병력이 없는 상징적 존재로 남게 되어 휴전이 유명무실화되면서 군사적 불안정이 가속화된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는 용감했다. 국방개혁 2020을 추진하면서 621조원을 투입해 미군 대체전력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621조원의 예산은 향후 매년 9% 이상의 국방비 증액을 전제로 하는데 벌써 22조원이 삭감되었고 그것도 고작 3.8% 증액에 그쳤다. 결론은 용감한 게 아니고 무모했던 것이다.
설령 621조원의 예산 염출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 돈을 전작권 전환 비용으로 쓴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2009년 미국의 국방비는 무려 6070억 달러이다. 불과 240억 달러의 국방비를 쓰고 있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 미국의 국방력을 이용하면서 그 돈을 보다 긴급하고 유용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더욱이 북한은 2012년에 강성대국을 완성하겠다고 큰 소리치고 있다. 사상강국, 군사강국에 이어 경제강국을 완성하여 김일성의 유훈인 한반도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북한이 한반도 적화통일을 완성하겠다는 2012년에 우리는 전시작통권을 환수하겠다고 맞장구치고 있다.
자주국방이란 원칙에서만 본다면 한반도 내의 군사적 상황에 우리 군이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전쟁방지다.
자주국방이란 이름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그것이 상대의 오판 가능성을 열어주어 전쟁 위험을 높이는 것이라면 결코 가서는 안될 길이다. 우리 정부가 욕심을 부리거나 서두를 때도 아니고, 미국이 부담을 덜고 빠져나갈 궁리만 할 때도 아니다
현재 1천만 애국 시민들이 전작권 환수의 시기상조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민족 자존심도 없는 친미주의자들인가? 그렇지 않다.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7천만 민족의 생존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누비며,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직접 체험한 역전의 용사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정부 당국은 이들의 피 끓는 우국충정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