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강치구
17일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당시 성립전례식 (成立典禮式) 모습 재현

▲ 17일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는 한국광복군 창설 제 70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konas.net
한국광복군 창설 제 70주년을 맞아, 17일 전쟁기념관(서울 용산) 평화광장에서는 국가보훈처(처장 김양)와 한국광복군동지회(회장 황의선)의 주최로 ‘광복을 향한 외 길, 세계로 떨친 큰 뜻’제하 기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 김양 처장은 “70년 전 오늘, 중국 중경에서 한국광복군은 창설됐으며, 이후 27년간 한국광복군은 항일무장투쟁의 중심이었다”며 한국광복군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어 김 처장은 “한국광복군의 불굴의 정신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의 밑거름이 됐다”며 “ 이분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대한민국은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더 큰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세환) 이재관 부회장은 축사대독을 통해, “오늘 광복군 창설 70주년을 맞이해 우리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더욱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며 “선배님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되찾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반미친북종북세력의 준동을 단호히 제압해, 선진일류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광복회 김영일 회장도 서한을 보내 “광복군이 창설되지 못했더라면, 우리 역사에서 대일선전포고는 없었을 것”이라며 일제와 무력으로 투쟁했던 선열들의 기상을 기렸다.
이날 행사는 70년 전 한국광복군 창설 당시 거행됐던 ‘성립전례식’(成立典禮式)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태극기를 교립해 게양하고, 무대 좌우측에 ‘단군의 자손은 끝내 고국에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초나라가 비록 세집 남았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당시 구호를 설치했다.

▲ 광복군의 복장을 한 대학생들이, 당시 한국광복군의 정신을 잇는 광복군 행진'을 하고 있다.ⓒkonas.net
또, 대학생 60여명이 당시 광복군의 복장을 하고 국방부 의장대, 한국문화영상고등학교 관악대와 함께 ‘광복군 행진’을 하는 퍼포먼스도 진행됐다. 행사에 참석한 1,500여 명의 시민들은 태극기를 함께 흔들며, 한국광복군의 정신 이다. 주요인사로는 광복군 동지회 회원 20여명을 비롯해, 백야 김좌진 장군의 손녀 김을동(미래희망연대) 의원 등이 참석했다.

▲ 이날 행사에서 김양 보훈처장, 재향군인회 이재관 부회장, 김을동 의원 등 주요인사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konas.net
한편, 보훈처 자료에 의하면,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중국 사천성 충칭에서 창설, 미국·영국 등 연합군과 연합해 대일작전을 수행했다. 특히, 미국 전략첩보국과 공동으로 특수공작 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무산됐다. 이후 1946년 5월 16일 한국광복군은 복원선언으로 해산, 국방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
다음은 한국광복군 창설 당시 김구 주석이 발표한 ‘한국광복군선언문’ 전문과 한국광복군 활동 약사이다.(konas)
광복군창설대회사
내빈 여러분, 동지 여러분,
오늘은 우리들이 거행하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의 날입니다. 이 한 시각이 천금의 가치를 가진 이 시점에 즈음하여 우방 각계 동지들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와서 만장의 영광을 주시니 우리들은 만분의 영행(榮幸)으로 여겨 감격하는 바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가를 광복하여 주권적 독립과 민족 생존적 자유를 되찾기 위하여 왜적과 더불어 고전하여 온 지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천신만고 중에 있으면서도 때때로 정규적으로 광복군을 동원하여 과대규모의 전투를 계속하고 때로는 부분적으로 광복군을 동원하여 장기적 유격전을 계속하여 상당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중 한 양 민족은 역사적으로 관계가 심히 밀접하고 절친한 사이입니다. 살고 죽고 존(存)하고 망하는 것이 한 개의 운명에 매여있으므로 일반 현명한 인사는 우리 한국 혁명에 대하여 시종 과열한 찬조를 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 한국 혁명 동지들도 중국 혁명에 참가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국제상의 불합리한 각종 조건에 견제되어 구체적 합작 정신과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유감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목하 우리 우방 중국은 바로 왜적의 대침략 야심에 봉착하여 자신의 생존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신성한 항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상 어느 민족이나 인류의 반동 분자를 제하고는 열렬히 중국의 승리를 찬조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이번 항전은 우리 한국 독립과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전민족적 무장 역량을 자진 동원하여 중국 전우와 더불어 공동 전투를 펴서 중국과 한국의 원수를 보복하기를 서로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량은 겨우 우리 한국을 광복하고 생존을 도모하는데 불과하겠지만, 중국의 항전에 있어서도 한 가닥 찬조 역군쯤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중국의 전시 수도인 중경에서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를 거행함에 있어서 그 의의가 퍽 심장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로부터 중국 경내에 있어서 정신으로 광복군을 동원하여 우방 중국의 항일대군과 어깨를 나란히하여 적을 무찔러야 합니다. 또한 이로부터 험한 산과 깊은 물에도 뛰어들어갈 뿐만 아니라 창을 베고 밤을 새우는 삼한 건아와 화북일대에 산재한 우리 백의대군과 또 국내의 삼천만 혁명 대중들이 소문을 듣고 일어나 왜적의 철제를 단호히 쳐부수고 성스럽고 깨끗한 천직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방 중국의 초고 통수의 인격과 위대한 책략에 대하여 원래 지극히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또 지난날 특히 우리 한국 광복군이 중국 경내에 있어서 정식으로 편성하고 훈련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중국의 항전시기에 연합군의 일부 업무를 다하게 하고, 아울러 우리들로 하여금 위대한 목적에 도달시키게 해주시니 우리들이 비상한 감격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또다시 우리들은 자나깨나 중·한 연합군의 사명을 쉴새없이 여행(勵行)하여 하루 빨리 우리의 위대한 사업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직책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거행하는 이 전례가 한갓 허례허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의의가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로 본 주석은 이 기회를 빌어 그 의의의 신중함을 설명해 드립니다.
광복군창설위원장 김구
한국광복군 활동 개요
1919. 4. 13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919. 12 '대한민국육군임시군제'등 군사정책 수립 1937. 7 중일전쟁 계기 '군사위원회' 발족 1939. 11 '독립운동방략'결정 1940. 5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발족 1940. 9. 17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거행 1941. 12. 10 대일선전포고 1943. 8 인면전구공작대 9명 인도 파견 1944. 8 광복군 통할권을 임시정부로 이관 1945. 5. 광복군 제 2지대 미군 OSS훈련 참가 1945. 8. 18 일본 항복으로 정진대 편성 귀국 1946. 5. 16 총사령 이청천 명의로 '한국광복군복원선언'발표 해산, 6월초 국내 귀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