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논란은 전효숙 후보자의 지명절차의 적법성 문제에 관한 법리공방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고, 현재는 비교섭단체 야 3당의 중재안을 중심으로 정치적 타협 쪽으로 그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하지만‘전효숙 사태’에서 정작 간과하고 있는 큰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법률관련기관을 정치적으로 우군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임기 반환점을 넘긴 이후로 줄곳 10-20%대의 저조한 지지도에 머물러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대법원, 검찰 등 법률관련기관의 수장들을 자신과 가깝거나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집중 배치해왔다.
지난해 9월 대통령은 대통령탄핵심판에서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이용훈 변호사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고, 한 달 뒤에는 자신의 사법고시 17회 동기이자 8인회 멤버였던 정상명 대검 차장을 검찰총장에 기용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은 올해 8월 사법고시 동기생이자 대통령탄핵심판 때 기각의견을 내고,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판결 때 반대의견을 낸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헌법재판소장에 지명했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효숙 사태’는 대법원장, 검찰총장에 이어 헌법재판소장까지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배치하려는 것이 그 본질이다. 만약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헌법재판소장의 임명동의안이 통과된다면 주요 법률관련기관을 정치적으로 우군화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큰 그림은 완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과거 어떤 정권도 현재 임기 중인 노무현 정권만큼 정치적 갈등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표출된 경우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심판 등 정권의 명운이 걸린 굵직한 것들도 많았다.
헌법재판소 심판들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때문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임명절차에 있어 위헌, 위법성을 무릅쓰고 자신과 코드가 맞는 전효숙 후보자를 헌법재판소장에 지명했다. 무릇 법률관련기관의 모든 수장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져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소장은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최고책임자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장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외부로부터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보호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그 자격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효숙 후보자의 경우 헌법재판소의 수장으로 과연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9월 6일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전효숙 후보자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헌재소장으로서의 임기 6년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헌재의 재판관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직을 사퇴했다고 밝혔다. 학계와 법조계에서 지적하듯이 ‘헌재 재판관이 청와대와 사전에 협의해 중도 사퇴하고 헌재소장으로 다시 지명되는 것은 헌재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전효숙 후보자에 대한 임명절차상에 있어서도 심각한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 헌법 제111조 제4항에는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헌법재판관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효숙 후보자의 경우 8월 22일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제출시에는 헌법재판관이었으나, 임기 6년의 소장이 되기 위해 8월 25일 헌재재판관을 사퇴함으로 말미암아 헌법재판소장이 될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안이 시작된 셈이 되었다. 이는 6년 임기의 헌재소장을 만들려는 과욕에서 비롯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잔머리 굴림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퇴임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의 재임기간은)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진 시기’라고 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현재의 상황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의 정치화와 사법의 사법화가 이뤄지는 시기가 진정으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런지.
노 대통령의 사법의 정치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