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주 성영
6개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은 지난 11일, 개헌문제는 18대국회 초반에 처리하기로 합의하고 노대통령에게 임기 중 개헌발의를 유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조건부 유보 입장을 밝혔던 청와대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오는 16일까지 정치권이 개헌에 대한 당론 채택 및 대국민 약속을 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18일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청와대가 이런 입장을 밝힌 배경은, 일부 조간신문이 대통령의 진의를 왜곡했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대통령의 속내가 언론에 의해 들통 났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지금 한나라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당들이 분당과 합당, 신당창당 등 이합집산으로 분주하다. 또 정당의 당론을 순식간에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4일 시간을 주고 보채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더 가관인 것은 “6개 정당이나 정파가 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나라당은 꼭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측근을 통해 강조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통령이, 차기 집권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소위 4대 개혁악법 등을 힘으로 밀어붙이며 한나라당을 무시하고 조롱해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나라당을 국정의 동반자 쯤으로 여기는지 개헌당론을 정하라고 억지를 부리니 어처구니가 없다.
물론 대통령이 국회와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국민투표는커녕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하다. 3분의 1이상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만 반대를 해도 통과가 불가능한데다 이제 6개 정당.정파 모두가 노대통령의 임기내 개헌추진에 반대하고 있으니 개헌안 국회통과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대통령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임기말 국정 마무리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한미FTA협상 후속 조치, 국민연금 및 공무원연금개혁, 각종 민생문제 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매듭짓고 공정한 대선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한나라당 지도부에도 건의하고자 한다. 우리 한나라당은 더 이상 대통령의 개헌놀음에 맞장구치며 시간과 당력을 낭비하지 말고, 민생 챙기기와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응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말없는 대다수 국민의 진정한 민의라고 믿는다.
개헌 오기 부릴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