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정희 캠프 정책 논평에서 15일 이 논란의 핵심은 NLL의 실체에 대한 사실관계다. NLL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NLL 침범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
NLL의 기원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9월 27일 미군총사령관인 마크 W. 클라크가 설치한 클라크라인이다.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중국과 북한을 봉쇄하기 위하여 서해에 해안봉쇄선을 설치하고 유엔총회에 승인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클라크라인이다. 클라크라인은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지 않았으나 미군은 일방적으로 해안봉쇄를 실시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고 명시한 제2조 15항에 따라 클라크라인은 무효가 되었다. 이에 따라 클라크 사령관은 1953년 8월 27일 클라크라인 철폐를 발표했다. 그리고 곧 이어 8월 30일 NLL을 내부 작전규칙의 일환으로 한국 해군에 전달했다.
클라크 사령관이 클라크라인을 철폐하고 곧바로 NLL을 설치한 이유는 이승만 정부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정전협정 반대와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있었고 미국은 이승만 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을 침공하여 정전협정이 파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관계 미국정부 내 극비문서집’에 실린 ‘특별평가보고서와 SF-48’(1953년 10월 16일)에 잘 나와 있다. 여기서 미국은 “이승만은 현상태에서 자기가 공산군에 대한 일방적 군사행동을 개시하더라도 미국으로서는 자신의 행동을 저지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미국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라도 자기를 전면적으로 지원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런 행동을 감행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분석했다.
즉, 미국은 이승만 정부가 북한을 공격하여 정전협정이 파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군의 작전 한계선을 설정하여 한국 해군에게 통보한 것이다. 명칭이 ‘북방한계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북한군이 내려오는 것을 제한할 목적으로 설치했다면 당연히 ‘남방한계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해상경계선을 설치하지 않고 굳이 NLL을 설치한 이유는 정전협정에 해상경계선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은 한강 하구부터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았다. 다만 제2조 제12항 (b)에 따라 한강하구 수역의 중앙선을 따라 우도까지 연결하는 선을 설정하고 한강하구부터 서해에 있는 수많은 섬들에 대한 통제권을 설정한 것이 전부다. 정전협정 첨부지도 제3도에는 이 선이 군사분계선의 기능이 없다고 명시하였다. 또한 13항 (b)에 따라 서해 5도는 유엔군 군사통제하에 남겨두고 그 밖의 모든 섬들은 북한의 군사통제하에 들어갔다.
이처럼 정전협정은 서해에 해상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NLL도 나와 있지 않다. 이처럼 NLL은 정전협정 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선이다. 이는 미국은 물론 한국의 고위 관료들도 다 인정한 사실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 12월 23일, NLL 문제로 한미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하자 미국 정부는 NLL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 및 지침을 주한미대사관에 보냈다.
우리는 북한에게 NLL을 공식적으로 설명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한이 수용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선을 북한에게 부과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극도로 취약한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북한에게 NLL을 부과하려는 시도에 우리가 동참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가정한다면 잘못됐다.
1975년 2월 28일 당시 미 국무부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 사령부 및 유엔 사령부에 보낸 외교 전문에는 더욱 자세한 이야기다.
미국이 전부터 말해왔듯이,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북방정찰한계선은 일방적으로 선포된 것으로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그 선은 일방적으로 국제수역을 분리한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과 미국 정부의 해양법에 반하는 것이다.
1983년 유엔군 사령관 정전담당특별고문이었던 제임스 리(한국명 이문항)는 자신의 저서 ‘JSA-판문점’(소화출판사)에서 NLL이 3급 군사비밀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유엔사는 1953년 7월28일에 있었던 제 1차 본회의에서 정전위의 마지막 회의인 91년 2월 13일에 있었던459차 본회의까지 40여 년간 판문점에서 있었던 본회의, 비서장회의, 그리고 직통전화 메세지, 서한 등 그 어디에도 서해해상 침투사건, 도발사건 등 해상위반사건들을 다루면서 단 한번도 ‘북방한계선 침범’이니 ‘북방한계선 위반’이니 한 적이 없다.”
미 합참본부의 지시는 어로저지선이나, 북방한계선이나, 영해가 3해리니 12해리니 논의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엔사는 항상 함선이나 사건의 위치가 이들 5개도서의 3해리 밖일 때는 공해상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1989년 6월 3일 유엔군 총사령관이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도 “정전협정에는 유엔군 사령부가 북측 선박들이 단순히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데 대해 항의할 권한이 없음”이라는 내용이다.
한국 정부 관료들 역시 마찬가지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천용택 의원이 “서해에서 북한 경비정이 5㎞나 넘어왔는데 국방부의 대응이 미흡한 경위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북방한계선(NLL)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북한측이) 넘어와도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고 증언했다. 이양호 장관은 1980년대 유엔사 군사정전위 한국연락장교단장으로 복무하였기에 정전협정을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도 1996년 7월 18일자 보도에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휴전 한 달이 지난 1953년 8월30일 유엔사측이 최접경 수역인 백령도 연평도 등 6개 도서군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측 지역과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때문에 서로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국제법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고 했다.
NLL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되지 않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남북 간 합의에 서해에서 기존의 경계선을 존중한다는 게 분명히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정신만 지켜진다면 10·4남북정상선언 합의에 포함된 여러 가지를 논의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역시 “NLL은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합의한 바와 같이 남북 간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NLL을 합의한 적이 없다.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의 내용이다.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또한 불가침부속합의서 10조에서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은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 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고 되어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이 합의서가 나온 1992년까지는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확정하기 위해 협의를 계속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협의를 계속 하기로 했다는 말은 당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앞서 정전협정에서 확인했듯 서해상에 “쌍방”이 설치하여 공동으로 관할하여 온 “구역”은 “한강하구 수역” 뿐이다. NLL 남방 해상은 “쌍방”의 합의 아래 관할한 구역이 아니라 미군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한국군의 통제에 활용한 구역일 뿐이다.
국방부는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NLL 남방 해상을 실질적으로 관할하여 왔으며 북한도 이를 묵인해왔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에 해당하며 실효성의 원칙에 따라 NLL이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북한은 1973년 12월 1일 군사정전위원회 346차 회의에서 서해 5도의 접속 수역은 북한의 영해이며,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은 북한에게서 사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통지했다. 또한 1977년 8월1일 북한은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서해 경제수역의 경계선, 즉 인접국간 200해리가 되지 않는 수역에서의 바다 반분선, 또는 중간선을 해상군사 경계선으로 선포했다. 이 선은 NLL 이남이다. 즉, 북한은 계속해서 NLL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NLL을 넘어왔으며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져왔다. 1999년 6월 16일자 한겨레에 실린 ‘서해5도 주변해역 북한 주요 도발일지’에 따르면 소규모 충돌을 제외하고서라도 1956년부터 1999년 6월까지 무려 32건의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공중 교전, 함정 간 교전, 미사일 공격, 대규모 전투기 편대 침입 등 전쟁으로 이어질만한 규모의 충돌도 수 차례 이다.
심지어 1999년 6월 10일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북한 경비정이 해마다 20-30차례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가 돌아가 심각한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북한 경비정 및 어선의 NLL 월선 횟수는 2006년 21회, 2007년 28회, 2008년 24회, 2009년 50회, 2010년 93회로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처럼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남하하며 충돌이 끊이지 않는 것은 한국이 NLL 남방 해상을 실효지배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역으로 국방부에서 NLL 실효지배를 강조할수록 북한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NLL을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NLL 문제의 해결법은 무엇인가
NLL을 설치한 주체는 미군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NLL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풀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서해의 화약고를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남북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충분히 있다. 10.4선언에 그 답이 있다.
10.4선언 3항에는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5항에는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10.4선언을 이행하면 서해상 충돌도 방지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10.4선언은 사실상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은 계속 협의한다”고 명시한 불가침부속합의서 10조에 따라 남북 정상 사이에 협의하여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남북기본합의서에 비해 시간상으로도 나중에 체결되었고, 체결 당사자도 더 높은 급이기 때문에 이제는 10.4선언을 기준으로 서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10.4선언 발표 후 서해 공동어로수역 지정을 위해 열린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회담에 참가한 김장수 당시 국방부장관은 “공동어로수역의 전제조건은 해상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며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아서 회담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이 NLL을 고집하는 한 서해 공동어로수역은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김장수 전 국방부장관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 서해 공동어로수역은 NLL로 인해 발생하는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다. 북한이 NLL을 인정하면 공동어로수역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NLL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동어로수역을 합의했는데, 반대로 공동어로수역을 만들기 위해 NLL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으니 무산되는 게 당연하다.
NLL 문제는 국제해양법에 따르더라도 인정받기 어렵다. 여러 국제법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할 경우 한국이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법적 근거도 없는 NLL에 대한 고집을 접고 10.4선언을 통한 평화로운 해결책을 선택할 때다. 이를 위해서라도 한국 사회에서 NLL의 진실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시급하다. 지금은 NLL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이성적인 색깔론을 들이대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자리에서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휴전선은 쌍방이 합의한 선인데,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며 “우리 해군이 더 이상 북상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 금지선에 불과했다.
오늘에 와서 이것을 영토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 “정치권에서 사실관계를 국민들에게 잘못 인식시키면 바로잡기 어렵다”고 당부도 했다.
지금 여러 대선 후보들은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며 NLL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나라의 장래와 민족의 미래가 달린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앞장서서 NLL의 진실을 이야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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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의 진실은 무엇인가
